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78

만우절 같은 하루

by NaeilRnC

새벽 5시 30분에 깔끔하게 눈이 떠졌다. 잠을 잘 잔 것 같다.

4월의 첫날.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 기대가 되어 오랜만에 오늘의 운세를 찾아봤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게 되니 여유를 갖고 임하라.”


뭔가 쎄하다.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지만, 쎄한 촉은 거의 적중이다.

오늘은 조심해야겠다. 아니,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보다 더 열심히, 적당히 하기로 결심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전시용 HWP 파일을 3개 열어두고, 엑셀 파일도 열어두었다. 완벽해.

이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브런치를 즐겨야지.


그런데, 노곤이 식혜를 외치며 깨어나듯 뭔가 오늘 중으로 끝내지 않으면 엿될 것 같은 일이 생각난다.

(노곤이 궁금하시죠? 용사 노곤을 구글링 하시면 나옵니다.)


아, 오늘은 서두르면 안 되니 천천히 꼼꼼하게 일을 해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파바밧 결재를 받고 하나를 덜어버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농땡이 치지 않고 일을 했다. 점심시간 이후 옥외시설물 설치에 관한 추진계획 4건을 출력했다. 통합, 토목공사, 전기공사, 물품구매. 지난 1월 12일 출근해서 어제까지 내가 했던 작업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금쪽같은 아이들을 안고 결재를 다녀오겠다고 회사를 나서 본청으로 향했다.


중간쯤 왔을 때 비가 왔다.


‘아! 역시 내 촉은 쫌 대단한 것 같아.’


그냥 비를 맞는 정도가 오늘의 ‘마구니즘’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시작이었다. 나의 결재는 3명의 팀장, 과장, 국장 등 5명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첫 번째 팀장이 나의 문서를 빠꾸시켰다. 듣도 보도 못한 일 때문이었다.


“대리님, 이거는 왜 계획에 없어요?”
“네?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요?”
“아, 대리님! 그럼 다시 돌아가셔서 알아보고 다시 작성해 오세요.”


내 앞에서 자신의 사인을 두 줄로 찍찍 그어버리며 냉정하게 말하던 그녀. 순간 정적.


“대리님, 혹시 걸어오셨어요?”
“네, 비 사이를 뚫고 왔는데 이럴 수가.”
“하... 제가 태워드릴게요.”


복귀하자 사람들이 몰려왔다. 나의 첫(혼자) 결재가 궁금했나 보다. 하지만 내 표정을 보고 국장님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국장님, 혹시 앉을의자에 대해 아세요?”
“그게 뭔데?”
“앉을의자를 추가해서 오라네요.”


순간 정적. 뭔가 엿된 상황이 발생했다는 듯 팀장님의 표정이 굳었다.

결국 전임자가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본청의 오해가 섞여, 중간에서 나만 엿된 상황이었다.


(나머지는 생략합니다.)


다시 서류들을 출력해서 본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계약팀에서 어찌나 탈탈 털던지 울 뻔했다.

4월 1일이라서 그런가.

오늘 하루는 만우절 농담처럼 흘러갔는데, 정작 웃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운세는 맞았고, 촉도 맞았다.

다만 내가 몰랐던 건 만우절 같은 하루라는 게 웃긴 하루가 아니라 어이없는 하루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난 야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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