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50

「그날」그리고 또다시 아홉수

by NaeilRnC

잔인한 햇살에도 그 봄은 아름다웠어.
숨죽인 들판 위로 꽃잎은 붉게 피어나…
모든 바람이 멎는 날, 그리움이 허락될 그날…


‘잔인한 햇살’이라는 그 은유가 참 멋지다고 생각되어, 한때 박효신의 「그날」을 열창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오늘 출근길에 이상하게 이 노래가 계속 맴돌았다.

그런 날이 있다. 별일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날. 그것은 전조였다.

나의 몹쓸 촉은 늘 안 좋은 것을 정확하게 느낀다. 용꿈을 꿔도 로또는 x또가 되고,

나는 또 '김또꽝'이 되는데 안 좋은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었다.


보통 컨설팅업계는 3월부터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2월까지는 늘 전쟁이다.

매일 제안서를 쓰고, 매일 야근을 하고, 매일 욕을 먹는다. 입에는 독기를, 가슴에는 사직서를 품고 출퇴근을 하는 시즌이 3월 전까지다. 그래서 어제부터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설마 했었다. 나는 휴일에도 가급적 쉴 수 있는 회사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친구는 대체공휴일인 어제 출근했고 새벽 3시에 퇴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쎄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었는데 돌이켜보니 오늘 아침의 그 노래에서 잔인한 햇살은 침략자였지만, 오늘의 햇살은 '일'이었다. 두 글자와 한 글자의 차이. 그런데 ‘일’은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침략은 지나갔지만 일은 매일 찾아온다.


봄은 입학과 개학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한 해의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는 시기다.

1월과 2월에 계획을 세우고, 3월부터 착수한다. 그때부터가 진짜다. 나는 아직 입사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배려와 인내는 허락되지 않는다. 지금부터 실수는 ‘사고’가 된다.


그리고 하나 걸리는 게 있다. 3월 12일, go인지 stop인지가 정해진다. 물론 go로 수렴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게다가 내 별명은 “인생이 아홉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면접 결과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뭔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오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1월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그놈'이 일을 던지는 것에 대해 계속 우려를 표했다.
내가 추진해야 하는 사업은 준비 기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3월에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이건 예민함, 게으름이 아니라 기본적인 일정의 상식이었다.


통상적으로 공무원 조직은 내년의 업무추진계획을 전년 10월에 완성한다. 그래야 예산이 편성되고, 그래야 사업 추진을 위한 사전 준비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급기관이 연말에 사업 설명회를 했다는 건 2월까지 '칠렐레 팔렐레 놀아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때까지 바짝 준비해서 3월에 바로 들어가라는 신호다. 그런데 이 놈의 조직은 며칠 전까지 멍을 때리고 있었다. 인근의 타 지자체들은 이미 사업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직 추진계획도 작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질문은 위에서 내려왔다.


"지금 당장 왜 안돼?"


결국 화살이 담당자인 나에게 꽂혔다. 마치 내가 시간을 멈춰 세웠다는 듯이. 마치 내가 준비 기간을 날려버린 것처럼 아침부터 대차게 까였다. 아… 갑자기 구구단 타임이다.

2 ×9, 3 ×6, 4 ×7, 6 ×3, 7 ×4, 9 ×2……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올 때면, 나는 늘 구구단을 외웠다.

이상하게 감정이 터지기 직전에는 논리나 명분이 아니라 이런 단순한 리듬이 사람을 붙잡는다.

어쩌면 내가 붙잡고 싶은 건 상황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내가 빡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이 불도 내가 꺼야 했다.

그렇게 나는 또 여기서도 '특급소방수'의 길을 걸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이곳에 합격했다고 했을 때 비슷한 기관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말했다.

“니 팔자가 그렇지 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내 인생은 늘 ‘정상’ 대신 ‘정확한 불길’만 준다.

잔인한 햇살에도 그 봄은 아름다웠다는데, 오늘 내 햇살은 아름답기는커녕, 정확하게 엿이다.

그리고 그 빛 아래서 나는 또 한 번 내가 꺼야 할 불의 위치를 계산하고 있다. 빌어먹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