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권리로 둔갑하는 순간

감사는 사라지고 계산만 남는 감각.

by NaeilRnC

충주맨이었던 그가 치킨 1,000마리 쏘고도 욕을 먹었다는 커뮤니티의 글을 봤다.

그가 정말 치킨을 샀는지, 왜 1,000마리를 주게 됐는지, 실제로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는 여기서 핵심이 아니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그 이후에 달린 반응이었다. 충주시 고등학생이 1,600명인데 1,000마리를 주면

나머지 600명은 먹지 말라는 것이냐는 댓글. 그 순간 씁쓸했다. 왜 호의가 이렇게 빨리 권리로 바뀌는 걸까.


사무엘 스토퍼(Samuel Stouffer, 1949)는 『The American Soldier』에서 이렇게 말한다.

“Feelings of deprivation are relative to the situation of others.”
이는 박탈감이 절대적 결핍이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생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준이 0에서 1,000으로 늘어난 숫자보다 1,600에서 1,000으로 바뀌는 순간부터 호의는 부족한 것이 된다. 그러니까 이 사건의 본질은 치킨의 마릿수가 아니라 비교다.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925)는 『The Gift』(증여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The gift creates an obligation.”
선물은 의무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정확하기 때문이다. 호의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주는 순간 기대를 만들고, 기대는 반복을 요구하고, 반복은 곧 기준이 된다.


원래는 “줘도 되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줘야 하는 것”처럼 바뀐다. 그래서 치킨 1,000마리는 선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곧바로 분배의 문제로 넘어간다. 왜 누군가는 못 받는가, 왜 전부에게 안 주느냐. 이 질문들이 따라붙는 순간 호의는 이미 호의가 아니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35)은 『Democracy in America』(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The more equal conditions become, the more people expect equality.”
평등이 확대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이것도 정확하다. 한 번 1,000마리가 주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 기준은 언제나 더 완전한 숫자다. 1,000마리가 생기면 1,600마리가 기준이 되고, 일부가 받으면 전부가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불만은 부족한 물량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기대가 최대치로 이동하는 구조에서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참 답답했다. 아무도 안 했던 일을 했는데, 돌아오는 말이 “고맙다”가 아니라 “왜 다 안 했냐”라면, 그건 호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호의를 이미 권리의 언어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선택을 처음부터 공공의 의무처럼 취급하는 순간, 감사는 사라지고 계산만 남는다. 그리고 계산이 시작되면, 1,000은 많은 숫자가 아니라 모자란 숫자가 된다.


이건 단순히 몇몇 사람의 태도 문제로 끝낼 일도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이미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잃어버린 사회에 가까워졌다. 무엇을 받으면 감사보다 형평을 먼저 따지고, 형평을 따지기 시작하면 곧 권리, 즉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의 감각이 올라온다. 그래서 어떤 선행도 오래 남지 못한다. 비교가 붙는 순간, 기준이 되고, 기준이 되는 순간, 부족으로 판정된다.


결국 문제는 치킨이 아니다. 문제는 기준을 바꾸는 우리의 감각이다. 0에서 1,000으로 보면 이건 분명 호의다. 그런데 1600에서 1000으로 보는 순간, 호의는 순식간에 불공정으로 바뀐다. 왜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생긴 1,000을 ‘생긴 것’으로 보지 않고, ‘빠진 600’으로만 보는가.


왜 누군가의 선택을 고맙다고 받기보다, 애초에 내 몫이었던 것처럼 계산하는가. 이쯤 되면 문제는 치킨이 아니라 태도다. 호의를 받았을 때 감사보다 계산이 먼저 나오고,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모든 선의를 권리처럼 읽어버리는 감각. 나는 그걸 '거지근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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