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조각 나 있는 내 삶을 예술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님 이셨는데, 우연히 제 글을 보셨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아주 우연히 한국보험신문이라는 곳에서 선생님의 글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당대의 문장가라고 일컬을 만한 분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시는 일은 글을 업으로 삼는 분이 아니라서 더욱 놀랐습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선생님의 주옥같은, 아니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그 따스한 글을 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끄러운 글이고 작가들의 글을 흉내 내는 수준입니다만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어느 날 제 삶이 핍진하여 직장과 인생이라는 공간에서 자꾸만 작아지고 다른 사람의 삶이 더 부러워지고 있을 즈음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책은 엄마품과 같았습니다. “내 아들이 최고다. 내 자식이 제일 멋지다”라고 늘 자랑하는 엄마처럼 책은 언제나 저를 품어주었고 토닥여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위로가 없어서 느끼는 감정입니다”라고 아침마당 진행자 김재원 아나운서는 얘기하더군요. 책은 내 삶에서 큰 위로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요즈음 주변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 그저 독서에 대한 공감 정도로만 표현해 주셨던 분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소개해달라는 분도 생겼고, 독서 모임을 같이 해보자고 권유하는 사람은 물론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을 보내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지만 매일 책을 놓지 않고 글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동안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내 삶의 조각들을 직사각형 퍼즐 테두리 안에 담아 조금씩 완성된 삶을 위해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말에 동네 북카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나름의 주말에 루틴입니다만, 출근 때와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 옷단장을 하고 북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은 참 상쾌하고 가볍습니다. 오늘은 어떤 문장이 나비처럼 헐헐 날아와 나의 골수에 새겨질지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중년의 남성과 여성 그리고 청년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며 필사하는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책을 읽고 연필로 꾹꾹 눌러 슥슥거리며 글을 써 내려가는 것, 그러니까 음절과 음절을 연결하여 단어를 생성하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마치 신이 피조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입니다.
먹는 것은 몸을 키우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키워줍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여러 면에서 저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먼저 마음이 여유로워졌습니다. 여유로워진 만큼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졌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조직과 세상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품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몇 권의 책을 읽고 흉내 내는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쓰는 재미도 느끼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제 글을 읽고 따뜻한 위로가 된다는 것이 내 안에 있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려는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내 안에 가진 내적 슬픔과 외로움을 위로받으려는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귀하기 여기는 만큼 남들도 따뜻한 언어로 대하려고 합니다.
나이 들수록 예쁜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요즈음 ‘개 멋짐’, ‘개 피곤’, ‘개존잘’ 등 젊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며 마치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트렌디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종 저도 고의적으로 이런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이것만큼 가벼워 보인 경우는 없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예쁜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쁜 말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예쁜 글을 ‘눈’과 ‘손’으로 자주 먹어야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글을 읽고 쓰면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예쁜 말을 사용하세요.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 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막연한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이 돈을 버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제가 인생의 부피를 넓히고 혼자 외롭지 않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만의 콘텐츠,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저만의 와일드카드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솔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통해 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부끄러웠지만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사람들과 만남에서도 더 솔직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글쓰기’ 덕분입니다. 그 솔직함으로 오늘도 졸필이지만 글을 쓰고 있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