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도미난스(Homo dominans)

8. 갑질하는 인간

by NaeilRnC

호모 도미난스는 라틴어 dominari /ˈdɑːmɪˌnɛər/ *(지배하다, 군림하다)*에서 따온 말로,

권한을 ‘책임’이 아니라 통제의 쾌감으로 사용하며 타인을 아래로 눌러 질서를 만드는 인간을 뜻한다.

Homo dominans /ˈhoʊmoʊ ˈdɑːmɪnænz/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갑질은 무례가 아니다. 권력의 사용법이다. 호모 도미난스는 복종을 목적으로 사람을 줄 세운다.

그래서 지시는 점점 사실과 멀어진다. 필요한 일보다 “내가 시키면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

그는 결과를 만들기보다, 결과를 만드는 사람 위에 서려 한다.


이 유형이 등장하는 순간은 명확하다.

요구가 ‘업무’에서 ‘복종 테스트’로 바뀌는 순간.
기준이 ‘성과’에서 ‘기분’으로 바뀌는 순간.
설명이 사라지고 기류가 규칙이 되는 순간.


호모 도미난스는 “선택적”이기 때문에 비열하다. 그는 상대가 반격할 수 없는 지점을 정확히 고른다.
그 지점이 바로 ‘을’이다. 그래서 갑질은 늘 ‘정당한 얼굴’로 온다.


“규정대로 하세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잖아요.”

“민원 넣겠습니다.”

겉으로는 질서다. 실제로는 폭력의 외주화다.

본인은 손을 더럽히지 않고, 시스템을 칼처럼 빌려 상대를 누른다.

그리고 그걸 권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건 권리가 아니라 편의다. 그리고 편의가 사람을 밟는 순간, 폭력이 된다.


이 비열함이 가장 잘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첫째, 아파트 경비원 앞에서.

택배가 늦는 것도, 주차가 꼬인 것도, 규정이 불편한 것도 경비원이 만든 세계가 아니다.

그런데도 경비원에게 따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결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은 통제감이다.

“택배 왜 이렇게 늦어요?”
“저 차 누구 거예요? 당장 빼라고 하세요.”
“왜 인사 안 해요?”

여기서 질문은 정보가 아니라 서열 확인이다. 상대는 그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래서 더 안전한 표적이 된다.


둘째, 콜센터에서.
호모 도미난스는 전화기 앞에서 갑자기 왕이 된다.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눌러도 되니까.
“너네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이래?”
“책임자 바꿔.”
“지금 녹음하고 있으니까 조심해.”

콜센터는 ‘규정’과 ‘스크립트’로 움직인다. 상대는 그 규정 밖으로 나올 권한이 없다.

그러니까 그는 더 강해진다. 사람을 상대로 화를 내지만, 사실은 반격이 없는 구조를 상대로 이긴 척을 한다.

이게 비열함이다. 싸움이 아니라 연습이다. 약자를 상대로 하는 ‘권력 연습’.


셋째, 하청·협력사·외주 현장에서.
호모 도미난스는 계약서를 ‘일의 약속’이 아니라 ‘사람을 누르는 도구’로 쓴다.

“이거 바로 되죠?”
“안 되면 다른 데 맡길게요.”
“돈 주잖아요.”

여기서 핵심은 언제나 같아진다. 위험은 아래로, 성과는 위로.

일정이 촉박한 이유는 위에서 만들었는데, 책임은 아래가 진다.

비용 절감은 위에서 결정했는데, 희생은 아래가 한다. 그리고 그 희생을 “협조”라고 부른다.


호모 도미난스는 실수를 ‘발견’하지 않는다. 실수를 생산한다.
모호하게 지시한다. “센스 있게 해.” “분위기 좀 알지?”
구체가 없으면 상대는 반드시 틀린다. 틀리면 꾸중할 명분이 생긴다.
그리고 업무가 아니라 인격을 친다. “너 원래 이런 애지?” “왜 이렇게 답답해?”

그 순간부터 일은 해결될 수 없고, 사람만 망가진다.

그는 일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길들이는 방식으로 통제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갑질은 강함이 아니라 비겁함의 작동 방식이다.
자기 인생이 뜻대로 안 풀릴수록, 남의 하루를 뜻대로 움직여보려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늘 같다. 반격이 어려운 사람. 인내가 직업인 사람. 참는 게 손해를 줄이는 사람.
그는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 정확히 찌른다. 그래서 비열하다.


당신이 보고 싶은 질서는 무엇인가.
규칙이 사람을 지키는 질서인가, 아니면 사람이 눌려서 유지되는 질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