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의 양상
현대의 전쟁은 미사일로 시작되지만, 결과는 시민의 삶으로 청구된다.
중세와 근대의 전쟁은 전장이 생활공간과 비교적 분리되어 있었다. 물론 약탈과 학살은 존재했지만, 적어도 전쟁은 “군대가 맞붙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성곽 밖에서 싸웠고, 전선은 지도 위에 그어졌다.
그러나 현대전은 다르다. 도시는 팽창했고, 군사시설은 생활권과 밀착되었으며, 에너지·금융·물류는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었다. 그렇게 전장은 더 이상 특정 지역에 고립되지 않게 되었다.
기지와 항만, 발전소와 통신망은 군사 인프라이면서 동시에 시민의 생존 인프라다. 그래서 현대전에서 전쟁의 발생은 군사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이 된다. 전쟁은 멀리서 시작하지만, 가까이에서 완결된다.
토머스 셸링(Thomas C. Schelling, 1966)은 『Arms and Influence』(군대와 영향력)에서 전쟁을 단순한 파괴 행위가 아니라 상대의 선택을 바꾸기 위한 강압(coercion)의 기술로 설명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부수는가"가 아니라 “상대를 얼마나 아프게 할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현대전에서 미사일은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행동을 수정하게 만들기 위한 신호가 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군사적 타격을 가하는 이유도 이 논리 안에서 설명될 수 있다.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예방적 강압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강압은 군사 목표만을 건드리지 않는다. 타격은 곧바로 해상로의 긴장으로 이어지고, 유가를 흔들고,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한다.
전쟁은 군사적 신호이지만, 충격은 경제적 현실로 번역된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832/1873)는 『On War』(전쟁론)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쟁은 정치의 연장을 넘어 사회 전체의 연장이 되었다. 정치가 경제와 여론, 금융과 공급망을 포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은 군사적으로는 제한적 타격일 수 있다. 그러나 중동 지역의 긴장은 곧바로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 프리미엄으로 반영되고,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물류비와 보험료가 상승한다.
전쟁은 군대끼리 싸우지만, 비용은 시장에서 계산된다. 그리고 그 시장은 시민의 생활비로 연결된다.
로버트 케오한(Robert O. Keohane)과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1977)는
『Power and Interdependence: World Politics in Transition』(권력과 상호의존: 전환기의 세계정치)에서 현대 국제질서를 ‘복합 상호의존’으로 설명했다. 세계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며, 힘은 군사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연결은 보호막이 아니라 취약점이 되기도 한다. 한 곳의 긴장이 여러 곳으로 국경을 넘어 가격표로 전파된다. 중동에서의 충돌은 한국의 주유소 가격을 올리고, 유럽의 공장 가동률을 낮춘다. 물류비와 보험료를 밀어 올린다. 그래서 현대전은 국지전이라 불리더라도, 경제적으로는 결코 국지적이지 않다.
메리 칼도어(Mary Kaldor, 1999)는 『New and Old Wars: Organized Violence in a Global Era』(새로운 전쟁과 오래된 전쟁: 세계화 시대의 조직된 폭력)에서 현대 분쟁은 전통적인 국가 간 총력전과 다르다고 분석했다. 전쟁은 군대의 격돌이 아니라, 통치·정체성·경제를 재편하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현대전에서는 군사시설과 생활공간이 겹친다. 정밀타격은 ‘정밀’하지만, 사회적 충격은 광범위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정밀타격을 했지만, 학교가 무너지고 학생들이 사망했다.
기지 하나가 타격되면 전력망이 흔들리고, 항만 하나가 마비되면 물류가 멈추지만 시민은 우발적 피해자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전장의 일부가 된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왜 이란은 같은 중동국가들을 공격하는가?”
이란이 주변 국가를 공격하는 이유는, 수십 년간 쌓여온 지정학적 생존 전략과 종교적·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이 결합된 결과다. 그리고 그 행동은 미사일의 궤적보다 ‘영향력의 지도’ 위에서 읽어야 더 정확히 보인다.
(1) ‘저항의 축’과 대리전: 전쟁을 외주화하는 방식
이란은 그동안 직접적인 전면전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 등 대리 세력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의 방법을 쓰려고 하는 것 같다.
이란은 객관적으로도 정규전 화력에서 미국·이스라엘에 열세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대적 전력을 만들고, 분쟁의 장소를 이란 본토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주변국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장면은 칼도어가 말한 ‘새로운 전쟁’의 현실적 형태와 맞닿아 있다. 전쟁은 국가 대 국가의 선이 아니라, 세력·정체성·후원 네트워크의 면(面)으로 번진다.
(2) 전략적 심원(Strategic Depth): “공격”이 아니라 “방어벽”이라는 논리
이란은 과거 이라크와의 전쟁을 통해 본토 침공의 공포를 학습한 적이 있다. 그래서 주변국에 완충지대를 만들려고 할 수도 있다. 사전에 주변국들에 공포를 주고 그들을 통해 반전의 양상을 이끌어내려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으로 접근하기 전에 다른 나라들과의 대치가 불가피하기 떄문이다.
(3) 사우디와의 패권 경쟁: 종교·정치가 결합된 장기전
중동의 균열은 단순한 국가 대 국가의 갈등만이 아니다. 이란(시아파 중심)과 사우디(수니파 중심)의 경쟁은 정통성과 영향력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란의 주변 개입은 단지 “누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경쟁국의 비용을 늘리고 힘을 분산시키는 전략적 선택이 된다. 이 지점에서 ‘주변국 타격’은 단발 사건이 아니라, 중동 패권 지도를 둘러싼 장기적 소모전의 한 장면이 된다.
(4) 이스라엘을 향한 ‘강압의 신호’: 파괴가 아니라 억지의 메시지
이란의 대이스라엘 위협은 종종 셸링이 말한 강압(coercion)으로 읽힌다. “우리는 너희 본토를 타격할 능력이 있다”는 신호를 통해, 상대의 선제 행동을 억제하려는 계산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강압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과정에서 시장과 공급망과 여론이 먼저 흔들린다는 점이다. 강압은 군사적 선택을 바꾸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비용을 확산시키는 장치가 된다.
(5) 호르무즈 해협과 ‘상호의존의 무기화’: 국지 충돌을 세계 비용으로 바꾸는 스위치
케오한과 나이가 말한 복합 상호의존의 세계에서, 연결은 곧 취약점이다. 호르무즈 해협 같은 병목지점은 군사 지형이면서 동시에 세계 경제 지형이다. 이란은 이 지점을 흔들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우리가 흔들리면 너희도 흔들린다”는 압박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란의 행동은 군사적 승패를 넘어, 유가·물류비·보험료·환율이라는 사회적 청구서로 번역되며 전 세계에 파장을 남긴다. 현대전에서 ‘공격’은 종종 파괴가 아니라 가격표를 흔드는 능력으로 완성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이유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핵 개발 가능성, 미사일 전력, 역내 대리세력의 활동은 전략적 위협으로 인식된다. 억지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항상 비용을 수반한다. 문제는 그 비용이 군사적 계산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현대전은 억지를 위해 시작되지만, 결과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과 시민의 불안을 확대시킨다.
베리 포즌(Barry R. Posen, 1993)은 『The Sources of Military Doctrine』(군사교리의 원천)에서 국가의 군사행동은 감정적 충동보다 “위협 인식”과 “가용 수단”, 그리고 “조직이 익숙한 교리”의 결합으로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즉, 전쟁은 어떤 나라가 본질적으로 난폭해서라기보다, 특정 위협을 특정 방식으로 해석하는 관성 속에서 재생산될 수 있다.
이 관성은 중동에서 특히 강하다. 이스라엘에게 이란의 핵·미사일 역량은 ‘잠재 위협’이 아니라 ‘시간 문제’로 인식되기 쉽고, 미국에게 역내 확전은 곧 에너지·해상로·동맹 체계의 불안정으로 환원된다. 그래서 군사 타격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자주 “정치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도구”처럼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은 곧 비용의 반복이기도 하다.
현대전의 가장 위험한 지점은 여기다. 전쟁을 결정하는 주체는 제한적이지만, 전쟁의 효과는 비선형적으로 확산된다. 억지를 위해 쏜 미사일은 상대를 향해 날아가지만, 그 파장은 세계의 시장과 시민을 향해 번진다.
강대국은 안보를 말한다. 그러나 안보는 군사적 안전만을 뜻하지 않는다. 안보는 에너지의 안정, 공급망의 지속성, 공론장의 건강성까지 포함한다.
또한 현대전에서는 군사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군사적으로는 필요한 타격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불안의 증폭 장치가 된다. 그래서 현대전의 진짜 폐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다.
전쟁이 정상화되는 것이다. 전쟁이 일상 뉴스가 되고, 가격 변동이 전쟁의 연장선이 되고, 시민의 불안이 상수처럼 굳어질 때, 우리는 이미 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셈이다.
전쟁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코 국지적이지 않다.
전쟁은 미사일로 시작되지만, 시민의 심리와 생활비에서 끝난다.
그래서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전쟁을 확산시키는가를 아는 일이다. 전쟁은 국경에서 벌어지지만, 그 영향은 언제나 사회 안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 사회는 결국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