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때 '내가 늙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형, 누나! 사랑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잘 인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매일 보는 얼굴이니까. 노화는 ‘사건’이 아니라 ‘업데이트’처럼 온다.
오늘도 어제랑 똑같이 살아있는데, 어느 날 누가 오래된 사진을 들이밀며 말한다.
“너 왜케 늙었어?”
그 말이 억울한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늙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이 가장 젊다. 그렇게 매일 가장 젊은 상태로 살아왔을 뿐인데….
한때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려워한다는 걸 느꼈다.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미묘하게 거리를 두는 느낌.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험악하게 생겼구나!’
‘내 얼굴에 “건들지 마”라고 써있나?’
근데 그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잘 안 보이는 흰머리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몰랐지? 매일 샤워하면서 거울도 보고, 머리도 감고, 양치도 하고…
심지어 때로는 거울을 보며 “오늘 괜찮은데?” 같은 헛된 자신감도 챙겼는데.
그 흰머리는 늘 거기 있었다. 아마 흰머리는 그런 방식으로 늙음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변하는 걸 잘 못 보고, 남들은 내 뒷통수에서 이미 모든 걸 읽는다.
그래서 “염색 좀 하고 다녀”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됐었다.
‘아니, 내 머리가 그렇게 하얗다고?’ 싶었는데, 최근에 염색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염색을 하니까,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하얗게 물들어 있었는지가 역설적으로 한눈에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은 젊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동안 내가 얼마나 흰머리를 키워왔는지 증명하는 배경이더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회사에 오고 나서 나는 매일 나이를 먹는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연령대가 낮다.
가장 젊은 친구가 27세, 그 위가 30세, 34세, 37세, 42세, 나. 이 라인업이 묘하다.
나는 팀원들 사이에 섞인 사람이 아니라, 한 시대가 섞여 들어온 느낌이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늙었구나’라는 생각이 매일 든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숫자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생활 방식이, 나의 생활 방식을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매일. 거의 의식처럼. 나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회사에 믹스커피도 있고 캡슐도 있고 공짜로 먹을 커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왜 굳이 밖에 나가서 커피를 사지? 그들에겐 커피가 ‘카페인’이 아니라 외출이고,
‘한 잔’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인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은 가끔 나를 보며 묻는다.
“제가 귀여우세요?”
응? 갑자기? 나는 그 질문이 참 신기했다.
내가 “귀엽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본 적도 없고, 표정으로도 크게 드러낸 적이 없는데,
그들은 내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걸 알아챈다.
나에게 그렇게 물어본 동료는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 것 같아도, 자기들끼리 조잘조잘, 제잘제잘 떠들 때마다
내가 옅은 미소로 듣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듣고 있었을 뿐인데. 그걸 “관심”이라고 번역하는 감각. 그게 젊음인가. 하긴, 42세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이미 조카뻘이었을 사람들이다. 내 입장에서는 외모를 떠나 그들이 귀여울 수밖에 없다. 그냥 바라만 봐도 예쁘고 귀여운 젊은이들.
그런데 여기서, 늙음이 더 선명해진다. 예전엔 “귀엽다”는 말을 내가 하는 쪽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쟤 귀엽네”라고 판단하는 쪽.
근데 요즘은,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그들이 먼저 나에게 묻는다.
“제가 귀여우세요?”
그러니까 내가 늙었다는 건, 내가 늙어 보여서가 아니라 내 안에 ‘귀여움을 보는 눈’이 생겼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젊었을 땐 다들 경쟁자였고, 비교 대상이었고, 신경 쓰이는 존재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덜 싸우고 더 바라본다. 덜 증명하고 더 지켜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흰머리는 늙음의 증거가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살아왔다는 기록이고, 점심 후 커피는 그들이 마시는 게 아니라 내가 못 따라가는 리듬이고, “제가 귀여우세요?”라는 질문은 그들이 귀여워서가 아니라 내가 이제 누군가를 귀엽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어서 나온 질문이다.
이럴 때, 정말 ‘내가 늙었구나’ 싶다. 근데 뭐… 나쁘진 않다.
적어도 나는 아직, 누군가가 “제가 귀여우세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건들지 마’ 얼굴은 아니니까.
그리고 얘들아, 난 내 여자친구가 제일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