세상을 걸어가는 발과 빛을 수분처럼 머금은 얼굴은 세월의 꽃밭이 되고..
꽤 오래전 기억이었다. 명배우 최민식이 한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기자가 최 배우의 핸디캡을 물었다. “내 발은 남들 것에 비해 정말 못났어요! 어디에 내놓기가 좀 부끄러울 정도로 콤플렉스를 느껴요.” 중년의 명품배우가 되기 전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배우는 발의 생김새까지도 신경을 쓰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조선희 사진작가가 찍은 박지성의 발 사진이 화제였던 적이 있었다. 조 작가는 못 생겨서 찍기 싫다는 박지성에게 “잘 생겼으면 안 찍는다” 라며 기어코 찍었다고 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박지성이 어렸을 때 감각을 키우기 위해 맨발로 축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사진작가는 그의 발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 신문이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을 재소환했다. 남편이 찍었다는 강수진의 발 사진은 오래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신문 기사는 외부 작가의 글이었는데, 이렇게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발을 꼽으라면 단연 그의 발일 것이다. 옹이처럼 불거진 뼈와 굳은살, 짓물러 터진 발가락. 그 ‘훈장’ 같은 사진은 무대 위 고고한, 혹은 고상한 자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혹독한 훈련을 견뎠는지 가늠케 한다.’
1년 동안 의식 없이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셨던 엄마의 발도 비슷했다. 살이 건조하게 말라 뼈가 불거져있었고, 유난히 눈에 띈 것은 엄지발톱이었다. 가난과 생존을 양발에 단단히 묶고서 참고 견뎌낸 85년의 삶이 발톱에 그대로 옮겨져 투박하고 누렇게 변해있었지만, 아들의 두 눈에는 마치 다이아몬드를 닮아 보였다.
신체에서 두 발의 조건은 체중을 버티어내며 무한책임의 역할을 담당한다. 어쩌면 늘 인생과 함께 하는 일거수일투족이지만, 여기서 발은 손의 고난을 훨씬 앞지른다고 할 수 있다.
땅 위에 발이 있다면, 하늘 아래에는 얼굴이 있다. ‘얼굴’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곡을 들을 때마다 ‘그리려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궁금증이 꿈틀거렸다. 연인의 얼굴이겠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나름대로 그 얼굴을 그렸었다. 그렇게 그렸던 얼굴은 모두 나의 편이었다. 우선 ‘사랑’과 ‘존경’으로 채색했던 얼굴이었고, 간혹 ‘동정심’을 자극했던 인물은 색을 칠하지 않은 채 연필 스케치로 남겨 놓았다.
갑자기 그때 얼굴들이 생각난 것은 최근에 만난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나서다. 한 명은 직장에 다닐 때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절친한 후배였다. 다른 한 사람은 일로 만난 거래처 사장인데, 나보다 나이가 어려 지금까지 친동생처럼 지내고 있다.
옛 직장동료의 자녀 결혼식장에서 만난 후배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몸과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사업 실패와 이혼의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운전 중에 전조증상이 나타나 바로 병원으로 이동했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후배는 최고 명문대 출신이었다. 회사 다닐 때 양팔을 살짝 벌려서 걷는 경향이 있어 직원들 사이에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며 놀림을 받곤 했다. 지금은 양팔의 힘이 빠져 처져 있었다. 얼굴에서는 그의 인생 결과물이 오롯이 드러나 보였다.
하지만 그가 말했다. “선배, 이 지경이 됐어도 마음을 먹은 게 하나 있어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을 해요.” 나는 말했다. “얼굴이 펴져야 몸과 마음이 펴지는 법이다. 매일 얼굴을 다림질한다는 마음으로 실행해라.”
다른 한 사람, 그의 청춘 시절은 신성일 배우 만큼 잘생긴 얼굴의 ‘테토남’이었다. 그가 폰을 열어 보여준 리즈시절의 사진이 그랬다. 하지만 달디달았던 인생이건 쓰디쓴 삶이건 평지풍파를 거치지 않는 인생이 있겠는가. 고요 속에서도 삶에 금이 갈 수 있는 것이고, 고요한 적막 속에서도 바람은 불고 있는 법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의 삶은 무척 파란만장했다. 자수성가한 뒤안길을 보면, 삶은 전선에 투입된 전투병에 가까웠다. 빈손으로 생업을 시작했기에 마음대로 챙겨 먹기 어려웠고, 추위와 더위는 맨몸으로 이겨내야 했다.
가정을 꾸린 후에도 삶은 바람과 달리 평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경험의 품삯들은 고스란히 얼굴에 엉겨 붙어 버렸다. 강수진의 발에 불거진 옹이 같은 큼지막한 굴곡들이 그의 얼굴에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았다. 동생은 사진찍기를 사양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굴과 달리 발은 숨겨져 있어 스스로가 드러내지 않으면 삶의 고난을 읽어낼 수 없다. 하지만 얼굴은 숨길 여지가 없다.
인지편향 메커니즘 차원에서 첫인상은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상대를 0.1초 안에 평가할 수 있다. 프린스턴대 연구에서는 첫인상을 통하여 신뢰도, 호감도, 매력도를 판단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얼굴은 사람의 ‘창(窓)’과 같다. 창을 통해 안팎을 볼 수 있듯이 사람도 그렇다. 얼굴은 투명한 유리와 같아 전부 읽어낼 수 있다. 나는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얼굴은 ‘훈장’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나의 얼굴이 아닌, ‘남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비추어지는 내 얼굴의 수준은 어떠할까?
얼굴은 양말과 신발에 이중으로 숨겨진 발과 함께 인생의 함의가 들어있다. 최민식 배우처럼 발이 못 생겨서 안 보여 줘야겠다고, 박지성과 강수진처럼 드러난 발은 신화였다고, 하더라도 생(生)의 은근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발과 얼굴, 얼굴과 발이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을 볼 때마다 반복한다. “인상 쓰지 말아라”, “웃어라. 입으로 웃기가 어색하면 눈으로 웃어라!” 언어 구사는 때로는 공격적이어야 한다. 비로소 동생은 살짝 웃는다. 동생의 리즈시절의 얼굴을 다시 찾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테지만, 나는 동생을 볼 때마다 말로 공격할 생각이다. ‘전쟁터에서도 삶을 잘 일궈냈으니 이제 그 얼굴에 훈장을 걸어 주어라!’라고 말이다.
묵묵히 세상을 걸어가는 발과 빛을 수분처럼 머금은 얼굴은 세월의 꽃밭이 되고 자신의 발자취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