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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톰 Nov 23. 2017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꽃처럼 살다간..> 이란 수식어를 가진 여자가 있다.

그의 유고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1966년부터1980년대 중반까지 청춘을 뒤흔든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였다.


<6.70년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모르는 청춘이 있었을까?...소녀라면 전혜린을 거쳐 여성이 돼 갔고, 소년이라면 몸살 앓는 청춘의 신열을 전혜린의 글을 통해 풀어냈다/한경 매거진(2014.8월)>


아무튼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6,70 년대의 전혜린은 한 시대의 우상이었다.

 <전혜린은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거의 전설적인 존재였으며,그의 날카로운 에스프리에 매료 되었고  그녀를 둘러 싼 신비와 우수의 아우라에 도취되었다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전혜린>


당시 소설가 이봉구는 이국적 풍모에 검은 스카프를 두르고 학림 다방에 나타나 문학, 철학,예술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늘 관심의 촛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무심코 나오는 말 한마디에도 날카로운 센스가 빛났고 그의 말은 하나의 음악이요 한편의 시였다/추도문/이봉구>


또 명동 은성에서 문인들과 술을 마시며 시와 소설을 이야기 했고, 어떤 술이던지  단숨에 들이키는 주법 그리고 간혹 '밤 안개' 와 '검은 상처의 부르스'를 부르던 전혜린을 그리워한다.

<명동에 밤이 와도 인환은  없고 혜린 또한 없다.가슴이 메이고 그리움에 눈물이 흐른다>


1965년 1월10일 일요일,

32살의 나이에 외동 딸 정화(7세)를 홀로 남긴체

40알의 세코날을 먹고 자살한 여자,전혜린.


'죽음'으로써 전혜린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서도 없는 갑작스런 자살은 그의 삶을  신비롭게  했

고,숱한 환상을 만들어 내었다/불꽃처럼...>


여성지 여상女像 (폐간) 은 전혜린 특집을 대대적으로 실었으며,이듬해 여성지 등에 기고한 그의 수필들을  모아 출간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는   공전의 인기를 모았다.

이어 58년부터 64년까지의  일기와 편지를  편집한

<*미래 완료의 시간속에,1968>가 출간되었다.

(1976년에 내용의 일부를 바꾸며'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로 개명)


또한 그는 <생의 한가운데><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포함 총 10종의 독어권 번역 문학을 남겼다.


<전설이나 신화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혜린 그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

자기의 생을 완전하게 산 여자였다/이어령>

 

무엇이  전혜린 신드롬을 만들어냈을까?

당시 그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요소는 충분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대학은 커녕 결혼 후 생활고와 자녀 양육,남편 뒷바라지에 허덕일때 , 그녀는1955년 22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요구로 시작했던 법학을 포기하고,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간다.


드러내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으며, 큰소리로 떠들고 외모에 구애받지 않는 등....

뛰어난  입학 성적과 돌출된 그의 행동은 전시 부산의 서울 법대 시절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독일 유학생

뮌헨대학 재학중 유일한 동양인 여학생.


 <언제나 내입에는 '출발하기 위하여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싯구가 떠나지 않았다/독일로 가는 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의 절반 이상은 4년간 머물었던 뮌헨 북부,슈바빙의 예찬과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독일의 몽마르트르

어셔가를 연상시키는 잿빛의 4층 건물(하숙집)

회색의 포도鋪道와 레몬빛 가스등

제오로오제,노아 노아(단골 음식점)


<이곳에서는 아직도 가난이 수치대신에 어떤 로맨틱한 것을 품고 있고 흩어진 머리는 정신적 변태가 아니라 자유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되며.../뮌헨의 몽마르트르>


<온갓 물질의 결핍...수면 부족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순수한 정신,정열 이러한 것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뮌헨 대학생의 세계이다/나에게 옮겨준 반항적 낙인>


그녀의 이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곳

온갖 공상과 정열을 품고 찾아간 미지의 나라,

페허의 서울을 떠난  22살의  이방인이 비라본 고도   뮌헨의 정서가 어찌 이 정도 뿐이겠는가.

그는 19세기 독일 문학을 공부했고,니체와 루 살로메를 좋아했다.

생활비의 절반을 책을 살 만큼 독서광이었으며 뮌헨의 모든 헌 책방들을 섭렵했다.

그러나 뮌헨에서의 생활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경제적인 문제,고된 번역,향수...


<아는 얼굴이나 목소리가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까지 우울하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절망적인 고국까지의 거리감에 나는 앓고 있었다

/회색 포도와 레몬 빛 가로등>


<이 한주일 동안은 일생 처음으로 완전히 굶어보았다. 그래도 죽지는 않더라. 물은 마시니까

/동생 채린에게 보낸편지 /58.1.17>


그러나 정신적 자유를 풍족하게 누린 뮌헨은 전혜린의 정신적 고향이 되었고 귀국후에도 슈바빙을 평생 그리워했다.

 

<돈이 떨어지다. 배는 다소 고프지만 나는 즐겁다. 오늘은 가을 하늘이 멋이 있었고, 나의 머리는 니체와 루 생각으로 가득 찼으니까.../58. 11.5>


<짙은 잿빛 베일을 뚫고 엷게 미치던 레몬색 불빛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내가 구리파를 그리워 한다면 안개와 가스등 때문일 것이다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로등>


<또 한번 갈 수 있다면  내가 거닐던 레오폴드로 달려가서 와삭와삭 소리를 내는 낙엽을 밟고...

/레오폴드가의 낙엽소리>


여학교 시절부터 독신을 고집 해온 여자.

그러나 그는 독일에 온 지 6개월 째인 23살 봄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학생 김철수와 결혼을 하고 26살에 독일에서 딸 정화를 낳는다.

여느 엄마들처럼 그는 정화를 지극히 사랑했다.

<정화는 내생의 나비고 꽃이고 천사다/62.9.4>


공부를 끝내지 못한 남편을 남겨두고 '59년 5월 그는 2개월 된 정화와 함께 귀국한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그의 삶은 외견 화려해 보였지만, 그가 <상처에 뒤덮힌 20대 후반> 이라고 표현한 우울한 시절이 시작된다.


전혜린은 귀국 후 모교 등에서 독일어 강의를 했으며 틈틈이 에세이를 쓰고 <생의 한가운데> 등 독문학의 번역을 계속했다.

당시엔 에세이나 번역일 만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음으로 31살때 성대 조교수가 되기 전까지 전혜린은 시간 강사로서 이 대학 저 대학을 옮겨 다녀야 하는 고달프고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시간 강사의 고달픔이 한 몫 하였겠지만  전혜린은 그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했다.

<학생을가르치는 일은 싫다...

가르치는 사실이 나에게 우선 흥미가 없다. 어려서부터 선생과 교사의 직업을 나는 경멸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61.1.7>


<구토가 나는 생...모든것이 그리고 내 직업이 협오스럽다>


그 시절 전혜린은  명륜동 학림다방,명동 은성에서 사람들과 어울렸다.

검은 옷에 검은 스카프를 즐겨 둘렀으며,

일에 지친 피곤과 권태로 쉼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큰목소리에 쉴새없이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시무룩하거나 지친 표정은 찾아내기 어려웠다.

 

전혜린의 일기를 편집한<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에는 니힐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고 죽음,자살,허무,권태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죽음'이었다.

<모든 것이 내게는 헛되게 생각된다. 죽음만이 내게 큰 의미를 가진다>


<자살에의 욕망을 조금 감퇴 시킬만한,

생에 약간의 집착을 순간으로나마 느낄만한 날은 나에게는 길일 인 것이다 >


<제일 쉽고 행복한 상태는 온갖 의욕이 없는 것. 즉 죽음의 상태인 것 같다>


<신이여, 내가더 살아내기를바라게 구원하소서.제발, 나에게 생에의 의지와 욕망을 베풀어 주옵소서>


외면과 내면의 세계는 다르다.

만일 그의 영혼의 기록,일기가 공개되지 않았다면,그는 활달하고 거침없는,불같은 열정을 가진 여자로 기억되었을 것이며,그의 죽음은 사고사로 처리 되었을 것이다.

실제 이봉구등이 표현한 전혜린과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속의 전 혜린은 너무 달랐다.

친구 이덕희는 문인들을 포함,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전혜린을 잘못 알고 있는데 놀랐다고 한다.


<갈수록 삶은 힘든 것이다...이를 악물고 마스크를 쓰고 고독을 내 보이지 않는 것. 그 것 뿐이다/61.11.14>


* 이덕희는 전혜린의 대학3년 후배이자 친구로서 그녀와 같이 지낸 5년간의 이야기와  편지등을 <월간 여성 동아/'82.4~8월>에 연재한 프리랜서이다.


전혜린의 비극적 요소는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내 속에 있는 악마, 스스로의 지병>이라고 이야기한 병적인 페시미즘이었다.  

니힐은 언제나 그녀속에 있었다.

만족스런 현실 속에서는 움추리고 있다 불만족과 갈등 속에서는 집요하게 정신을 갉아먹는...

그럴 때 그는 문을 걸고 들어앉아 종일 술을 마신다고 덕희에게 고백했다.

<귀여운 딸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나를 괴롭히는 니힐이 늘 악마처럼 따라 다니는지/끝나지 않은 겨울>


<나의 지병인 페시미즘(Pessimisus)을 고쳐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 /마지막 편지>


스른살에 이르러 전혜린은 <미치도록 꿈꾸던 자신의 염원대신에..가장 평범한 사람이 되어 가장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목마른 계절>고 자조한다.


미치도록 그가 원했던 것 중의 하나, 그것은 소녀적부터의  간절한 바램이었던 문학이었다.

그녀가 진정 바라는 일은 자신의 문학이지 타인의 창작물을 옮겨주는 번역이 아니었으며

유학 시절의 이야기를 팔아먹는 그의 수필도 부끄러워 했다.


<일생에 한 번,한 개라도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그것을 위해서 살아나간다. 모래를 씹는 것 같은....

/ 58.10.15>


<긴 소설(또는 단편 소설)을 쓰고 싶다.

올해 안에 꼭 한 개는 써보겠다.

희곡이라도...또는 방송극...>


< 소설의 구상은 '서로 증오하는 각 인간만이 등장하는,일견 정신 병원같은 일가의 이야기'...

/ 이덕희 에게 보낸 편지/62.3.27>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글은 첫 구절을 써내려가는 것도 힘들어했다.

또한 <생의 한가운데/린저><어떤 미소/사강>등 명작만을 읽고 번역해온 그에게,어느 정도 그에 미치는 작품을 쓰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펜을 무겁게 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내면의 순수한 명령은 '생의 한가운데' 같은 책을 쓸 것을 명한다/61.1.7>


하지만 그토록 소망했던 ‘단 한 편의’ 소설은 결국 쓰지 못한다.

<숫제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머리 속에서의 구상으로 만 그쳤을 뿐,감히 말하지만 소설은 그의 쟝르가 아니다/이 덕희>


<나를 가득 채우고, 취하고, 끓게하는 완전한 과제가 없는데서 나의 니힐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61.1.17>

전혜린의 생각대로 가르치는 일의 권태와 혼미한 문학은 그의 니힐을 부채질했다.

날이 갈수록 초조와 권태는 심하여져  세코날을 복용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다.

 

전혜린이 <분홍빛 솜사탕 맛><진주빛 광채>라고 표현하며 그리워한 그의 유년은 조선 총독부 고관인 아버지의 기대 속에서 더 없이 유복했고, 그는 4살때 일어를 깨칠만큼 명석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 이외의  딴일을 하는 것을 허락 안 하셨다 .아버지가 한없이 아낌없이 사다주는 책을 읽는 것이 내 생활의 전부였다/홀로 걸어온 길>


이런 선택된 삶을 살아온 전혜린은 소녀 시절부터 자신은 절대 평범해선 안 된다는 선민의식을 뇌리에 각인하며 자라났다

<어렸을 때 내 소원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 이었다..무명으로 남을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62. 9.17>


<죽어도 평범한 인간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지금껏 마녀의 저주같이 따라 다니고 있다/ 긴 방황>


자신은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 적어도 남과 달라야 한다는 비범함의 추구는 전혜인의 열정을 부추기는 가장 중요한 요소 였다.

동시에 '절대'와 '완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그녀를 옥죄는 굴레가 되어 글쓰기를 포함, 정상적인 생활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학생을 가로치는 일이 싫은 세번째 이유, 나보다 더 잘 가르치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불안과 콤플렉스 /61.1.7>


이런 폐해와 콤플렉스는 자신의 전철을 딸에게 대물림 시키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정화도 벌써 만4세가 되었다...정화를 결코 소위 유명교에 넣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이 그 길을 밟아왔기 때문에 그 폐단을 특히 잘 안다.

의식밑의 심층에 뿌리박히는 선자 의식이 콤플렉스로 되어버리고 커갈수록 고립주의, 독선주의로만 되어버린다.../63.3.X>


또 하나,아버지로 부터 주입된 스토아적 관념.

<물질,인간,육체에 대한 경시와 정신,관념,지식에 대한 광적인 숭배,영아기부터 내속에서 싹트고 지금까지 나에게 붙어있는 병인 것이다/홀로 걸어온길>


<또 연극이나 음악회도 입석에서 보는 것이

유행이며...미술관도 무료일만 택해서 가고 점심은 원칙적으로 생략하고 있다. 복장도 그에 준해서 형편없다..물질 경멸과 극단적 빈곤을 감수하면서 '정신'만을 찾고..살고 있는 것이 그들인 것 같았다

/나에게 옮겨준 반항적 낙인>

이 구절은 그의 스토아적 관념을 뮌헨 대학생들에게  대입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음식이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먹으면 된다는 (결혼 후에도) 생각, 밥대신 커피만 꿀떡 꿀떡 마시면서 산 바그너와 샹송의 축음기판,며칠을 굶으며 모은 돈 73마르크로 산 니체 전집 <여기에 나의 영혼이 들어있다>라고 하는 그의 생각이 어느 정도 속되고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전혜린의 정신 숭배, 물질 경시의 외적인 표현은 박경리를 칭송하며,자신의 관념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경멸한다.

<멋 있는사람은 박경리씨. 안 빗고 안 지진 머리 신경만이 살아있는 듯한 피부... /64.2.28>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천박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간단히 말해서 정신의 품격이 없는 사람이다

/ 59.2.19>


<개성이 뚜렷한 자아의 길이 없는 인간은 무엇에 있어서 뛰어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시골에서 학교를 나오고 서울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는 일생 소시민 근성이 따라 다닌다. 도덕,개성,발음,행동 전부가 어중간하다.  

선에도 악에도 불철저하고 다만 얼치기,얼절이, 엉터리다. 무섭게 강한 것은 칭찬과 명예욕뿐/ 62.8.29>


감수성의 절정기인 20살의 나이였지만,

동생 채린에게 쓴 편지는 그가 얼마나 순수한 관념의 이상 속에 살기를 원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우선 너는 오락을 책과 자연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보들레르를, 하이네를, 괴테를, 바이런을 그리고 이방인을 읽어야 돼.공일날에는 눈동자가 독서로 인하여 깊어져 있는 마음 맞는 벗과 남산에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함께 읽은 책 한 권을 에워싸고 끝없는 논쟁에 들어갈 것이다...

목이 마르면 샘물을 마시고, 그리고 피곤하면 잔디 위에 누워서 별을 싫을 때까지 세다가 돌아갈 것이다.

진한 커피를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는 나의 방으로......

서너 시간의 수면 후, 나의 커피 끓이는 냄새에 깬 너는 방을 쓸 것이다.

한 잔의 커피와 사과 한 개, 귤 한 개의 우리의 조반은 극히 짧고도 간단한 것이다.../부산에서>


이런 그는 일상의 권태와 염원이 정체된 현실 속에서 고독했고 방랑을 갈망했고 다른 탈출구를 찾아 헤멘다.

<아무 곳에도 안주 못하는 내 마음이 개탄스럽다. 아무 직업에도 질긴 욕망을 못 느낀다/61.11.2>


<나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얼마나 삭막한지,   

권태가 나를 죽인다>


<기대서 위로받을 한 사람이 갖고 싶어진다.나는 생후 한번도 위안자를 갖지 못했다>


<나도 집시처럼 춤과 노래,사랑과 점치는일로 생활하며 온 세계를 방랑했으면/ 집시처럼>


<포장마차를 타고 인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내 혈관속에는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방울 섞여 있는지.../'64,먼곳에의 그리움>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고 모인다면 장사를 시작하겠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생각하며 살겠다/61.1.31>


<가을이면 앓는 병>에는 죽음에 저항하는 박명의 날들이 우울하게 녹아있다.

<생의 의지가 거의 마비되어 버리는 몇 주일을  꼭 겪어야하는 것이 나의 가을이다.

....매일 커튼을 검게 방 둘레에 치고 어스름한 박명(薄明)속에 누워 있었다..열흘쯤 이렇게 앓고나니 다시 일어나서 사물을 예전과 같은 각도에서 볼 힘이 어디선지 솟아낫고 가을은 깊어져 있었다/가을이면 앓는병>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녀의 삶은 매일 매일 죽음의 유혹으로부터의 도피,자살하지 않기 위하여 사는 역설적 노력이었다.

그리하여 순간 순간 치열하고 충만한 삶을 갈구한다.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집착한다

/64.4.10>


<서른 이라는 한계선을 경계로...보다 열렬하게 일과 사람과 세계를 사랑하고 싶다/목마른계절 >


<그는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나는 생을 사랑해' 라고...자신이 생의 권태에 걸려 넘어질까 봐 겁내는 것처럼

/이덕희>


페시미즘,선민 의식의 폐해,비현실적인 스토아적 관념,고립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기위해 열심히 살았다.

독일 문학을 번역했고,강단에 섰으며,50여편의 수필을 남겼다.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한 투쟁,역설적인 삶에 대한 애착과 치열한 노력이 <불꽃 같이 살다간....> 이란 훈장을 남겼을 것이다.


서른에 접어들면서 그는 어느정도 현실을 받아들이며 체념과 관조의 태도를 보이는 듯하다.

<...산다는 일, 호흡하고 말하고 미소할 수 있다는 일, 귀중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지금 나는 '서야 한다'는...존재케 해야 한다는 나이에 들어섰다....


이상과 꿈이 우리를 만든다...

인식에 모든 것을 바쳤던 10대와 20대...  상처에 뒤덮인 20대 후반기...

지금 회상해 보면 한마디로 내가 '어렸었다'는 느낌뿐이다.

꿈이 너무 컸었다.

요구가 너무 지나쳤었다....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권의 책이 맘에 들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생각해 보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루 하루가 마치 보너스처럼 고맙게 느껴진다.

또 하루 무사히 살아 넘겼구나 하고 잠들기 전에 생각할 때 몹시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다.

그리고 나는 행복을 느낀다/긴 방황>


그러나 이도 잠시

그리고 이혼

196X년,남편이 귀국했지만 개성의 충돌로 8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64년 31세에 합의 이혼한다.

<이혼이란 어디까지나 카인의 이마의 흔적이다 지워질 수 없는 상처다. 한 사람과, 그의 아이와 그의 온 집안을 해치는...아이가 있는 사람은 적어도 무슨일이 있어도 이혼해서는 안된다 /62.8.29>


<그는 나에게 신이었고 니체였고 랭보,발레리 였다/59.3.22>라고  회상한 대학시절,X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전혜린은 몇번 <초월*의 순간>을 체험한다.

<*서로의 의식이 완전히 융합되어 하나가되는 상태,사랑/전혜린의 표현/61.1.3>


<유학에서 막 돌아와 모교의 강단에 선 전혜린과 스무살의 제자는 독일어 강의가 있는 매주 수요일에 만났다.

청년은 시를 써서 바치고 전혜린은 편지를 써서  건네주며 서로를 찬미했다.

어느 날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의 어머니는

전혜린을 만나 무릎을 꿇고 헤어져 줄 것을 호소했다.

마침내 청년은 결별을 선언했고

전혜린은 '네가 날아올 땐 독수린줄 알았는데,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새에 지나지  않았어!'라며 시니컬한 응대로 결별했다/한국 문단 비사,요약/장석주>


<초월의 순간>에서 만큼은 늘 그녀를 괴롭히던 악마도 잠잠했다.

내면의 갈등과 투쟁을 잠 재우는 그녀의 삶에 베풀어지는 드문 은총이었다.하여 전혜린은 늘 이를 갈구한다.

<illusion환상이라도 좋으니까, 아니 거짓이라도 좋으니까 순수한 고뇌를 바칠 수 있는 절대의 대상이 나에게도 있었으면.../62.2.5/이덕희에게 보낸 편지 >

그러나 그러한 은총의 상태는오래 가지 못한다.


죽기 사흘 전 전혜린은 <장 아제베도>라  명명된 남자에게  간절한 구애와 생명을 간구하는2통의 편지를 쓴다.

그것은 살고 싶다는 절규였다.

<첫 번째 편지 - 장 아제베도에게

1965년 1월 6일 새벽 4시...

<어제 집에 오자마자 네 액자를 걸었다. ....

비길수없이 무엇과도 바꿀수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일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

나의 지병인 '페시미즘(Pessimisus)을 고쳐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 .....

정말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나도 생명이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악마를 쫓아줄 사람은 바로 너야,

나를 살게 해줘...../ 마지막 편지,발췌>


장 아제베도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 편지엔 실명이 기록되어 있으나 동생 채린에 의해 장 아제베도로 편집된다.

두 통의 편지는 부쳐지지 않은 채 발견된다.

그리고 이 비련의 개인사들 또한 전혜린을 극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된다.


* 장 아제베도: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 악>의 소설 <테레즈 테케이루 ,Therese Desqueyroux>에 나오는 정신적 이상형의 남자/(인용,책은 읽어보지 못했다,읽을 계획도 없다)


<...혜린은 구하기 힘든 세코날을 마흔 알이나 구했다며 신나했고, 나는 그것을 축하했다.(상습적으로 수면제로 사용중 이었음으로)

그는 어디론가 오래 전화 통화를 했고 천정이 낮은 대폿집에서 혜린과 나는 김승옥,이호철씨와 합석을 했다.


혜린은 술을 많이 마셨고 담배를 피우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으며 최고의 기분인 것 같았다.  

10시쯤 갑자기 그녀가 일어났다.

다른 약속이 있나 보다하고 앉은채 인사를 했고 혜린은 입구에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홍조띤 볼에 활짝웃는 얼굴로 걸어 나갔다.

다음날 아침에 그는.../ 이덕희,요약>


1934년 1월 1일(일요일)에 태어난 그는   1965년 1월 10일(일요일)이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난다.

<자살은 현실 도피의 손쉬운 방법,누구나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또 엘리자(정화)를 어머니없는 아이로 해서는 안 되는 까닭에 아무리 쓰라리게 아파도 나의 목숨만은 유지 해야겠다 /61.1.4>


그는 죽었다

누군가의  기억속에 아직도  전혜린은 전설로 존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의 책은 절판되었고, 20대는 그 이름을 모른다.(모를 것이다)

 

전혜린의 유작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박薄하다.

심지어 <문학 이전의 습작 수준이다>라는 악평도 있다.

결국 그는 생에 이룩한 문학적 업적이 아니라 삶의 흔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녀의 미화된 이미지들은 주관적이고 주변인들의 입을 통한 몇몇 사례이며,한 권의 책으로 전혜린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왜 한권의 수필집에 열광 했을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열광했던 것은 한 개인의 내면을 꽉 채우고도 남는 열정과 그럼에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삶의 모순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다

/박숙자/서강대 연구교수>


그러나 그가 중도 하차함으로서,그의 내면을

꽉 채우고 남는 열정도,삶의 모순도 하차해 버렸다.

절망과 비극외는 열광할 것이 없다.

폐시미즘의 예찬론자 라면.


전혜린은 귀국 후(정도는 다를지라도)동시대인 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었을 결핍된 조국에 대한 환멸과 함께 전도된 향수병으로 뮌헨을 그리워 한다.

<한국인에게선 구토가 나서 더 못 보고 있겠다. 유물주의자,배금주의자들이다/채린에게 >


<...여름을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한국의 인간들

/다시 나의 전설 슈바빙>


<한국이란 나라가얼마나 쉽게 인간의 의욕을 꺽는가를 지난 1년동안 뼈져리게 체험했다/61.1.31>


반면,방학이면  유럽 어디든 떠날수 있는 손가락 여행 hitchhike,

편견없는 정신과 무조건적인 정다움,

돈 없이도 무한한 자유와 토론이 허용되는 노천 카페

그리고 <온갖 것이 합리와 이성으로 처리되는 독일에 빌고 싶은 것은 슈바빙과 함께 보헴의 정신이여! 길이 살아라/뮌헨의 몽마르트르>로 구체화된 자유와 낭만의 이상향,슈바빙이 꿈에 굶주린 젊은이들의 탈출구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삶의 여정, 유학생,천재,여교수,비극적 사랑,요절등의 소설적 요소 또한 전혜린 열풍에 일조하였을 것이며 궤변들 또한 전혜린을 가렸을 것이다.

<순수의 지속과 영원한 그리움에의 가능성을 향한 그녀의 노력은 꽃을 노래하면서도 꽃에 머물지않고 그 열매에 언어의 생명을 불어넣는 언실불언화 言實不言花,지행합일 知行合一의 정신의 언어였고 스스로의 묶임이었다/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전혜린/정공채/시인협회? 회장 역임>

 

<언니의 생은 자유로우려는 정신과 현실 세계와 대결해 나가는 투쟁 과정 이었다/나의 언니 전혜린,1965>


<그녀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자유를 향한 정신과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현실 세계가 대결해 나가는 투쟁 과정이다

/박숙자/서강대 연구교수/한경 매가진 '14.8월>


추도문으로 부터 수사가 늘어난 교수님의 표절로 이어지는 '정신과 현실과의 투쟁',그것은 전혜린의 삶만은 아니요,쟝르와 계층은 달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의 안간힘이며 미화의 소재로는 빈약하다.


어느 즈음에 이르러 전혜린에 가슴 저미던 청춘의 부분들은 비 현실적 관념과 폐시미즘,그리고 슈바빙이란 이상향으로 꾸며진 좁은 책속에 갇혀있는 건강하지 않은 여인을 발견하고 우울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혜린, 그가 불꽃처럼 살다간 찬란한 신화인지,  우상을 갈망하던 지친 세대에게, 한권의 책이 이미지 메이킹한 환상이었는지......

한줄 한줄 그녀를 읽어 내려갈 때 마다 반세기의 굴절처럼 한그루 겨울나무가 오버랩 되었다.


스치듯 지난 슈바빙에서 회색 하늘을 제외하곤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과 '레몬 빛 가스등'을 찾을 수 없었던 아쉬움을 남기고, 일주일간 사귀었던 그 여자 전혜린을 떠난다.

병적인 페시미즘을 제외하면 그는 이 시대에 흔치 않은 매력을 가졌었다.


* 짧은 출장 기간 중 얻은 약 4시간의 여백은 요행이었다.

내면을 읽지 못한 슈바빙은 거대한 입상이 랜드마크가 된 번화가,대학로와 흡사한 풍경이었으며,전혜린의 향수에 공감할 여유는 없었다.

유명한 카페(Luitpol)에서 전혜린을 기억하는 노년의 한국인 부부을 만났으며,이로 하여 슈바빙과 전혜린을 찾는 동기가 되었다.

보수동 골목을 누비며 잊혀진 책들을 찾아준 친구에게 묵직한 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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