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 Dec 18. 2024

자동차 종합병원이 카페거리로 바뀐 사연

부산 전포동 골목길 이야기

지난달부터 매월 한 번씩 라디오 방송에서 부산의 골목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영도의 골목길을 소개했고, 이번 달에는 전포동을 소개할 예정인데요. 방송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지켜봤던 전포동의 특징과 매력을 다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전포동 골목이 외부적으로 크게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17년 뉴욕타임스에 전포동 카페거리가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세계에서 가 볼만한 곳 52'에 서울도 아니고 부산의 스트리트 컬처를 대표하는 전포동 골목이 소개가 된 것이죠.


2017년에 소개됐던 '전포 카페거리'  ⓒ뉴욕타임스


당시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글들을 보면 전포동의 변화상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전포동 카페거리에는 산업유산을 배경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모이는 중심지로 변했다는 것이죠.


The Jeonpo Cafe District, a once-gritty industrial area, has recently been transformed into a creative hub packed with boutiques like Object, selling handcrafted items by locals.


이런 변화에는 전포동 일대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가면 전포동 일대에는 육군의 차량재생창이 있었습니다. 재생창은 군수품의 수리와 폐품 재생을 주로 하는 공장이었는데요. 이 일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군수차량과 그 부품들이 거래될 수 있는 배경이 됐습니다. 그 후, 1955년에 대우버스의 전신인 신진공업사가 설립되게 됩니다. 신진공업사에서는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은 차량을 활용하여 추가적인 부품을 보완하여 재생차량을 조립하여 판매하는 등 그 사세를 키워나갔는데요. 이후 법인명이 대우버스로 바뀌고 전포동 일대에 큰 공장을 운영하며 이 일대에는 철물가게와 공구상들이 굉장히 번창했다고 합니다.


이러던 것이 2009년 대우버스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당시 대우버스는 부산에 전포동, 동래, 반여동에 공장 및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통합이전을 통한 효율화를 명목으로 부산의 전체 공장들이 울산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전포동의 각종 차량 공구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큰 앵커기업이 빠졌으니 당시로서는 상당한 충격이 있었던 거죠.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대우버스, 르노삼성자동차, 한진중공업 등이 부산의 대표적인 제조기업이었는데 부산 입장에서는 주요한 제조기업 하나가 타지로 이전하게 된 셈입니다.


여하튼, 대우버스 전포동 공장이 이전하면서 공구거리로 활성화됐던 전포동에는 많은 공구상들이 떠나고 빈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유효공간들이 생겨난 거죠. 하지만 또 위기는 기회라고 해야 될까요? 2010년대부터 이렇게 전포동 골목골목 빈 공간에 개성을 살린 개인카페들이 하나 둘 입점하게 되는데요. 입지조건 상 전포동은 부산의 중심상권인 서면에 인접하여 교통도 편리한 편이고 서면 1번가 등 중심 상권에 비해서는 상가 임대료가 저렴했기에 자기만의 개성을 살려 창업을 하려는 예비 카페창업주들에게 인기를 끌게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카페들이 생기면서 전포동 골목은 굉장히 이색적인 풍경을 갖추게 되는데요. 공구상 옆에 노란 불빛을 비춘 개인카페가 있고 또 공구상이 있고, 빈티지 콘셉트의 옷가게가 있고.. 뭐 이런 이질적인 매력을 갖춘 상권이 되어버린 것이죠(웃음)


이런 골목들이 점차 유명세를 타면서 더 많은 카페와 공방, 옷가게, 음식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제일 먼저 알려진 전포 카페거리 외에도 전포카페거리에서 지하철 전포역 쪽으로 큰길을 건너 형성된 전포사잇길, 그리고 부산진소방서 뒤편의 전포공구길(전리단길)까지 굉장히 넓은 영역에 특화 골목길 상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동차 종합병원이었던 동네가 이제는 서면을 넘어서는 부산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것이죠. 물론, 이 일대도 기본적으로는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수없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계속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리는 임대료 상승 이슈도 있고요.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과거 전포동 공구골목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콘텐츠가 있는 골목상권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각 일대마다 주요한 플레이어들이 있는데 전포 카페거리 쪽에는 빈티지 38이라는 카페로 유명한 문정호 대표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부산의 백종원 선생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일대에서는 유명한 분인데요. 원래는 서면 일대에서 신토불이 보쌈, 옹기 김치찜 등 다양한 외식업으로 성공을 거두신 분이었습니다. 수십 개의 매장을 운영하셨는데 2010년대 들어 전포동의 가능성을 보고, 전포역 옆에 '랜드마크 9'이라는 카페를 시작으로 전포 카페거리에 여러  카페와 음식점들을 운영해 왔습니다.


단순히 가게 운영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수없이 리뉴얼하고 전포카페거리 상인회장을 지내면서 급격한 임대료 상승이 이뤄지지 않고 카페거리에 입점한 임대인 분들이 장기적으로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건물주분들과 상생협의체를 꾸려가는 등 많은 일들을 해오셨죠. 보통 골목이나 거리가 잘 되면, 현대화라는 이슈로 기존의 정체성을 무시한 채 새로운 변화를 주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있는데 전포동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이질적인 매력에서 이 거리를 찾는 것이었기에 그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고 의견도 내셨던 거 같습니다 (*코로나 때는 위기를 타개하고자 '전포식육'이라는 브랜드로 홍콩에도 진출하셔서 K-푸드를 알리고 계시고도 합니다)


이번 방송에서는 전포카페거리의 '빈티지 38', 전포사잇길의 '유월커피', 전포공구길의 '버거샵'을 소개해드릴 예정인데요. 매장 자체가 꾸준히 유지되고 잘 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가게들이지만 이렇게 잘 되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정체성을 꾸준히 세부화하고 일관되게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점들을 깊게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2017년 무렵에 다 오픈을 해서 코로나 시기에 지점 확장 등을 거친 가게들인데 취향의 홍수 시대에 사는 요즘 카페든 음식점이든 방문객을 부르는 공간은 어떠한 매력을 가져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주는 공간들인 거 같기도 합니다.


전포사잇길의 '유월커피'는 부산 전포동에서 시작해서 현재 서울 회현점, 이태원점, 역삼점까지 총 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유월커피(your coffee)는 각 카페의 내외부 인테리어만 보더라도 포근한 느낌에 부티끄 호텔을 연상하는 공간 배치를 통해 쉼이 필요한 방문객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초창기에 가게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줬던 시그니처 메뉴가 '더티초콜릿'이라는 초코음료인데요. 유월커피 김구민 대표가 2018년 마스터오브카페란 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시그니처음료 부문에서 입상한 메뉴로 초콜릿이 넘쳐흐르는 특이한 비주얼에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끈 메뉴이기도 합니다. 전포동 매장이 잘 되면서 서울 소공동, 남산, 성수동팝업을 거쳐 현재는 다른 지역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러한 잘 되는 공간을 운영하는 대표님들이 바라보는 상권에 대한 생각과 도전, 고민의식은 자기만의 브랜드를 준비하고 실행하려는 분들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거 같습니다.


주저리 주러리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는데요. 아무튼, 이번 달 라디오 방송도 재미있게 마쳐보겠습니다.


(방송 끝나면 해당 글에 유튜브 링크 추가해서 공유드리겠습니다(웃음))



https://www.youtube.com/live/jR8hm-zjs0M?si=56QYshg1CKILkdAb




참고자료:


대우버스 부산공장 연말까지 울산으로 이전 (연합뉴스, 2010.04.13)

https://www.yna.co.kr/view/AKR20100413157300057


[피플&피플] 전포카페거리 문정호 상인회장 (국제신문, 2017.12.10)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key=20171211.22026004106


홍콩서 日매출 2000만원 ‘전포식육’...K푸드 해외 진출 공식 바꿨다 (매일경제, 2023.03.11)

https://www.mk.co.kr/news/world/10677157


즐겁게 커피만 즐기세요, 기부는 유월커피가 할게요 (유월커피 / 김구민 대표)

https://vake.io/forums/QOVCDAAWN/threads/T2XT19998


부산 전포동 로컬브랜드 열전 (NABIS, 2021.08.06)

https://blog.naver.com/redis12/22245931708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