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은 왜 직원들만?
잔칫상이 클수록 거지가 더 많이 꼬이고, 밥그릇에 들어 있는 음식이 좋을수록 개싸움이 일어난다.
그래서 안치환은 밥그릇 앞에 우리 모두 x새끼들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회사가 얻은 성과는 직원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회사의 실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숫자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의 노동이 들어간다. 그러니 성과가 났다면 보상도 있어야 한다는 말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정말 지금의 성과가 직원들만의 몫일까?
언젠가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직원들이 아무리 바닥에서 기어도 윗선의 전화 한통보다 못한 내 능력 때문에 한없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무리 반도체를 잘 만들어도 깐부치킨 회동 이전에 무수히 있어왔을 영업을 총수가 하지 못 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는 절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똑똑한 삼성맨들이 모를리 없다. 모른다면 더 큰 문제다.
반도체를 두고 기업의 성과라고만 말하는 순간, 이미 절반은 놓치고 들어가는 셈이다. 반도체는 휴대폰 한 대 더 팔고, 가전 몇 대 더 많이 파는 산업이 아니다. 전력, 용수, 도로, 물류, 연구개발, 세제, 외교, 정책이 함께 받쳐줘야 돌아가는 국가기반산업이다. 특히 삼성전자 같은 기업의 반도체 사업은 단순히 한 회사의 영업활동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떠받치고 있는 산업 인프라 위에서 굴러간다.
바로 그래서 이 논쟁은 단순한 파업과 떼쓰기가 아니라 누가 이 성과를 만들었는가를 다시 묻는 문제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직원들의 노동이 없었다면 당연히 성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곧바로 “그러니 성과는 직원들의 것”으로 넘어가는 순간, 너무 많은 것이 지워진다.
반도체 산업이 지금의 위치까지 온 데에는 국가의 지원이 있었다. 인프라를 깔아주고, 규제를 조정하고, 산업정책으로 밀어주고, 사실상 국가 전략산업으로 취급해온 축적이 있었다. 여기에 주주의 역할도 있다. 실적이 흔들리고 주가가 떨어질 때도 주식을 들고 버티거나 사 모으며 자본을 묶어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성과가 나자마자 그 과실을 “우리가 만들었으니 우리가 더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버리면, 그 산업을 떠받쳐온 더 넓은 기반은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린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불편하다. 반도체처럼 국가기반산업에 가까운 영역에서는 성과를 말할 때 늘 “우리 산업”, “국가 경쟁력”, “대한민국의 미래” 같은 큰 말을 꺼낸다. 그런데 막상 보상을 말하는 순간에는 그 “우리”가 갑자기 삼성전자 직원 집단으로만 쪼그라든다. 성과를 만들 때는 국가와 산업 생태계 전체를 불러오고, 나눌 때는 갑자기 회사 안의 특정 집단만 ‘우리’가 되는 셈이다.
결국 이 문제는 돈의 액수보다도 정의의 범위를 둘러싼 문제다. 누가 이 성과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누가 그 성과를 나눌 자격이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이 너무 손쉽게 “직원들”로만 수렴되는 순간, 반도체를 국가기반산업이라고 말해온 논리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을 때는 공공성을 말하고, 성과가 나오면 사적 보상만 강조하는 방식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직원들이 아무 보상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반도체 현장의 노동 강도와 책임을 생각하면 합당한 보상은 필요하다. 하지만 합당한 보상과 성과의 전유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지금 불편한 건 바로 그 지점이다. 삼성전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 회사 안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기반산업의 성과를 직원 집단만의 전리품처럼 말하는 태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묻게 된다. 정말 성과급을 더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삼성전자 직원들인가. 아니면 국가 전략산업을 위해 비용을 감당해온 사회 전체인가. 혹은 실적이 흔들리는 동안에도 회사를 믿고 버틴 주주들인가. 반도체가 정말 국가기반산업이라면, 그 성과를 사유화하려는 주장도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반도체는 한 회사의 사무실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떠받치고, 사회가 버티고, 자본이 묶여 있고, 현장이 움직여야 비로소 성과가 나온다. 그런데도 성과가 나오는 순간 “우리가 만들었으니 우리가 더 가져야 한다”는 말만 남는다면, 그건 정당한 보상 요구라기보다 성과의 범위를 지나치게 사적으로 축소하는 주장처럼 보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우리”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성과를 만들 때는 “우리 산업”이라고 말한다. 국가도, 사회도, 주주도, 노동도 다 함께 불러온다. 그런데 막상 나누는 순간 그 “우리”는 사라진다. 남는 것은 “우리 회사”, 더 정확히는 “우리 임직원”뿐이다. 성과를 설명할 때의 “우리”와, 성과급을 요구할 때의 “우리”가 너무 다르다. 나는 그 축소가 못마땅하다.
결국 내가 불편한 이유는 단순하다. 반도체를 국가기반산업이라고 부를 때는 모두의 산업처럼 말해놓고, 성과를 나눌 때만 특정 집단의 몫처럼 말하는 태도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산업”은 사실 “우리 회사”, 더 정확히는 “우리 임직원”의 다른 이름으로 축소된다. 성과는 국가의 것이라 말해놓고, 왜 보상은 직원만의 것인가. 내가 계속 걸리는 건 바로 그 질문이다.
그리고 결국 안치환의 노래 제목처럼 밥그릇을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는 개떼들이 생각나게 하는 지점이다.
그렇게 파업을 하게 되면 하루에 들어가는 그 비용은 결국 떼를 쓰는 그들이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우리'의 주머니에서 나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