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가속하는 인간
호모 악셀레란스는 라틴어 accelerare /ækˈsɛləˌrɛər/(가속하다, 재촉하다)에서 따온 말로,
더 빨리 처리하고 더 빨리 도달하려다 의미를 놓치는 인간을 뜻한다.
Homo accelerans /ˈhoʊmoʊ ækˈsɛlərænz/ 는 그 인간형의 이름이다.
가속은 발전처럼 보인다. 빠른 건 대체로 ‘능력’으로 취급된다.
문제는 속도가 어느 순간부터 수단이 아니라 도덕이 된다는 데 있다.
느리면 게으른 것 같고, 멈추면 뒤처진 것 같고, 곱씹으면 비효율적인 것 같다.
그래서 호모 악셀레란스는 속도를 올리면서 동시에 삶의 밀도를 잃는다.
이 인간형의 하루는 “깊게”가 아니라 “빨리”로 완성된다.
대화는 길면 피곤하고, 생각은 길면 불안하다.
메일은 요점만, 회의는 결론만, 책은 핵심만, 영상은 1.5배속만.
그는 시간을 아끼지만, 그 아낀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는 자주 모른다.
속도는 늘 시간을 벌어주는 척하지만, 대개는 다음 속도를 살 예산이 된다.
호모 악셀레란스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이것이다. “일단.”
일단 보내고, 일단 정리하고, 일단 결정하고, 일단 넘어가자.
‘일단’이 늘어날수록 삶은 임시가 된다.
임시가 반복되면 그게 본편이 된다. 그렇게 본편이 사라진다. 전형적인 장면은 이렇다.
당신은 무언가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해에는 시간이 든다. 시간은 늘 부족하다.
그래서 타협한다. 배속으로 듣고, 요약으로 읽고, 핵심만 뽑고, 결론만 기억한다.
그 순간 당신은 정보를 얻는다. 대신 맥락을 잃는다.
맥락이 없으면 판단은 쉬워지고, 쉬워진 판단은 대개 거칠어진다.
가속의 진짜 비용은 ‘속도’가 아니라 회복 불가능성이다.
빨리 지나가면 다시 돌아가기가 어렵다.
빨리 결론 내리면 수정이 느리다.
빨리 관계 맺으면 깊어지기 전에 소모된다.
호모 악셀레란스는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 “놓친 것을 확인할 시간”까지 함께 잃어버리면서.
그래서 그는 자주 공허하다. 많이 했는데 남는 게 없다.
가장 위험한 건, 그 공허를 또 속도로 덮으려 한다는 점이다.
더 빨라지면 공허가 따라오지 못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공허는 속도를 못 따라오는 게 아니라, 속도 속에서 더 커진다.
의미는 통과 속도에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는 머문 시간, 되돌아본 시간, 낭비한 시간, 말없이 버틴 시간에서 생긴다.
나는 이 유형을 따로 불러야 했다.
우리는 빨라지는 걸 당연한 진보라고 부르지만, 어떤 빨라짐은 삶을 줄인다.
가속은 시간을 벌어도, 나를 남기지 못한다.
결국 남는 건 “처리했다”는 사실 뿐이고, “살았다”는 감각은 얇아진다.
당신은 요즘 무엇을 ‘통과’만 하고 있나.
그리고 그 통과 속도 때문에, 어떤 의미를 잃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