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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Aug 05. 2024

나는 읽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온 생각, ‘밥은 굶어도 글은 굶지 말자’

읽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책을 읽었다고는 말하지 못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매일 뭔가는 읽었습니다. 설령 그 내용이 제 기억에 남아있지 않더라도 눈으로 입력된 글은 뇌신경시스템으로 전달되어서 새로운 정보가 되어 1,000억 개의 신경세포 속 어딘가 자리를 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단어와 문장들은 훗날 "나 여기에 있었어" 하며 저를 다시 반겨 줄 것입니다.

출퇴근시간에 잠깐 동안 읽는 글은 하루의 삶을 단단하게 해 줍니다.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을 상상하고, 무엇을 얘기하고 나눌 것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삶은 우연한 만남과 사건의 연속이어서, 훗날 돌아볼 때 그 모든 일이 특별했음을 알게 됩니다.  


주말은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서 눈과 귀 그리고 입, 온 감각으로 글을 읽습니다. 눈, 귀, 입으로 읽는 글은 나의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새로운 언어와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글을 읽어 내려갈 때 낱말과 낱말은 서로가 연결되어 또 다른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그것은 2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이 땅을 지배하게 된 단순한 의사소통의 언어와는 차원이 다른 문자로 다가왔고, 나와 문자라는 맥락적 관계 속에 뇌신경시스템이 창출해 낸 새로운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밥은 굶어도 글은 굶지 말자', 처음 ‘읽는 삶’을 시작할 때 내 안에 나비처럼 헐헐 날아온 생각입니다. 이 것은 내 안에 또 다른 ‘나’와 약속이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서슴없이 지갑을 엽니다. 책 구입에는 인색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사람을 지적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 이거나, 출판업계의 빛과 소금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렴 상관없습니다.


읽지 않은 책들이 책상에 높아져가고 먼지만 쌓이지만, 작가의 글이 자본을 경유해 다시 책으로 제 눈과 귀, 입으로 전달될 때 그 글은 내 안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다시 ‘지혜’로 트랜스포머 되는 순간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제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이전보다는 좀 나은 사람, 그러니까 좋은 동료, 좋은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인간으로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전적으로 매일 '읽는 삶' 덕분입니다. 매일 읽는 글들은 매일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그건 생각으로 서서히 침잠되어서, 제 삶으로 투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읽은 최고의 소설은 <칼의 노래>이고, 저를 겸손하게 만든 책은 <코스모스>며 천천히 자주 읽은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책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하면 그 문장은 낯선 땅에서 만난 이방인처럼 저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안녕,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라고 말을 걸어옵니다. 매일 읽는 글은 그동안 살면서 누군가에게 제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들입니다.


책은 어머니 품과 같은데, 그것은 내가 한없이 부족해도 언제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추켜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외로울 때는 책을 곁에 두세요. 책은 유심히 나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줍니다. 그리고 다시 말을 걸어옵니다. 삶이 불안하다면 책은 따뜻한 위로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불안한 노후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금이 부족하다며 진즉, 준비할 걸 하면서 염려합니다. 혹자는 연금을 늘려야 한다며 기술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산이 부동산에 너무 치중되었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고민은 각양각색인데 진짜 노후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지 구체적으로 묻고 대답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어떤 삶,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논제가 빠져버린 노후대책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인도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노후에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집에서 적지만 고마운 연금에 의존하며, 죽을 때까지 ‘지혜의 숲’에서 산소 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혹자는 연금부자를 얘기하더군요. 어느 정도 연금을 받아야 연금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욕심내지 마세요. 욕심내지 않으면 누구나 건강하고 만족할 만한 노후가 나를 기꺼이 맞이해 줄 겁니다.


저는 ‘연금 부자’ 보다 ‘글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밥벌이’ 때문에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말, 교만한 말, 상처 주는 말로 점철된 삶에서 벗어나, 좋은 문장과 아름다운 글을 읽고 이전보다 조금은 진보(進步)된 인간이 되어보려 합니다.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中 -


나는 앞으로 어떤 삶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말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무언가 매일 읽고,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을 스스로 열어가는 것이니까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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