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51

「민물장어의 꿈」

by NaeilRnC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저 민물장어가 긴 여행을 끝내는 날은 누군가가 건강해지는 날일까?

아니면 민물장어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날일까?


일을 하다가 갑자기「민물장어의 꿈」이 생각났다.

내가 바라던, 간절히 바랐던 회사의 조건은 제안서를 쓰지 않고, 여섯 시 퇴근이 가능하며, 아침에 출근해도 어제와 큰 변화가 없는 일을 하는 회사였다. 그렇게 돌고 돌아 잠시 정착한 이곳은 제안서를 쓰지 않아도 되고 여섯 시에 퇴근해도 된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하면 제안서 대신 쓰는 계획서가 늘 바뀐다.

왜지?


문을 통과하는 순간 끝나는 게 아니라, 문이 계속 옮겨 다니면 사람은 계속 깎인다. 나는 지금 그걸 겪는 것 같았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기준이 매일 바뀌는 게 힘들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고, 오늘의 오답이 내일은 “왜 그걸 몰랐냐”가 된다.


잠시 딴 길로 새어본다.

직장인들에게 리더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뭐시기 말고, 정말 좋은 리더가 있을까?

이놈의 조직에서 늘 바뀌는 건 일이 아니라 기준이었다.나는 리더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기준을 바꾸는 사람, 그게 결국 리더다.


정正. 반反. 합合의 법칙에 따르면 부하직원에게 좋은 리더는 무능한 직원일 수 있다. 반면, 부하직원들에게 나쁜 리더는 유능한 직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인생은 늘 정. 반. 합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혼종이 자꾸 생겨난다. 무능한데 직원들에게 나쁜 리더. 보통 이런 경우 리더보다 오너가 맞을 수 있지만, 리더임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일은 하기 싫고, 책임은 지고 싶지 않고. 의견은 있지만 디테일은 없고. 뭐, 대충 그까이꺼를 외치지만 결국 결론은 이거다. “니가 알아서 해야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의 구성원들은 ‘전문성’이 떨어진다. 와인구단 같은 전혀 다른 전공분야와 ‘그놈’ 같은 사람들이 모여 옹기종기 고소하게 일을 하다 보니 늘 ‘오더’는 있지만 ‘책임’은 없다. 오더는 위에서 떨어지고, 책임은 아래에서 타고, 디테일은 공중에 떠 있다. 말 그대로 대략 난감인 콩까루다. 이 구조에서 성실한 사람은 “어쨌든 돌아가게 만들 사람”으로, “어쨌든 수습할 사람”으로 깎인다. 아, 글을 쓰다 보니 또 구구단 생각나네.


다시 돌아와서...

민물장어가 지치는 이유는 헤엄이 길어서가 아니라, 강의 방향이 매일 바뀌어서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좁고 좁은 저 문 앞에서 또 한 번 스스로를 깎는다. 그런데 오늘은 그 ‘방향’이 한 번 더 꺾였다. 이슈는 '선거'다.


우리 일은 어찌 됐든 보조금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더 예민해졌다. 그래서 상위부서에서는 가급적이면 4월 3일 이내에 모든 업무를 끝내길 원한다. “괜히 빌미를 만들지 말자”는 쪽이다.


하지만 나의 리더는 “지들이 뭔데”로 일축한다. 문제는 이 판단이 기개가 아니라 리스크로 청구된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근거가 있어야 움직이고, 근거가 없으면 멈춘다. 그런데 이 조직은 근거를 ‘훼방’으로 받아들이는 버릇이 있다. 디테일은 반항으로 취급된다.


결국 공무원들은 우리의 ‘주적’이 된다. 그들이 원래부터 악역이라서가 아니다. 그들도 답답할 것이다. 사실, 외인구단 같은 이 조직보다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일하는 공무원이 더 정확할 텐데, 이놈의 콩가루는 공무원의 의견과 디테일을 극도로 싫어한다. 오늘도 그랬다. 결국 내가 선관위에 의견을 물어보고 나서야 “아, x 됐다”로 일축할 뿐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를 더 견제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그놈’은 어제도 사고를 쳤고, 누군가를 ‘엿’ 먹였다. 그들 입장에선 더더욱 “저쪽이 또 무슨 일을 벌일지”를 예측해야 한다. 트럼프처럼 “까불면 죽는다”를 보여줄 힘도 없고, 보여줄 권한도 없다. 이럴수록 우리의 입지는 더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걸 기개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외인구단이라 부르지만, 외인구단은 진짜 뭐라도 해냈다.


아, 이 까깝하고 고구마 100개쯤 먹은 것 같은 상황. 난 이제 공무원들과의 관계도 풀어야 하나?

어제는 소방수였는데 오늘은 호모 레티피쿠스(Homo Rectificus)가 된 것 같다.


Rectificus는 라틴어 rectificare (바로잡다, 교정하다)에서 파생된 조어다.
rectus (곧은, 바른) + facere (만들다)의 결합에서 비롯된 말이다.

Homo Rectificus는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묻기보다, 일단 바로잡는 데 투입되는 인간형”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