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언어 번역기1

“아무거나~”의 진짜 뜻

by NaeilRnC

“뭐 먹을래?”


이 질문에 여성이 “아무거나~” 라고 대답하는 순간부터 남자들은 선택의 순간에 종종 함정에 빠진다.

이 짧은 다섯 글자는 남자에게 늘 희망을 준다. 자유가 주어진 것 같고, 선택권이 생긴 것 같고, 드디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남자는 신이 나서 말한다.

“그럼 김치찌개?”
“그럼 순대국?”
“그럼 국밥?”

“아니면, 제육볶음?”


그러면 여성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진다. 그리고 남자는 곧 깨닫는다. 아, 아무거나가 아니었구나.

여성언어에서 “아무거나”는 사전적 의미의 아무거나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택지가 열려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 말의 실제 의미는 대개 이쪽에 가깝다.


“내가 지금 딱 정하긴 귀찮지만, 네가 센스 있게 골라줬으면 좋겠어.”

"내가 싫어하는 것만 피해서, 지금 분위기에 맞는 걸 골라봐.”


여기까지는 그냥 흔한 얘기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답은 이렇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테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너의 취향을 반영해서 제시해봐"


그러니까 여성이 말하는 '아무거나'는 시험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기서 자주 실수한다. 말을 문자 그대로 듣는다. “아무거나”라고 했으니 정말 아무거나 되는 줄 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여성은 메뉴 이름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의 기분, 속 상태, 날씨, 분위기, 관계의 온도까지 같이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비 오는 날, 조금 지쳐 보이는 표정, 카페에서 디저트를 한참 보던 사람, 아까부터 “달달한 거 땡긴다”는 말을 은근히 흘리던 사람. 이런 상황에서 “아무거나~”는 국밥과 제육볶음과 순댓국과 부대찌개 사이에 떠 있는 말이 아니다. 그건 거의 이렇게 번역해야 한다.


“내가 먼저 말하긴 좀 그런데, 네가 알아서 파스타나 샤브샤브나 디저트 있는 데로 이끌어봐.”


그러니까 여성언어를 이해하려면 단어를 듣지 말고 장면을 봐야 한다. 여성의 “아무거나”는 메뉴에 대한 말이 아니라, 대화를 상대에게 넘기면서도 기대는 남겨두는 방식이다.


조금 얄밉고, 조금 어렵고, 생각해 보면 조금 귀엽다. 그래서 중요한 건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이 말을 대하는 태도다. “아무거나”를 들었을 때 정말 아무거나를 던지는 사람보다는, 이렇게 한 걸음 더 묻는 사람이 훨씬 안전하다.


“음...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두부니까 오늘은 두부조림?”

"오늘 기분도 별로인 것 같으니까 너 좋아하는 곱창에 소주 똭?"


결국 여성언어 번역의 핵심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사랑이 조금 귀찮음을 이기는 순간이다. 그러니 다음에 여성이 “아무거나~” 라고 말하거든, 그 말을 자유이용권으로 듣지 말자.


그건 대개 배려와 센스를 시험하는 입장권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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