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41

이호선의 솔루션 : 수상한 자 손절해

by NaeilRnC

좋은 사람으로 사는 건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많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욕실에서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한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문 밖을 나가 하루를 시작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내 여자친구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은 '동글이'다. 워낙 까칠하고 싸움닭 같은 나에게 동글동글하게 살라는 의미로 붙여줬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착한 사람'보다는 '무난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무난함은 종종 애매함으로 번역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애매하게 웃고, 애매하게 넘기고, 애매하게 이해해주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누구를 이해하는 건지 모른다.

상대가 나를 어려워하는 건지, 내가 나를 어려워하는 건지. 그러다 보니 가끔 쌓였던 게 폭발할 때가 있다.

그래서 뭔가 응어리를 쌓아두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문제는 그 '대부분'의 성향을 아주 능숙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상한 사람은 대개 악당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악당은 우리처럼 참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대놓고 나쁜 짓을 하거나 대놓고 무례하지도 않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친절하고, 말도 예쁘고 사연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처럼 선을 넘는 것에 대해 망설이지 않는다.


수상함은 늘 '증거'보다 '감각'으로 먼저 온다. 대화를 하고 나면 기분이 축축해지는 느낌.

문장을 몇 번 곱씹게 만드는 찝찝함. 그 사람의 말투를 떠올리면 가끔 몸이 경직되는 착각.

처음에는 내가 예민한 줄 알았다. 내가 피곤해서,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된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내가 찝찝했던 게 사실은 정확했던 거다.

이호선의 TV프로그램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이호선이 말한 '수상한자'가 그놈이었다. 뚜둔.


나는 그 '수상함'을 이렇게 정리해 봤다.


1. 수치심을 유발한다.

개떡같이 업무지시를 내리고 왜 자기에게 묻지 않고 마음대로 일 하느냐고 대놓고 모욕감을 줬다.

2. 상호작용이 부족하다.

회사의 직원들은 그와 대화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매일 점심을 같이 먹었지만 그는 늘 비켜서 있다.

3. 한계를 침범한다.

남의 대화를 유심히 듣다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어 '도와달라'라고 말하며 일을 잘게 쪼개 던지고 책임을 흐린다.

4. 자아를 파괴한다.

친절한 표정으로 "이 쉬운 걸 왜 못하지? 이상하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매 시간마다 체크한다.

5. 손해를 최소화한다.

자기가 던진 일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상대방 업무처럼 규정해 버린다. 그렇게 도와주던 사람이 담당자가 된다.

6. 절연이 필요해진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 그만둘 결심을 했다. 이대로 3월이 지나면 이 회사의 최고 경력자는 그가 된다.

7. 해결이 지연된다.

윗선에 보고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거리 둔 건지, 누군가의 조정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우리와 점심을 같지 먹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그를 보며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 뭐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늘 웃고 있는 표정이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말을 계속 바꾼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데 혼자 "내 의도는 이게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그를 보며 수상한 사람의 특징은 큰 사고가 아니라 작은 조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말을 바꾸고, 책임을 미루고, 경계를 조금씩 침식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나를 의심하게 만든다.

나도 그와 함께 일하며 '내가 이상한 건가'를 여러 번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 방식이 이상한 거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 앞에서 가면을 쓰지 않기로 했다. 불필요하게 웃지 않고, 불필요하게 설명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선을 정확히 말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3월 12일. 내 자리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자리가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좋다. 그가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일을 했다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동글이는 둥글게 살자는 별명이지만 선까지 둥글게 만들자는 뜻은 아니기 때문에 난 '그놈'보다 나은 사람이기 때문에.


만약, 3월 12일 이후에도 내 자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매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