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딩크+전업주부" 이게 뭐야?

응, 파혼절차

by NaeilRnC

살다 보면 정말 처음 보는 조합 앞에서 사람 입에서 저절로 이런 말이 나온다.


“이게 뭐야?”


요즘 결정사 후기나 커뮤니티 글을 보다 보면 가끔 딱 그런 순간이 온다. 최근 본 사례도 그랬다.

남자. 삼성전자. 30대 후반. 수도권 아파트 2채 보유. 대출이자 월 200만 원 부담.

여자. 중소기업. 30대 중반. 요구 조건은 이랬다.

딩크. 전업주부. 고급호텔 결혼식. 집 한 채는 본인 명의.


이걸 보는 순간 머릿속이 잠깐 멈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나온다. 이게 뭐야?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정말 많이 맞았다. 선생님이 기분 나쁘다고 패고, 말 안 듣는다고 패고, 시험 망쳤다고 패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땐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그 시절엔 선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적어도 눈치는 줬다. 우리 철중이 형도 범죄자들에게 최소한의 선은 지켰다.


“형이 돈이 없다구 패구, 말 안 듣는다구 패구, 그렇게 형한테 맞은 애들이 4열 종대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형이 지금 기분이 괜찮거든? 그러니까 조용히 해라~”


하지만, 요즘에는 그게 없다. 물론 딩크도 가능하다. 전업주부도 가능하다. 세상에 불가능한 결혼 방식이란 원래 별로 없다. 문제는 그 조합이 아니라 그 조합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감각이다. 왜냐하면 딩크와 전업주부는 같은 종류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딩크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가족 구성에 대한 결정이다. 전업주부는 경제활동의 역할 분담에 대한 선택이다. 생활 구조에 대한 결정이다.


하나는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누가 돈을 벌고 누가 생활을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층위가 다르다. 그래서 이 둘을 같이 말하려면 그 사이를 이어주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생활 운영은 내가 맡고, 경제활동은 배우자가 중심이 되는 구조를 원한다. 이 정도는 있어야 아, 이 사람은 자기 삶을 생각해봤구나 싶다. 그런데 요즘 글들을 보면 그게 아니다.


아이도 안 낳겠다. 경제활동도 안 하겠다. 결혼식은 최고급으로 하겠다. 집은 내 명의로 돌려달라. 여기까지 오면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다. 개념의 문제다. 딩크를 말하려면 왜 아이를 낳지 않겠는지에 대한 삶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전업주부를 말하려면 왜 그런 역할 분담을 원하는지에 대한 책임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없고 단어만 있다. 그래서 답답하다. 사람들이 단어를 쓰는 게 아니라 단어를 소비하고 있다.


딩크도 모르고, 전업주부도 모르고, 결혼도 모르면서 그럴듯한 표현만 주워다가 자기 욕망 포장지로 쓰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조건 몇 개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같이 살아갈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유행어가 아니라 상식이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헷갈리면 물어보면 된다. 합의가 필요하면 대화하면 된다.


그런데 개념도 모르면서 권리부터 최대치로 선점하려 들면 그건 당당함이 아니다. 그냥 선을 넘은 거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는 말해줬을 거다.


“그러지 마라.”


지금은 그 말을 아무도 안 해준다. 그래서 더 자주 나온다.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