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먹는 시대

미식 소비의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by NaeilRnC

1. 연구배경 및 목적


1) 연구배경

불경기·고물가 국면에서도 ‘맛집’ 소개 프로그램과 요리 예능이 지속적으로 생산·소비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 현상은 단순히 대중이 음식을 좋아한다는 기호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해명되기 어렵다. 경제적 압박은 소비 전반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개인의 선택 비용(실패 비용)을 증가시키고 일상의 불확실성을 확대한다.
그 결과 소비자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문제를 “무엇이 안전한 선택인가”의 문제로 재구성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음식/미식 콘텐츠는 불황기의 정서적 긴장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이면서, 동시에 ‘인증된 선택’을 제공하는 사회적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실제로 내시 외(Nash et al., 2020)는 경제적 충격기 식행동 변화가 저소득층에서 특히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Changes to diet during these times are profound, particularly for lower-income groups”라고 요약한다(Nash et al., 2020, p. 3). 즉 불황기의 식행동은 생리적 필요만이 아니라, 경제적 제약과 심리적 불안이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Nash et al., 2020).

그러나 기존의 대중 담론에서 미식 콘텐츠 흥행은 흔히 ‘힐링’ 혹은 ‘취향’의 문제로만 이야기되고, 그 이면의 사회적 메커니즘(불안 관리, 선택의 외주화, 신뢰의 제도화)은 충분히 분석되지 않았다. 본 연구는 불황기 미식 흥행을 “맛의 선호”가 아니라 “신뢰/검증의 소비”로 해석하고, 이 과정이 어떤 구조적 원리에 의해 촉진되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


2) 연구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불황기에도 미식 소비와 관련 콘텐츠가 유지·강화되는 현상을 대체 소비(작은 사치) 논리와 연결해 설명한다(MacDonald & Dildar, 2020). 둘째, 음식이 불안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수행하는 정서 조절 기능을 컴포트 푸드 논의로 정교화한다(Pereira et al., 2024). 셋째, 맛집·셰프·심사·랭킹 등 ‘인증 장치’가 신뢰를 생산하는 방식이 결국 검증/감사의 확장(audit expansion)과 결합해, 신뢰가 “맛”이 아니라 “검증 의례”로 대체되는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논증한다(Power, 1994).

요약하면, 본 연구는 불황기의 미식 흥행을 “힐링”으로 미화하거나 “사치”로 비난하는 이분법을 넘어서, 불안—선택—신뢰—검증이 연결되는 사회적 회로를 이론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연구질문

연구목적에 근거하여 연구질문을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RQ1: 불황기에도 미식 관련 지출과 콘텐츠 소비가 유지되는 현상은 어떤 대체 소비 메커니즘으로 설명되는가?

RQ2: 불황기 미식 흥행은 어떤 방식으로 음식의 정서 조절(comfort) 기능과 결합하는가?

RQ3: 맛집/셰프를 둘러싼 ‘인증’(심사, 랭킹, 검증 포맷)은 어떻게 신뢰를 생산하며, 그 신뢰는 어떤 방식으로 검증 체계의 확장을 유발하는가?


2. 이론적 논의


본 연구는 불황기 미식 흥행을 설명하기 위해 (1) 불황기의 대체 소비(작은 사치), (2) 컴포트 푸드와 정서 조절, (3) 신뢰의 검증화(감사사회적 확장)라는 세 축을 중심 이론으로 채택한다. 세 축은 각각 ‘왜 소비가 유지되는가’, ‘왜 음식이 위로가 되는가’, ‘왜 그 위로가 인증과 검증으로 굳어지는가’를 분담해 설명한다.


1) 불황기의 대체 소비: ‘작은 사치’와 미식의 생존

맥도널드와 딜다르(MacDonald & Dildar, 2020, p. 1)는 경제침체기 소비가 특정 범주에서 오히려 강화될 수 있음을 립스틱 효과라는 현상으로 제시하며, “The lipstick effect is a phenomenon whereby expenditures on cosmetics increase during economic downturns”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불황기의 소비가 ‘전면적 축소’만으로 나타나지 않고, 상대적으로 감당 가능한 보상 소비로 재배치될 수 있음을 함의한다(MacDonald & Dildar, 2020). 이 관점에서 미식 소비는 불황기에 사라지는 사치가 아니라, 큰 지출을 대체하는 작은 지출로 위치할 가능성이 있다.

미식은 “먹는다”는 생활 필수의 외피를 가지므로, 동일한 지출이라도 심리적 정당화가 비교적 용이하다.
또한 선택 실패 비용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한 번의 외식/한 번의 주문”을 실패하지 않기 위한 선택으로 만들려는 동기를 갖는다. 따라서 불황기의 미식 흥행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불확실성 하에서 작동하는 보상-정당화-실패회피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MacDonald & Dildar, 2020).


2) 컴포트 푸드: 불안의 시대에 음식이 수행하는 정서 조절

불황은 물가와 소득만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다는 감각(통제감)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때 음식은 감각적으로 즉각적이며 결과가 비교적 확실한 행위로서, 불안과 긴장에 대한 정서 조절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페레이라 외(Pereira et al., 2024, p.1)는 컴포트 푸드 개념을 정리하면서 그 소비가 “subjective and influenced by individual experiences”임을 명시한다.

또한 컴포트 푸드를 “comfort foods are foods already known and appreciated by the individual”이라고 규정한다(Pereira et al., 2024, p. 3). 즉 컴포트 푸드는 ‘객관적으로 좋은 음식’이 아니라, 개인이 이미 알고 있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온 경험의 축적 위에서 익숙함과 안정을 제공하는 음식이다(Pereira et al., 2024). 다만 해당 문헌은 범위검토 프로토콜로서, 본 연구는 이를 실증적 효과의 근거라기보다 ‘개념 정의 및 연구동향 정리’의 근거로 제한하여 활용한다(Pereira et al., 2024).

이 관점에서 맛집/미식 콘텐츠가 불황기에 인기를 끄는 것은, 새로운 맛의 탐험이라기보다 익숙한 안정과 실패하지 않을 선택을 제공하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인증된 맛집/셰프/레시피는 ‘내가 선택을 잘못하지 않을 것’이라는 감각을 제공하며, 이는 불황기의 불안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Pereira et al., 2024).
결과적으로 미식 흥행은 “맛의 경쟁”이라기보다, 불황기의 정서 상태가 소비 형태를 재구성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Nash et al., 2020; Pereira et al., 2024).


3) 신뢰의 검증화: 감사의 확장과 ‘인증된 맛’의 제도화

불황기 미식 흥행에서 핵심은 ‘맛’의 상승이 아니라 ‘신뢰’의 거래가 강화된다는 점이다. 이때 신뢰는 개인의 경험(내가 먹어보고 판단)만으로 형성되기보다, 타인이 제공하는 검증된 정보(인증)를 통해 획득되는 경향이 커진다. 그 결과 미식 소비는 “맛을 즐기는 행위”에서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구매하는 행위”로 이동한다.

파워(Power, 1994)는 감사(audit)가 대체로 투명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정당화된다고 설명하며, “Audits are usually justified as enhancing the transparency of individual and corporate actions”라고 적는다(Power, 1994, p. 18). 이 진술은 신뢰가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 ‘자연 발생적 믿음’이라기보다, 투명성·검증·점검의 언어로 재구성될 수 있음을 함의한다(Power, 1994).

또한 파워(Power, 1994)는 시스템 중심의 감사가 실질보다 절차에 매달리면서 “의례화(ritual)”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고한다(Power, 1994). 따라서 미식 콘텐츠의 심사·랭킹·달인 인증·전문가 평가 같은 장치는 소비자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검증된 선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신뢰를 형성하는 경로를 ‘절차 중심의 의례화’로 이동시킬 수 있다(Power, 1994). 이때 소비자는 신뢰를 획득하지만, 그 신뢰는 미각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검증 절차의 통과 여부에 의해 규정되는 방향으로 강화된다(Power, 1994).

따라서 미식 흥행은 위로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신뢰가 ‘먹어보고 판단’이 아니라 ‘검증을 통과한 선택’으로 고정되는 방향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Power, 1994).

요약하면, 불황기의 미식 흥행은 (1) 대체 소비로서의 작은 사치, (2) 컴포트 푸드로서의 정서 조절, (3) 신뢰의 검증화라는 세 축이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MacDonald & Dildar, 2020; Pereira et al., 2024; Power, 1994).
이 결합이 강화될수록 사회는 “맛의 다양성”보다 “인증된 안전”을 선호하고, 소비자는 선택을 스스로 책임지기보다 권위/검증 체계에 외주화하는 경향을 띨 수 있다(Power, 1994).
본 연구는 다음 절에서 이 이론적 틀을 토대로, 미식 콘텐츠의 ‘인증 장치’가 불황기의 불안과 결합하는 경로를 분석할 수 있는 개념적 모형을 제시한다.


3. 개념적 분석모형 및 가설

1) 분석모형의 기본 가정

본 연구는 불황기 미식 흥행을 “불안(경제·정서) → 선택의 위험(실패비용) → 신뢰의 외부화(인증 의존) → 검증 체계의 강화(감사의 폭발) → 다시 불안 강화”라는 순환 구조로 설정한다(Nash et al., 2020; Power, 1994).
이 구조에서 미식 소비는 ‘맛의 탐색’이 아니라, 불황이 증폭시킨 불안 속에서 실패를 회피하기 위한 안전한 선택의 구매로 재해석된다(MacDonald & Dildar, 2020). 또한 음식은 통제감 약화 국면에서 정서 조절의 매개가 될 수 있으며, 이때 소비자는 ‘새로움’보다 ‘익숙함’을 통해 안정감을 획득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Pereira et al., 2024).
따라서 본 연구는 미식 콘텐츠가 제공하는 각종 ‘인증 장치’(심사, 랭킹, 달인 인증, 전문가 평가)가 불황기의 불안과 결합할 때, 신뢰가 경험 기반에서 절차 기반으로 이동하는 메커니즘을 핵심 설명 대상으로 삼는다(Power, 1994).


2) 핵심 개념의 조작적 정의

분석모형의 경험적 적용을 위해 핵심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불황기 불안(경제·정서): 경제적 제약과 미래 불확실성이 결합해 식행동 변화 및 생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압박 상태를 의미한다(Nash et al., 2020).

선택 실패비용: 외식/주문 등 미식 선택이 실패했을 때 체감되는 금전적·정서적 손실(후회, 불만, 낭비감)을 포함한다(MacDonald & Dildar, 2020).

정서 조절로서의 음식 소비: 음식 섭취가 ‘안정감’과 ‘익숙함’을 제공하여 불안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현상을 의미한다(Pereira et al., 2024).

인증 장치: 미식 콘텐츠가 ‘좋은 선택’을 보증하기 위해 사용하는 제도화된 신호(심사, 순위, 인증, 전문가 평가 등)를 의미한다(Power, 1994).

신뢰의 검증화: 신뢰가 개인의 경험·관계에서 형성되기보다, ‘검증 절차의 통과’와 ‘투명성’의 언어로 재구성되는 현상을 의미한다(Power, 1994).

감사의 폭발(audit explosion): 검증·점검·평가가 사회적으로 확대되며, 실질보다 절차가 강화되고 의례화될 위험이 커지는 상태를 의미한다(Power, 1994).


3) 분석모형

본 연구의 모형은 세 개의 연결 고리를 전제한다. 경로 A는 "불황 → 대체 소비(작은 사치) → 미식 지출/콘텐츠 소비 유지" 모형으로 불황기에도 소비가 특정 범주에서 유지·강화될 수 있다는 관찰은 ‘립스틱 효과’ 논의에서 정식화된다(MacDonald & Dildar, 2020). 이때 미식은 “생활의 비용”으로 위장될 수 있는 사치이며,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보상 소비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MacDonald & Dildar, 2020).

경로 B는 "불황(통제감 약화) → 정서 조절 필요 → 익숙한 음식/안전한 선택 선호" 모형으로 불황은 정서적 긴장과 통제감 약화를 동반할 수 있으며, 음식은 즉각적 감각 경험으로서 정서 조절의 수단이 될 수 있다(Pereira et al., 2024). 컴포트 푸드는 개인 경험에 의해 구성되고 익숙한 음식에 대한 선호를 포함하므로, 불황기에는 ‘새로움’보다 ‘안전함’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Pereira et al., 2024). 또한 경제적 충격기의 식행동 변화가 특정 집단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불황이 음식 선택의 구조를 재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Nash et al., 2020).

경로 C는 "안전한 선택 욕구 → 인증 장치 의존 → 신뢰의 검증화 → 감사의 폭발(절차의 의례화)" 모형으로
인증 장치는 소비자의 불안을 낮추는 동시에, 신뢰의 형성 경로를 경험에서 절차로 이동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Power, 1994). 파워(Power, 1994)는 감사가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되는 방식을 지적하며, 그 과정에서 절차가 실질을 대체하는 의례화 경향이 강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Power, 1994). 따라서 미식 콘텐츠가 ‘검증된 선택’을 반복 생산할수록, 소비자는 신뢰를 얻지만 그 신뢰는 ‘맛의 축적된 경험’이 아니라 ‘검증된 표식의 통과’에 의해 규정될 가능성이 커진다(Power, 1994).


4) 가설 설정

위 모형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설정한다.


H1(대체 소비 가설): 불황기 인식 수준이 높을수록, 미식 관련 지출 및 미식 콘텐츠 소비 의도는 감소하지 않거나(유지), 상대적으로 ‘작은 사치’로 재배치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MacDonald & Dildar, 2020).


H2(정서 조절 가설): 불황기 불안(정서적 긴장)이 높을수록, ‘익숙한 음식/실패 가능성이 낮은 선택’에 대한 선호가 강화될 것이다(Pereira et al., 2024).


H3(인증 의존 가설): 선택 실패비용을 크게 인식할수록, 미식 선택에서 인증 장치(심사·랭킹·전문가 평가 등)에 대한 의존이 증가할 것이다(Power, 1994).


H4(검증화 가설): 인증 장치 의존이 높을수록, 신뢰는 경험 기반보다 절차 기반으로 형성되며(신뢰의 검증화), 검증의 확대(감사의 폭발)를 정당화하는 태도가 강화될 것이다(Power, 1994).


H5(순환 강화 가설): 신뢰의 검증화가 강화될수록, 개인은 ‘안전한 선택’에 대한 요구를 더 강하게 제기하며, 결과적으로 인증 장치 의존이 다시 강화되는 순환 관계가 나타날 것이다(Power, 1994).


5) 연구질문과 가설의 대응

RQ1은 H1을 통해 불황기 소비 유지의 경로(A)를 검증한다(MacDonald & Dildar, 2020).
RQ2는 H2를 통해 경로(B)의 정서 조절 메커니즘을 검증한다(Pereira et al., 2024).
RQ3는 H3~H5를 통해 경로(C)의 ‘인증→검증화→감사 확장→순환 강화’ 구조를 검증한다(Power, 1994).


참고문헌

MacDonald, D., & Dildar, Y. (2020). Social and psychological determinants of consumption: Evidence for the lipstick effect during the Great Recession. Journal of Behavioral and Experimental Economics, 86, 101527.

Nash, N., et al. (2020). Rapid review of moments of change and food-related behaviours. Food Standards Agency.

Pereira, J. M., Guedes Melo, R., de Souza Medeiros, J., Queiroz de Medeiros, A. C., & de Araújo Lopes, F. (2024). Comfort food concepts and contexts in which they are used: A scoping review protocol. PLOS ONE, 19(4), e0299991.

Power, M. (1994). The Audit Explosion. De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