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연봉 8천 간호사, 왜 하필 창업?

"나는 부모님에게 '성실'을 물려받았지만, '부'는 물려받지 못했다."

by 태섭

나는 성실하다. 일단 부모님부터 성실하시다.


아빠는 언제나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과수원, 소 키우기, 수박농사, 고구마농사, 감자농사, 고추농사 등 시골에서 할 수 있는 농사라곤 모두 다했다. 평일 오전 7시, 아빠는 온몸에 흙을 뒤집어쓰고 집에 돌아왔다. 씻고, 밥을 먹고 오전 8시가 되면 한전으로 출근했다. 아빠는 오후 6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먼 길을 왔다 갔다 하며 검침일을 하셨다. 주말도 공휴일도 없었다. 아빠는 그렇게 일주일에 7일, N잡, 37년 동안이나 하셨다.


엄마는 언제나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내가 자다가 잠깐 깨면 쌀을 박박 씻는 소리가 방문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밥이 다 되면 우리들을 깨웠다. 5분만 더 잔다고 하면 처음에는 봐주시다가, 식탁에 밥이 다 차려졌는데도 안 나오면 아침부터 엄마의 활기찬 샤우팅을 들었다. 오전 7시 10분, 씻고 오신 아빠와 함께 5명의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는 것도 잠시, 식기와 유리그릇이 부딪치는 댕댕 소리와 함께 쩝쩝거렸다. 우리가 밥을 다 먹으면 엄마는 바로 일어나서 솨 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설거지를 하셨다. 삼남매가 학교를 다녀오면 다시 우리를 위해 밥을 차려주시고, 밥 먹으러 나오라고 하고, 식탁에 밥이 모두 차려지면 어김없이 샤우팅이 또 날아왔다.


나와 누나들은 그렇게 자랐다. 그렇게 두 분의 성실함을 오로지 물려받았다. 하지만 부는 물려받지 못했다. 부모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자산은 쉽게 불어나지 않는 듯했다. 우리 집이 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팍팍 쓸 수도 없었다. 항상 제자리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우리들을 열심히 키워주셨고 자식농사도 쉽지는 않으셨겠지만, 매일 입 밖으로 '돈돈'이라며 말씀하시는 욕심치곤 부모님의 은퇴 후에 남은 건 겨우 20평의 오래된 아파트 하나였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말한다. '성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단순히 성실함으로만 성공한다면, 우리 집은 애진작에 시골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 되었어야 했다. 성실함은 성공을 위한 기본 입장권(필요조건) 일뿐, 성공을 보장하는 프리패스(충분조건)는 아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부모님처럼 성실하게는 살지만, 효율적으로 일하기로.


나는 누구보다 일찍 자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간호사 7년 차가 되는 동안 병원과 연애 그리고 재테크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 성실함의 대가로 29살에 서울 내 집 마련과, 31살에 예쁜 아내, 연봉 8,000만 원이라는 숫자를 얻었다.


하지만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선명했다. 3교대와 밤샘 근무는 내 건강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어느 날 응급실에서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하다 문득 내 몸의 신호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럽게 눈앞이 빙빙 돌았고, 잠깐 스테이션을 잡고 심호흡을 하며 주저앉았다. 나는 어제도 나이트 근무를 했다. 머리가 지끈 거렸고, 코는 약간 알싸하며, 눈도 따가웠다. 가장 불편했던 건 목이었다. 순식간에 묵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에 독감 환자가 많이 오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나는 어차피 잠을 잘 수도, 환자를 피할 수도 없었다.


토요일인 오늘 오전 7시 30분, 일을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119 구급차 몇 대를 제외하고는 조용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조용하다. 주말은 이게 좋다. 집에 와서 5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휴일을 만끽하고 있는 아내를 찾았다. 아니다, 내가 깰까 봐 거실에서 소리를 조용하게 하고 있는 아내였으니 휴일을 만끽하는 것도 아니겠다.(항상 3교대 근무하는 남편 배려해 주는 게 고맙다) 아내에게 '나 잘 잤어'라고 거짓말을 하려는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약국으로 가서 당장 타이레놀과 이부프로펜을 사서 먹었다. 병원에서 KF94를 항상 쓰고 일해도, 하루에 독감 환자를 3명씩은 마주치기에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결국 내 몸이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 목이 아파서 비명도 못지르네)

나도 부모님과 같은 길을 가게 될까? 평생을 땀 흘려 일하셨고, 그 성실함을 나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하지만 부(富)는 물려받지 못했다. 나는 만약 자식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부모로 각인이 될까. 일단 성실한 모습은 똑같이 물려줄 수 있겠지. 그건 나도 자신 있으니까. 자산도 부모님보다 일찍 모으기 시작했지만... 이게 끝까지 갈지도 모르겠다. 늘리고, 유지하는 것. 쉽지는 않을 거다. 어쨌든 건강해야 그것도 가능하니까. 나는 일을 안 하면 돈 들어올 곳이 없다. 건강을 잃으면 모두 끝이다.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나의 수입은 철저하게 '노동력'에 기반한다. 내가 건강을 잃어 스테이션에 서지 못하는 순간, 나의 현금흐름은 상실된다. 그 순간 연봉 8,000만 원은커녕 8,000원도 벌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될 것이다. 나의 미래는, 아내의 미래는, 훗날 태어나게 될 내 자식의 미래까지 유리성처럼 위태롭다.


나는 사표 대신 사업계획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내 노동력을 팔아 시간을 사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만들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삶으로 넘어가야 할 때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말했다.


"오빠! 돈 잘 주고, 안정적인 직장 놔두고 왜 하필 창업이야?"


솔직하게 100%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다. 아내에게도 내 솔직한 심정을 계속 알려줄 거다. 이제는 연봉 8천의 마취제에서 깨어나, 나만의 '진짜 부'를 설계하려 한다.


이 브런치북은 내가 진짜 야생으로 나가는 첫 번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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