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가끔, 개념이 없는 행동을 하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한다.
"역시 중국인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감정이 아닌 단순한 수치로 비교를 해보자.
중국인구의 인구는 약 1,416,096,000명, 국토면적은 9,596,961㎢.
인구밀도는 '인구/국토면적'이니까 중국의 인구밀도는 약 148명/㎢.
일본인구의 인구는 약 123,103,000명, 국토면적은 377,975㎢. 일본의 인구밀도는 약 326명/㎢.
우리나라 인구는 약 51,684,000명. 국토면적은 100,363㎢. 우리의 인구밀도는 약 515명/㎢
이제 각 나라에 '무개념(인간쓰레기)'이 1만 명씩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중국은 약 0.0007%로 약 141,610명 중 1명.
일본은 약 0.0081%로 약 12,310명 중 1명.
한국은 약 0.019%로 약 5,168명 중 1명.
하루에 무작위로 사람을 100명 정도 마주친다고 가정하면, 각 나라에서 ‘무개념’을 만날 확률은 이렇다.
중국은 하루 평균 약 0.007명 수준으로, 약 1,400일에 한 번 정도 만날 확률이다.
일본은 하루 평균 약 0.081명으로, 약 123일에 한 번.
한국은 하루 평균 약 0.019명으로, 약 52일에 한 번 꼴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딱 그날”이 아니라, 기댓값 기준의 평균 간격이라는 점이다.
운이 나쁘면 연달아 만나고, 운이 좋으면 한참 뒤에 만난다. 다만 방향성은 분명하다.
중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무개념’을 체감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우리가 “역시 중국인”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릴 정당성은 생각보다 희박해진다.
어쩌면 그 말은 내가 방금 겪은 불쾌감을 가장 쉬운 스티커로 정리해버리는 습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확신한다. 여기서부터가 흥미로운 지점이다.
통계는 사람을 조심스럽게 만들고 계산은 속도를 늦추는 반면, 미디어는 조심을 싫어하는 대신 확신을 판다.
확률은 그럴수도 있지만, 화면은 늘 '바로 지금'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는 52일에 한 번 꼴일지도 모르는 무개념을 매일처럼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를 TV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의 주말 루틴은 토요일와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영화 프로그램을 꼭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면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했는데 요즘은 채널을 돌리면 온통 자극적인 내용들뿐이다.
한문철을 보면 운전이 무섭다.
이혼숙려캠프를 보면 결혼이 무섭다.
물어보살을 보면 인간이 무섭다.
이호선상담소를 보면 가족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
예전에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가끔 틀어놨지만, 요즘은 그냥 채널을 돌려버린다.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도 세상에 무개념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화면은 그걸 '있다'가 아니라 '넘친다'로 바꾼다. 그렇게 현실은 숫자보다 자극이 되고, 자극은 곧 확신이 된다. 그리고 그 확신은 대체로 바깥을 향한다. 그게 가장 쉬운 방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국가', '가족', '친구', '연인' 같은 단어를 꽤 감성적으로 들고 살아왔다. 뭔가 차오르는 단어들.
그런데 최근에는 그 단어들이 쉽게 무너지는 이야기들을 더 자주 보게 된다. 가족은 보호막이어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압박이 되었고, 사회는 안전망이어야 하는데 사람을 더 고립시킨다.
우리는 남을 욕할 때 '국적'을 꺼내 들만큼 멀리 있는 문제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내가 사는 이곳의 밀도와 구조와 피로를 대신 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시 중국인들'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 말이 진짜 중국을 향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오늘 마주친 불쾌감에 붇여버린 가장 쉬운 이름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마트에서 세일하는 뉴스에는 욕심을 부리는 사진들이 붙는다.
맛동산 대란 같은 장면을 보며 누군가는 또다시 '중국인스럽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보다 더 자주, 더 가까이에서 '무개념'을 마주치게 설계된 곳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무분별한 혐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창피한 적대행위들은 상대를 깎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더 좁은 섬에 가두는 일일 수도 있다. 확신은 쉬운데 생각은 어렵다. 그리고 요즘은 자극이 생각을 너무 쉽게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