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만 자는 전설의 용사
세상은 멸망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멸망 같은 것이 진행 중이었다. 얼마나 멸망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왜냐하면 다들 너무 바빠서 확인하러 나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멸망 중이라고 해서 꼭 바쁜 건 아니다. 적어도 용사 ‘노곤’에게는 그랬다.
노곤은 자고 있었다. 그는 늘 잤다. 어제도 잤고, 오늘도 자고 있고, 내일도 잘 예정이다. 그게 세계 최강의 비밀이었다. 혹은 그냥 수면장애일 수도 있겠지만, 전문가가 없어 모르겠다.
멸망 중이지만, 잠시 평화로운 한 마을.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외쳤다.
“큰일입니다! 적이 다가오고 있어요!”
문제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정말로 안 보였다.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았고,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았다. 냄새라도 맡아보려 했지만 냄새도 없었다. 있다고 주장한 사람한테 물어보니, 그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적이 오는 게 확실합니까?”
“그냥… 느낌입니다.”
“근데 그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옆 사람이 불안해하길래 저도 불안해졌어요.”
집단 심리란 무서운 것이다. 그럼 됐다. 느낌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곤을 깨우려 하지 않았다.
그 마을에는 용사의 잠을 방해하면 세계가 망한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뭔가 불길한데, 용사님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깨울 수도 없고”
“그래요. 잘못 깨우면 세계가 진짜 망할 수도… 아뇨 그냥 귀찮아서죠?”
“…네.”
전설의 시작은 오래전 술 취한 마을 노인의 즉석 발언이었다. 그 노인은 이미 다른 마을로 이사 가버렸다.
따지고 보면 신뢰도는 매우 낮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었다. 믿는 게 조금 더 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조용히 서 있었다. 이런 데만 단합이 잘 됐다.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리 여럿이 눈을 크게 떠도, 망원경을 동원해도,
심지어 돼지 코걸이를 써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가오는 느낌’은 점점 짙어졌다.
마치 누군가 귀 옆에서 “다가오는 중~” 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실제로 속삭임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때였다.
쿵!
마을 전체가 술렁였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지?”
“모르겠어요.”
“적이… 넘어졌나?”
적이 죽었다. 보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정말 죽었다. 소리가 그렇게 났으니 죽은 게 맞았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냥… 너무 심하게 넘어져서 죽은 듯했다. 그럴 수 있다.
안 보이면 방향 감각을 잃기 쉽다.
“세, 세계가 구원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 순간 기분만은 진짜 구원받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축제를 준비했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 모르지만 다들 손뼉 쳤다. 기분 좋으니까 다 맞는 말처럼 들렸다. 그 순간, 노곤이 이불을 살짝 걷어찼다. 정말 살짝이었다. 발가락이 바닥을 긁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세계는 흔들렸다. 시간이 잠깐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갔다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시간에 방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정확한 건 아무도 몰랐다.
전문가도 없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적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구르고 허리를 삐끗하고 스스로 기절하고 그대로 사망했다.
노곤은 전혀 몰랐다. 그는 꿈에서 찜질방 사우나 온도를 조절 중이었다.
“더워요. 좀만 낮춰주세요…”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마을의 폭주적 신앙심 “위대한 용사님 덕분입니다!!”
마을 촌장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가 왜 우는지는 본인도 몰랐지만, 울다 보니 더 울고 싶어졌다.
자칭 마법사는 말했다.
“제 예언이 정확했군요. 적은… 스스로 죽는다!”
사실 그런 예언은 없었다. 자칭 마법사가 지금 생각난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순간부터 진실이 되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자칭 기사는 말했다.
“역시… 검이 필요 없다! 검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다니…”
사실 그는 검을 잃어버려서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다.
마을 꼬마는 외쳤다.
“용사 아저씨 최고!!”
사실 노곤이 아저씨인지 청년인지, 인간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때, 노곤이 코를 곯았다.
스으으으으으— 크으으으으으—
그 코골이는 마치 자연의 소리 같았고, 자연의 소리는 마침 바람을 타고 숲까지 닿았다.
그 바람은 숲 속에 숨어 있던 괴물을 날려 보냈다. 괴물은 벽에 부딪히고, 땅에 굴러서, 마음이 상하고,
그러다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괴물은 죽으면서 생각했다.
'뭐야… 나 왜 죽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마을 사람들은 외쳤다.
“용사님이 또! 또 구해주셨어!!”
바로 축제를 준비했다. 축제의 정확한 목적은 이미 아무도 몰랐다.
노곤은 계속 잤다. 노곤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꿈에서 노곤한 얼굴로 찜질방의 뜨거운 돌 위를 맨발로 걷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평화로웠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구원받았다.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이 글에 포함된 이미지는 AI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