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모 ‘삐뽀’의 아주 특별한 여행
초록빛 나무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서리풀 공원에는 꼬리가 탐스러운 청솔모 ‘삐뽀’가 살고 있었어요. 삐뽀의 집 앞마당에는 울타리가 쳐진 예쁜 토끼장이 있었죠.
삐뽀는 매일 나무 위에서 토끼들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어요.
"와, 토끼들은 정말 좋겠다. 관리인 아저씨가 맛있는 채소도 매일 가져다주고, 비바람을 피할 튼튼한 집도 있잖아? 나는 도토리를 찾으러 온종일 뛰어다녀야 하는데 말이야."
삐뽀는 결심했어요. '나도 사람들 가까이로 가면 토끼처럼 대접받으며 살 수 있을지 몰라!'
회색 숲, 아파트 단지로의 모험
삐뽀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산을 내려왔어요. 가로수 가지를 징검다리 삼아 폴짝폴짝 뛰어 도착한 곳은 커다란 아파트 단지였어요. 그곳은 삐뽀의 생각보다 훨씬 화려했어요. 나무들도 줄을 맞춰 예쁘게 심겨 있었고, 맛있는 냄새도 가득했죠.
"그래, 여기가 바로 내가 찾던 낙원이야!"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삐뽀 앞에는 생각지도 못한 경쟁자들이 나타났어요.
무서운 적들과의 만남
가장 먼저 만난 건 길고양이 '얼룩이'였어요. 토끼처럼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줄 알았던 고양이는 삐뽀를 보자마자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며 "그르렁!" 소리를 냈어요.
"여긴 내 구역이야! 여기서 나는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고!"
뿐만 아니었어요. 하늘의 무법자 비둘기들과 까치들도 삐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캣맘이 정성껏 차려준 고양이 사료 한 알을 두고 비둘기들은 푸드덕거리며 삐뽀를 쪼려 했고, 까치들은 시끄럽게 울어대며 삐뽀를 위협했지요.
아파트 단지는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사실은 한 끼 식사를 위해 매일매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전쟁터와 같았어요.
"가장 소중한 곳은 바로 여기였어"
무서운 고양이를 피해 나무 꼭대기에 숨어있던 삐뽀는 문득 서리풀 공원의 토끼들을 떠올렸어요.
'토끼들은 배불리 먹지만 울타리 밖을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지. 하지만 나는 보고 싶은 세상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자유가 있잖아?'
삐뽀는 깨달았어요.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남의 삶을 흉내 내는 것보다, 내가 가진 자유로운 두 다리와 울창한 서리풀 공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삐뽀는 다시 가로수를 타고 힘차게 달렸어요. 공원에 도착해 익숙한 흙냄새와 나무 향기를 맡으니 가슴이 벅차올랐죠. 이제 삐뽀는 더 이상 토끼를 부러워하지 않아요. 대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도토리를 찾으며 친구들에게 말했답니다.
"얘들아! 내가 어디에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지를 아는 마음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