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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톰 Sep 28. 2015

카뮈 1

이방인

카뮈 Albert Camus의 이방인은 어렵다.

첫 시도에는 실패하는 책.
프랑스에서 해마다 빠지지않는 베스터 셀러  
부조리와 실존주의
가벼운 독서로는 바닥에 닿을 것 같지 않은 심연의 선입견.
몰이해 그리고 포기.
누구나 한번은 그러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군 시절 , 오갈곳없이 외박을 나와 강원도 철원 동송읍의 한 여관에서 동생이 보내준 몇권의 책중 이방인을 처음 읽었을때 취향이거나 관심이 가는 책은 전혀 아니었다.
읽을거리가 없던 환경이었고 필독서로 추천되는 책이었음으로 침침한 형광등 불빛아래 새우깡과 소주 한병을 앞에 둔 뫼르소 와의 첫만남은 실망과 지루함으로 작별을 고했다.

궁상맞고 쓸쓸한 분위기를 빼곤 어떠한 동류항도 가질 수 없었다.
일단 이방인은 소설로서의 기본 요건인 재미가 적었으며 후반부는 철학서처럼 딱딱하고 모호하여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작가의 의중을 가늠하기가 불가능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하고 들춘 평론과 해설은  기괴한 문장과 난해하다 못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였다.

달갑지 않은 여름은 6월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햇빛이 쨍쨍한 캠퍼스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이방인의 태양이 떠올랐다.
도서관의 서고에서 10년도 넘어 다시 만나는  이방인은 여전히 생경하였다.
대신 페스트와 시지프스의 신화를 골랐고 이어 두편의 희곡 오해와 칼리쿨라 등을 연이어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중첩되는 사상의 실루엣으로 인하여 카뮈에  흐릿하게 접근할 수있었다.
부조리와 앙가지망.
카뮈에 집착한 이유는 명작에 대한 갈증. 그리고 카뮈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자괴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이방인에 손이 갔고 정통 번역이란 카뮈와 동갑내기, '김 화영'의 이방인을 읽었으며 문장이 매끄럽게 않을 땐 '이 정서' 역의 이방인 그리고 '김 병일'의 이방인을 비교해가면서 읽었다.

'엄마가 죽었다' 로 시작되는 이방인은 간결하고  현란한 수사가 전혀없는 밋밋하고 건조한 문장들로 번역되어 있었다.

소설은 2부로 구성된 150 페이지도 채 안되는 분량인데 1부는 주인공인 뫼르소의 성격과 주변 인물들과의 이야기등 평이한 내용이다.
단지 주인공'뫼르소'의 성격만 알아가면 될 듯.

프랑스령 알제리의  항구 도시 알제에서
가난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는 뫼르소는 부양 능력이 없어 양로원에 맡긴 엄마의 죽음을 마치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일도 없었든듯이 마리와 (직장의 전동료.얼마 후엔 약혼자가 된다)수영, 영화 관람,성관계등 자신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찌 보면 쿨한, 현 사회의 규범으로는 비난받아야 할 뫼르쇠의 묘사를 시작으로 단조롭고 평범한 그와 주변 사람들과 마리,친구 레몽의 이야기가 시간에  따라 덤덤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뫼르소가 레몽의 불미스런 여자 관계에 우연히 개입하게되고, 여자측 사람들과 다툼이 벌어져 그 중 아랍인 한 명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다.

이로 인하여 뫼르소는 체포되고 재판정에 서 11개월에 걸친 심리를 받으면서  이야기는  긴장감을 띠게 되고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선다.

발단이 어디서인지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라는 살인동기가 이방인을 흥미롭게도 하고 이해하기 어렵게도 하는데,실제 살해 동기는 뫼르소가 권총을 발사하기 직전의 상황에 명확히 서술되어 있다.
분명히 살해 동기는 단순히 태양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아랍 사람이 몸을 일으키지는않고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해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중략)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앞으로 뻗어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뜨거운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중략)
나는 온몸이 긴장하여 손으로 피스톨을  힘있게 그러 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를 만졌다 ( 김 화영 역)"
 

"그러 자 이번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칼을 뽑아서 안에있는 내게 겨누었다. 빛이 강철위에서 번쩍 반사되며길쭉한칼날이 되어 내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중략)
이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마에서 울려대는 심벌즈 소리, 정면의 단검에서 여전히 희미 하게 번쩍이는 빛의 칼날 뿐이었다.  그 타는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파고들어 아픈 두 눈을 봤다 후벼 팠다.(중략) .... 나는 온몸이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힘있게 그러 쥐었다. 방아쇠 가 당겨졌다( 이 정서역)"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김 화영)"

"칼을 뽑아서 태양 안에 있는  내게 겨누었다.(이 정서)"

"단검을 꺼내어 햇빛 속에서 나를 겨누었다.(김병일 )"

각자 해석이 다르고 뉘앙스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번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뫼르소가 총을 쏜 이유는 빛에 반사되어 마치 '눈을 찌르는 듯한' 칼날의 위협 때문이었음은 분명하다.
게다가 칼을 든 사람은  앞서 친구(레몽)을 칼로 찔렀던 그 남자였음으로 뭐르소에겐 더 위협적이 었을 것이다.
분명 돌발적인 사건이었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정당방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태양이 작렬하지 않았다면  반사된 칼에 의한 위협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으로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정을 생략하고 이야기할때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일 수 밖에 없다)

"내 말은 두서가 없었는데 내가 듣기에도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알면서도 나는 불쑥 내뱉었다.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법정에 웃음이 일었다"(뫼 르소)

재판정에서 자신의 살인 이유를 '태양
때문에 눈이 부셔서'라는 우스꽝 스러운 이유로 법정에 웃음이 일렁이게 했으며 엄마를 양로원에 맡기고 어머니의 장례식날의 무덤덤했던 태도가
양로원 원장과 수위의 증언에 의해 드러나고
(울지 않았으며 관속의 엄마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  장례식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으며 잠을 잤다는 것,엄마의 나이를 몰랐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떠났다는 점 )
장례식 다음날 마리와 보낸 하루의  행적으로 장내가 술렁이자 뫼르소는 내가 죄인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살인행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들이 범죄행위의 동기가 되고 뫼르소가 이를 시인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득의만만 해진 검사는 이틀간 뫼르소 행위의 도덕성으로서 미루어 범죄를 사전 모의해 실행에 옮졌다고 결론짓고 그의 부도덕함을 과장하여 뫼르소를 사형시키기위해 배심원과 판사를 설득한다.
어이없게 사건의 촛점이 뭐르소의 살인행위가 아니라 그의 도덕성으로 옮겨간다.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그 다음 날 참으로 수치스러운 방탕 행위에 몸을 맡겼던 바로 그 사내가 하찮은 이유로, 그리고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정 사정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이 범죄자의 심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묻었음을 고발합니다.(검사)

1942년이방인의 발표되고16년후,까뮈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있다' 라는역설적 표현을 한다.

변호사가 도대체 이 피고가 기소된 것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서 입니까,사람을죽여서 입니까?라고 항변하지만,상황을 호전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정작 뫼르소 자신은 변호사와 검사의
열띤 공방중에 자신은 제외되어 있는 것을 느끼며 재판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검사가 나의 죄를 규탄할때 그리고 변호인이 나를 변호 할 때 그들은 나는 제외하고 그 사건을 다룬 것처럼 보였다.  
모든 일이 나의 개입없이 진행되었다
누구도 내게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내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검사가 그에게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사실 뫼로소는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해 크게 뉘우치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하여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죽음 (사형) 앞에서정직할 수있을까. 이 경우 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거짓말과 과장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의 이런 언행은 계속된다.

변호인의 요구대로 엄마의 죽음을 과장되게 슬프하는 일.
사제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며 통곡하는 일.
피고로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척 해야하는 일등
하지만 뫼르소는 진심이 아닌 어떠한 유희(술책) 에도 동조하지않는다.

검사는 메르소는 영혼이 없고 인간의 윤리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갖춘것이 없으며 도덕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으로
내일 재판 예정인 부친 살해범과 동격의 죄질로서 사형을 구형한다(이자의 머리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장소의 단두대에서 처형할 것을 선고한다.  

"재판장이 내게 더 할말이 있는지 있는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후 말했다. 없습니다"(뫼르소)

자신의 진심과 다른 어떠한 부분도 인정하지 않고 그는 아둔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뫼르소의 성격을 정리하면
현재의 욕망에만 충실할뿐 복잡한 이해 타산에 얽메이지 않는 단순하고 순진하며 솔직한 인간이다.
그러나 일면 부도덕하며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 마리는 내가 자기를 알고 싶다고 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뫼르소의 성격을 들여다볼 수있는 문장이다.
재판내내 뫼르소의 언행은 이런 식이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가?란 재판정에서의 질문도 뫼르소에게는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현재,그리고 구체적인 것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뫼르소의 공감하기 힘든 언행과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뫼르소의 복잡다단한 생각들은 오도되어 과장된 해석이 난무하게 한다.
사르트르의 이방인 해설조차도 본질을 벗어나 난해함만 증폭시켰다고 생각한다..
(특히 평론가들의 현란하지만 알멩이는 없고 추상적이고 모호한 해설이 우리나라에서 이방인을 더욱 어려운 책으로 만든 것은 유독 이방인의 경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카뮈의 생존시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자신의 작품이 논쟁에 휘말리면서 작품과 사상을 둘러싼 각종 오해와 왜곡,비난이 일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방인이 발표된지 16년 만인 1958년 ,카뮈는 영문판 이방인의 서문을 통하여 자신의 의도와 인물의 성격등 작품 세계를 구체적으로 밝히며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카뮈가 '영문판 서문'과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기지 않았다면 이방인을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하는데 더 많은 혼란을 야기시켰을 것이다.

영문판 이방인 서문은 뫼르소를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는 장문으로 짧게 요약했다. (원문:첨부1참조)

영문판 이방인 서문
나는 오래전에 <이방인>을 역설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뫼르소가 어떤 관습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기존 관습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이방인이되어 변두리에 유리된채  외롭게 살아 가야한다.
메르소가 왜 이방인이 되있는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이란 없는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보다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것, 감정적으로는 자신이 느낀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짓말 정도는 좀 쉽고 편하게 살기 위하여 우리들 누구나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보기와는 달리 삶을 쉽게 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말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재판에서 실제로 죄를 뉘우치지 않았을지라도 감형을 받기 위해선 뉘우친척하는 것이 세상의 관례다. 그런대 그는 사실 뉘우치지 않았으므로 뉘우쳤다고 이야기 하는것은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고 대답한다.  이런 태도로 인하여 그는 유죄를 선고받을수 밖에 없었다.
그는 가난하고 가식이 없는 사람이며  
진실에 대한 열정이 있고, 진실이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웅처럼 요란하게 행세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 속에서 찾았다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뫼르소를 통해서,우리 시대에 맞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 보려고 한다.
                                                                            1955년 1월 8일
       알베르 카뮈

사실만을 이야기 하는 사람.
사실을 포장하면서까지 쉽게 살려고하지 않는 사람.
가난하고 가식이 없는 사람
영웅처럼 요란하게 행세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

숭고하다.

어름풋이 공감이 되면 이제 뫼르소를 보는 시각을 정리하여야 카뮈의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카뮈를 언급 할 때 반드시 사용되는 두가지 용어가 있다.
바로 부조리와 실존주의이다.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소외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실존을 강력하게 담아냈다'
'부조리에 대한 까뮈의 철학적 사고가 녹아있는 작품'
카뮈에 붙어다니는 꼬리표이다.
실존주의에 관한 설명은 장황하여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겠다만 이 글에서 실존주의의 흔적은 크게 중요성을 띠지 않는다고 본다.  

부조리는 카뮈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이방인에 앞서 '페스트'와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 문학을 대면하였기에 이방인에 투영된 부조리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부조리의 사전적 의미는  <철학> 인생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가망이 없음을 이르는 말.
인간과 세계, 인생의 의의와 현대 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를 나타내는 실존주의적 용어로, 특히 프랑스의 작가 카뮈의 부조리 철학으로 널리 알려졌다.파생어 : 부조

까뮈의 부조리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카뮈의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 등장하는 끊임없이 굴려 내리는 돌을 끊임이 밀어올리는 시지프를 연상하는 것이다.  
카뮈는 사회의 부조리를 발견하는 것은 자신이 시지프의 인생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첫째 자살 둘째 희망 그리고 노력하는 것 자체에 삶을 두고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살이란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희망 역시 종교의 교리에 의한 허상일수 있으며 삶에 대한 진정한 자각이 아니며거짓된 위안이 될 수 있으므로 자신의 부조리한 삶과 계속 마주치며 뜨거운 열정 속에서 삶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하였다.
그런대 카뮈가영문판서문을 통하여 뫼르소에 대하여 인물설정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조리의 실체를 사회의기존 관습이나 제도등으로 어슴프레하게 짐작하거나. 모다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뫼르소라는 인간은 지극히도 현대화에 찌든 인간입니다.따뜻한 면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눈물한번 흘리지 않는 인간입니다'

이런 혼란속에 까뮈가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부조리의 주체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지나치리 만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카뮈는 뫼르소가 공격받는 윤리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이야기한다.
영문판 서문과 연계하면 오히려 가난하고 가식이 없는 사람이며 솔직하고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감정에 충실한 약자.
윤리가 이 소설의 초점이 아니며 더불어 공격의 대상은 ‘재판’이라고 말한다.
정작 뫼르소를 배제한 채 그의 죄를 논하는 판사와 변호사.
검사는 자신의 추측과 판단으로 뫼르소의 죄를 확정하고 변호사는 뫼르소가 말한 진실은 무시한 채,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과장된 술책으로그의 죄를 변호한다.
판사는 두 거짓 사이에서 어떤 거짓이 더 믿음직한지를, 더 설득력 있는지를 판단한다.
뫼르소에게 재판은 부조리였으며
그 부조리앞에서  진실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다.
카뮈가 형상화하려고 했던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
인간의 모든 원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 그모습 그대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구경꾼들이 봐서 증오의 함성으로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것 뿐이다(The End).

나찌즘,코뮤니즘,부르조아등 우리가 저항해야할
모든 암적 존재,부조리의 생생한 현장을 되도록 많은 사람이 와서 지켜보라는 카뮈의 외침일 것이다.

"삶에 대한절망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다 /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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