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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Jun 19. 2023

꼬마 신동에게 당한 의문의 1패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계속 지는 팀은 없더라고요...  

한화이글스도 매일 지는 것 같지만  

아무도 모르게 승리하는 날도 있더라고요...  


제 인생도 언젠가는

승리의 축배를 드는 날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신촌의 무용센터 실장으로 사는 월요일.

처음 보는 꼬마 남자아이가  선생님으로 추측되는

여성 손을 살포시 잡고 등장했다.

무려 대구에서  오셨다는 이 사제 듀오는

쿠폰을 1개씩 결제하고 재즈 클래스로 유유히 향한다.

그리고 1시간 30분의 클래스를 마치고 나와서는

성에 안  찬다는 듯 연달아 재즈 클래스 2개를

더 결제하고는 째진 표정으로 다 시 Jazz-in 한다.


4시간 30분을 오직 Jazz에…?

세 번째 클래스를 마치고 나온 이 꼬마 아이에게

재즈 클래스 선생님께서 도움닫기 하듯 달려와

오늘 춤 영상 찍은 거 좀 보내달라며 오히려 구애하신다.


평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우아한 워킹을 고수하시는 선생님이 저런 찐 반응을…?


함께 재즈를 나누고 돌아가시는 회원님들도

감탄사를 하나씩 보태신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대구에서 재즈 유망주인가 봐요?”

찰나의 적막이 흘렀다.

그렇다. 적막은 뭔가의 어긋남을 뜻한다.  


“대구에서 재즈 신동이에요….”

꼬마의 선생님은 조곤조곤 말씀하셨지만

기분 탓인지 잘근잘근 한 느낌이 들었다.

신동을 유망주라 워딩 했으니 찰나의 적막이 흐를 만했다.


“보통 애가 아니에요….”  확인 사살까지.


방학이라 서울에 머물겠거니 했는데

기차를 타고 바로 내려가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다시 오시겠노라고.

“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대구에도 좋은 학원 많을 텐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에서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행동반경을

대구에서 서울까지 넓히는 그 열정과 헌신이란

그것을 향한 대체 어느 정도의 진심인 걸까…?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항상

집과의 거리가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었던

나는 오늘도 부끄러워졌다.

신동도 아닌 주제에 열정도 없었구나.

너란  녀석.


2012년생 꼬마 아이를 보며 온갖 회한에 젖는다.

이놈의 자존감은 요즘 날씨처럼 들쭉날쭉하다.


요즘, 엑설런스 세미나를 들으며

엑설런스 한 삶을 살기 위해

사고의 재배치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런 냉혹한 현 실 앞에서는

어김없이 유리멘탈 중년 꼬마가 된다.


세미나의 내용 한 가지를 전해보자면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과거는 현재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으며

미래  역시 현재를 담보하지 못한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며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려야 한다.

한 때 가졌거나 아직 가지지 못한 그 모든 것은

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일  뿐이고 환상 그 자체다.

그것들을 지우고 나면 새하얀 도화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그 도화지 위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매일을  1월 1일로.

매일 신생아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면서, 세미나 리더님은

게임을 한번 해보자고 하시고는

ZOOM 너머로 티슈 한 장을 준비하라는 지령을 내리셨다.

공교롭게도 실험맨으로  내가 뽑혔다.


나는 있어 보이게 스타벅스 누런색 티슈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엄지와 검지를 떼니 매우 쉽게

티슈가 노트북 위에 널브러졌다.


다음엔 다시 집어 든 티슈를 놓치려고  

애를 써보라고 했다.

잡는 것도 아니고 놓치는 것도 아니고 애매했다.

손가락에 경련이 올 뻔했다.

마지막으로 티슈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라 하셨다.


‘무슨 티슈 한 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까지 해야 한 단 말인가?


역시 쓸데없는 힘만 계속 주고 있느라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

리더님은 나에게 어떤 느낌이 들었냐고 물으셨다.


“티슈를 내려놓기는 쉬운데

내려놓으려고 하거나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훨씬 더 스트레스받아요.”


정확히 맞추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려놓는 일이 가장 쉬우니까

그렇게 하면 된다고 했다.


내려놓으려 애쓰지 말고….

놓치지 않으려 애쓰지 말고….


머리가 띵했다.

큰 깨달음을 얻고

현자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남은 나날 신생아로

새하얀 도화지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기쁜 마음으로 1일을 고대하며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기억이 또렷하다.


내 나이가 거울 속에서 또렷이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란 녀석…. 그냥 갖다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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