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53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

by NaeilRnC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어릴 때부터 한 번쯤은 들어본 질문이다. 이상하게도 이 질문은 꽤 오래 버텼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고민했고, 중세 신학자들은 이걸 창조의 문제와 연결해서 싸웠다. 원인이 먼저인가, 결과가 먼저인가. 세상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예전까지 나는 이게 그냥 철학적인 말장난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현대 생물학은 의외로 꽤 시원하게 답을 내린다. 달걀이 먼저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닭이라는 종은 그렇게 오래된 동물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가축 닭은 약 8천 년 전 동남아시아의 붉은야생닭에서 가축화된 종이라고 한다. 반면 알은 훨씬 오래된 존재다.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공룡. 이 친구들은 이미 수억 년 전부터 알을 낳고 있었다. 그러니까 시간의 순서만 놓고 보면, 알은 닭보다 훨씬 먼저 세상에 있었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더 정확하게 바꿔야 한다.


“닭이 낳은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들어 있는 달걀이 먼저인가.”


진화론의 답은 분명하다. 닭과 거의 비슷한 새 두 마리가 교배를 했고, 그 과정에서 작은 돌연변이가 생겼다. 그 변화는 알 속의 수정란 단계에서 이미 결정되었고, 그 알에서 태어난 개체가 최초의 닭이 되었다. 그러니까 최초의 닭은 닭이 아닌 새가 낳은 달걀 속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닭보다 닭의 달걀이 먼저다. 여기까지가 과학의 답이다.


그런데 내가 이 질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답이 명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답이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을 닮아 있어서다. 우리는 보통 세상을 이렇게 이해한다.


"원인 → 결과"


그런데 자연은 그렇게 깔끔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닭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새 → 거의 닭 → 꽤 닭 → 닭"


이렇게 아주 작은 변화들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우리가 “이제 닭이다”라고 부르는 선을 넘어버렸을 뿐이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제부터 닭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사실은 인간이 만든 기준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꽤 많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조금씩 변하고 있었던 것들. 그러고 보면 사무실 일도 비슷하다.


사무실에서는 늘 닭만 보인다. 결과물, 보고서, 기획안, 최종안. 다들 어느 날 갑자기 닭이 튀어나온 것처럼 말한다.

“이거 왜 이렇게 커졌지?”
“이거 원래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잖아요.”
“이거 누가 시작한 거예요?”


하지만 실무를 해보면 안다. 대부분의 일은 처음부터 닭이 아니었다. 대개는 직장상사가 무심결에 던진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이것도 한번 알아보시죠.”
“이거 참고해서 정리해보면 되겠네요.”
“이런 방향도 생각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냥 가볍게 검토만 해보시죠.”


그때는 다들 그 말을 정말 말처럼만 듣는다. 가볍게 던졌고, 책임도 없어 보이고, 아직은 공중에 떠 있는 소리 같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말은 꼭 실무자의 책상 위에 착지한다. 거기서부터 그 말은 달걀이 된다.

자료를 붙이고, 근거를 찾고, 보고를 올리고, 수정하고, 다시 고치고, 범위가 늘어나고, 책임자가 생기고, 마감이 붙는다. 처음엔 “한번 보자”였던 일이 나중엔 “왜 아직 안 됐죠?”가 된다.


처음엔 아이디어였던 것이 나중엔 과업이 되고, 과업은 어느새 닭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사무실의 일도 사실은 이렇다.


"말 → 거의 일 → 꽤 일 → 일"


그런데 닭이 나온 순간, 다들 닭만 본다. 누가 언제 그 달걀을 낳았는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건 그냥 검토 차원에서 한 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왜 일을 그렇게 키웠어요?”


정작 달걀을 낳아놓고도, 닭이 커져서 돌아오면 남의 닭 취급을 한다. 그래서 이 질문이 마음에 든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생물학은 담담하게 말한다. 달걀이 먼저다. 그리고 사무실도 대체로 그렇다. 세상의 많은 일은 완성된 결과물로 시작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누군가 무심결에 던진 말 한마디, 아직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은 작은 달걀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그 달걀이 닭이 되어 돌아왔을 때 다들 닭만 보고 누가 그 달걀을 낳았는지는 모른 척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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