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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Feb 25. 2019

본받을지어다! 향우회 노래 3절까지 불렀던 그 정치인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 ③ 지역구 활동

좌절감 안겨주는 지역구 선거운동
출퇴근 인사, 행사 참석은 기본
새벽에 동호회 버스 배웅까지
매일 장례식장에서 소주 마신 의원도
‘정말 할 일일까’ 회의도 했지만

손녀 손잡고 다가온 한 할머니
“건강보험료 올라 너무 힘들다”
정책 반영돼 보험료 체계 개선
유권자 목소리 듣고 답하는 것은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서울 구의동 강변역 근처에서 선거운동원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기 선거를 치러봐야 비로소 정치를 조금 알게 된다고들 한다. 지역구 선거운동은 좌절감을 피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대개 새벽에 출근길 인사를 하는 것부터 일정을 시작한다.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줄지어 서 있는 시민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한 다음 선거용 명함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출마한 아무개입니다. 잘 다녀오세요.” 한껏 웃음을 짓고 말을 걸어보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본체만체한다. 바쁜 출근길에 누가 반갑게 답례를 해주겠는가. 예전에는 받은 명함을 그 자리에서 길에 버리거나 심지어 싫어하는 정당 후보인 경우에는 면전에서 찢는 사람들도 많았다는데(그래서 후보 옆에서 버려진 명함을 줍는 일을 하는 선거운동원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그런 분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은 받은 명함을 그대로 들고 가다가 휴지통에 버린다. 후보 눈에는 명함 버리는 광경이 잘 안 보인다. 시야를 조금만 좁히면 세상이 내 편이라고 느껴지는 법이다.


출퇴근 인사만큼 중요한 것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구청장배 축구대회, 협회장배 배드민턴 대회 등 각종 체육대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지도자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각종 사회단체의 기념식, 그리고 동네마다 있는 다양한 향우회 모임에 모두 얼굴을 비친다. 이런 행사에 오시는 분들은 대개 지역 일에 관심이 많아 여러 단체의 일에 두루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 선거운동을 다니다 보면 여기서 본 얼굴이 저기서도 보인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어갈 무렵 가장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지역 모임에서 몇번 봐서 낯이 익은 분이 말을 걸어온다. “저 기억나세요? 전에 ○○행사에서 만났는데.” 신이 나서 대답을 한다.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때 날아드는 비수 같은 한마디. “제 이름이 뭔지 아세요? 말씀드렸었는데.” “아, 저….” 며칠 사이에 만난 수백명의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한 표 놓치는구나.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선거에 출마해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반드시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이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물음에 대답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유권자를 대표할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 의원이 되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있는지 등에 설득력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는 누구나 나름의 답변을 준비해서 유권자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막상 지역구를 돌다 보면 애써 마련한 구상을 펼쳐 보일 기회가 거의 없다. 버스 정류장에서 명함을 돌리거나 각종 기념식에서 의례적인 축사를 하면서 정견 발표를 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면 회의가 찾아든다. 유권자는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하는가.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은 과연 무엇인가 의문도 든다. 선거 때가 아닌 평상시 지역구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행사장에서 멋진 노래 실력이나 재치 넘치는 건배사로 좌중을 휘어잡는 다른 정치인을 부러워하다가도, 문득 ‘이런 게 정말 국회의원의 역할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정말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라고 고민을 털어놓는 일정이 있다. 새벽에 떠나는 등산동호회나 야유회 모임에 배웅을 나가는 일이다. 어둠을 뚫고 집결지에 가보면 버스 몇대가 서 있다. 회원들이 다 오면 그 지역 정치인들이 한명씩 버스에 타서 인사말을 한다. “좋은 하루 되세요” 운운한 뒤에 일일이 악수를 하고 내린다. 동호회 대표나 간부들은 반가워하지만 일반 회원들 중에는 ‘일이나 열심히 하지 도대체 왜 정치인들이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나’ 하는 표정을 짓는 분도 많다. 차에서 내린 의원들도 비슷하다. “우리 제발 이런 건 하지 맙시다” 하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러나 그만둘 수는 없다. 선거 때문이다. 나는 안 다니는데 상대방만 인사를 다니면 어떻게 하나.


우리 지역에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영남 출신의 한 정치인이 선거 때 호남향우회 행사에 참석했다. 요즘은 타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향우회에서 배척하는 일이 없지만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 같은 지방 후보에 비해서는 환영의 정도가 덜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분은 축사를 하는 자리에서 ‘강서구 호남향우회가’(그렇다. 우리 강서구에는 호남향우회 노래가 있다)를 외워서 불렀다고 한다. 무려 3절까지! 감동한 호남향우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고, 꼭 그 덕분은 아니겠지만 그분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됐다. 향우회 노래를 3절까지 외우는 성실성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도 존경심과 함께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지역구를 돌아다니다 “○○지역의 ○○○ 의원은 동네 조기축구회까지 다 참석한다는데 금 의원님은 왜 그런 행사에 안 오세요”라는 말을 듣거나 혹은 “○○○ 의원은 처음 보는 사람도 얼싸안고 친근감을 표현하는데 금 의원님도 스킨십을 늘리세요”라는 주문을 받으면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어딘가 찜찜한 느낌이 생긴다.


우리 동네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역구에 대학병원이 있는 어떤 전직 국회의원의 에피소드. 그는 퇴근길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그 병원 장례식장에 들른다고 한다. 대규모 병원이다 보니 상주나 문상객 중에 반드시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 앉아서 소주잔을 돌리며 인사를 나눈다. 주민들의 애경사를 빠짐없이 챙기는 우리 의원님! 선거에는 효과가 만점이라고 한다. 감탄스러운 전략(?)이긴 하지만, 밤마다 상갓집에서 술을 마시는 국회의원이 과연 낮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정치인에게 지역구 활동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금태섭 의원이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30일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강서구 지하철 까치산역에서 설날 메시지 패널을 목에 걸고 지역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금태섭 의원실 제공


유권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그러나 회의가 들 때가 있으면 반대로 희망이 보이는 때도 있는 법. 나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온 것은 선거운동 막판 지하철역 퇴근 인사를 할 때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다. 불쌍해 보이면 동정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선거운동원들도 물리친 채 혼자서 있는 힘껏 허리를 숙이고 있는데 손녀 같아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가던 할머니 한분이 다가와서 뭘 좀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하신다. 유권자의 관심은 언제나 반갑다. 그럼요.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다른 동네에서 아들하고 손녀 데리고 7400만원에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요. 주위에서 그래도 집이 있어야 한다고 자꾸 그러기에 무리를 해서 집을 사서 이사를 왔어요. 화곡동이 싸잖아요. 없는 처지에 대출받고 여기저기 긁어모으고, 내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손해지. 그런데 집을 샀더니 건강보험료가 9만원이 됐어요. 그 전엔 3만7천원이었는데. 건강보험공단에 몇번을 물어봐도 그렇게 내야 한대요. 하나 있는 아들이 직장이 번듯하면 거기 얹혀갈 텐데 막노동하거든요. 변변한 수입도 없이 매달 9만원씩 나가는 보험료가 정말 힘든데 어떻게 안 될까요?”


여러 가지 면에서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하소연할 데가 없으면 국회의원도 아니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서 길바닥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얘기를 할까. 전에 내던 보험료를 정확히 외우고 계시는 걸 보면 한달에 5만3천원 더 내느라고 엄청난 고민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선거기간을 통틀어 처음으로 듣는 정책에 대한 진지한 문의였다. “아들 직장이 번듯하면 좋은데 막노동하거든요”라고 몇번이고 말씀을 하실 때는 부끄러워하시는 기색이 역력했다. 스킨십이 왜 필요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때 나는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에 대해서 아는 것도 거의 없었지만, 그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꼭 살펴보겠습니다.”


나만의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 중 상당수가 건강보험료 때문에 힘들어하던 분들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실제로 정책에 반영이 된다. 2017년 3월30일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는 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저소득층 589만가구의 건강보험료가 21% 내려가게 되었다. ‘번듯한 직장’이 있는 고소득층의 피부양자로 얹혀가던 30만가구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었고 일정 기준 이하의 저소득층에게는 최저보험금만 부과된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월 6만원을 내던 가구가 개편으로 인해서 1만3천원을 내게 된 사례가 나온다. 그 할머니의 경우도 적어도 몇만원은 깎였을 것이다. 정말 힘들다던, 매달 보험료 9만원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진 것이다.


여의도에서 하는 의정활동과 비교해서 지역구 활동은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분들이 꽤 있다. 지루해하는 행사 참석자들 앞에서 연이어 인사말을 할 때는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유권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답을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정치의 역할이다.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 찾아가서 통학로를 안전하게 만들어달라는 얘기를 듣고 예산에 반영시키는 것, 아파트 입주자 회의에서 교통신호 체계를 개선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경찰에 전달하는 것 등은 정치인에게 가장 직접적인 보람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구를 돌아다닌다.


그렇다면 이번 설 연휴에 유권자들은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었을까. 나의 경우에 지역구에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재판 불복 논란’에 관한 것이었다. 자기 당 정치인이 불리한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판사를 탄핵하겠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꾸중이 이어졌다. “아이들한테 도대체 뭘 보고 배우라고 해야 합니까. 국회의원들이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과연 민주주의에 대해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억울한 생각이 들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정치인들이 겸손해지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죄송하고 송구스러웠다. 유권자는 항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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