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은 쉽니다.

공무원은 노동자인가

by NaeilRnC

최근, 점심시간에 불을 끄는 관공서가 늘어나는 추세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중요한 서류를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발급받는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관공서에 불이 꺼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왜 공무원만 쉬냐?”


이 질문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정확하다. 이건 점심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을 무엇으로 보느냐의 문제다. 공무원도 분명 노동자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67)는 『자본론』(Das Kapital)에서 이렇게 말한다. “Labour is, first of all, a process between man and nature.” 이는 “노동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과정이다”라는 뜻이다.


노동은 공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서를 처리하는 것도 노동이고, 민원을 응대하는 것도 노동이며, 감정을 관리하는 것도 노동이다. 공무원은 매일 행정 서비스를 생산한다. 이건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생산 활동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기준에서 보면 공무원은 분명히 노동자다.


그런데 공무원은 노동자가 아니다. 막스 베버(Max Weber, 1922)는 『경제와 사회』(Economy and Society)에서 관료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Bureaucracy is the most rational means of exercising authority over human beings.” 이는 “관료제는 인간에 대한 지배를 행사하는 가장 합리적인 수단이다”라는 뜻이다. 공무원은 단순히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국가 권력을 대신 집행하는 존재다.


즉, 공무원은 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국가 그 자체처럼 작동한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민간은 밥을 먹으면서 일한다. 점심시간에도 일은 계속 되어야 한다. 전화는 계속 받고, 손님은 계속 응대하고, 일은 끊기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걸 기준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밥 먹으면서 일하는데?”


민간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이 실제로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게 정상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이 점심시간에 불을 끄는게 이상해 보인다.


공무원은 점심시간에 쉰다. 창구가 닫힌다. 민원은 멈춘다. 그러면 사람들은 느낀다.


“왜 저 사람들만 쉬지?”


하지만 이건 비교가 잘못된 것이다. 정상은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 쪽에 가까워야 한다. 즉, 문제는 공무원이 쉬는 게 아니라 민간이 못 쉬는 구조다. 그런데 왜 공무원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이 지점이 핵심이다. 사람들은 민간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공무원을 끌어내린다. 왜냐하면 공무원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공무원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

공무원을 국가로 본다. 국가는 쉬면 안 된다. 그래서 공무원이 쉬면 이상하게 보인다.


이 사회는 공무원에게 노동을 요구한다. 업무는 늘어나고, 책임은 커지고, 민원은 더 거칠어진다. 그런데 동시에 이렇게 말한다.


“너는 노동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니까. 그래서 이상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노동은 하지만 권리는 없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다. 이건 공무원의 태도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정상적인 시스템이라면 이건 이미 해결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쉰다. 서비스는 유지된다.

즉, 교대근무, 순환 창구, 점심시간 운영 시스템 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만들지 않는다. 대신 개인에게 맡긴다. 그래서 쉬면 욕먹고, 안 쉬면 당연해진다.


그래서 공무원은 노동자인가. 답은 명확하다. 공무원은 노동자다. 그리고 동시에 국가처럼 취급받는다.

문제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 사회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계속 나온다.


“왜 공무원만 쉬냐?”


이 질문은 틀린 게 아니다. 다만 이 질문은 하나를 드러낸다. 이 사회가 아직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구조라는 것. 공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이 사회 전체의 노동 감각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