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옵티마이잔스(Homo optimizans)

9. 최적화하는 인간

by NaeilRnC

호모 옵티마이잔스는 라틴어 optimus(최선의, 가장 좋은)에서 파생된 optimizare /ˈɑːptɪˌmaɪz/ (최적화하다)에서 따온 말로, 삶의 선택을 기쁨이나 의미가 아니라 효율의 항목으로 바꿔 관리하려는 인간을 뜻한다.

Homo optimizans /ˈhoʊmoʊ ˈɑːptɪˌmaɪzænz/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최적화는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최적화가 습관이 될 때다.

호모 옵티마이잔스는 무언가를 ‘좋아서’ 하려다가도, 먼저 묻는다.


“이게 이득이야?”

“시간 대비 효율이 맞아?”

“루틴에 넣을 가치가 있어?”


그에게 삶은 경험이 아니라 설계다. 설계는 안정적이지만, 종종 메마르다.

왜냐하면 설계가 강해질수록, 우연이 설 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호모 옵티마이잔스는 쉬는 법도 최적화한다.


휴식은 휴식이 아니라 “회복”이 된다.

산책은 산책이 아니라 “유산소 40분”이 된다.

취미는 취미가 아니라 “자기계발”이 된다.

즐거움조차 KPI를 얻는다. “오늘은 제대로 쉬었나?” “충전이 됐나?”


쉬는 시간마저 성과로 확인하려는 순간, 쉼은 더 이상 쉼이 아니다. 그건 업무의 다른 이름이다.

이 인간형이 가장 자주 쓰는 언어는 ‘합리성’이다. 합리성은 언제나 멋지게 들린다.

그러나 합리성이 과해지면, 인간은 계산기가 된다. 계산기는 정답을 내는 대신 표정을 잃는다.


호모 옵티마이잔스가 하는 계산은 대개 이런 식이다.


지금 만나면 피곤하니까, 다음으로 미룬다.

이 대화는 생산적이지 않으니, 길게 하지 않는다.

이 일은 내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되니, 최소로 한다.

이 취미는 돈이 안 되니, 줄인다.


이 선택들 하나하나는 틀리지 않다. 오히려 성실하다.

문제는 이 성실함이 쌓인 결과가 ‘살아남은 삶'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최적화는 낭비를 줄이지만, 동시에 ‘쓸모없는 기쁨’도 함께 줄인다.

그리고 인간의 기쁨 중 상당수는 원래 쓸모없다.


쓸모없어서 오래 남는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당신은 갑자기 한 시간이 비었다.

예전 같으면 멍하니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창밖을 봤을지도 모른다.

아무 의미 없는 영상 하나를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모 옵티마이잔스는 그 한 시간을 그냥 두지 못한다. 그는 즉시 배치한다.

운동을 끼워 넣고, 밀린 업무를 당기고, 루틴을 보정한다.

빈 시간은 공백이 아니라 손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빈틈이 없다. 문제는 빈틈이 없을수록, 삶이 종종 숨을 못 쉰다는 점이다.

숨은 계획에 없는 동작이다. 숨은 효율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숨을 쉬어야 산다.


나는 이 인간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우리는 “자기관리”라고 말하지만, 어떤 관리는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대신 삶을 좁힌다.

효율을 올리는 동안,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는 뒤로 밀린다.

최적화는 목적을 선명하게 만들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목적을 흐리게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최적화는 ‘무엇을 할지’를 잘 결정하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는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요즘 지키는 루틴은 당신을 살리고 있나.

아니면 당신을 잘 굴러가게만 만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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