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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산수연(팔순잔치)

슬픔의 쓸 물이 있으면 기쁨의 밀물이 온다는 자연의 섭리를 믿습니다

by spielraum

남해, 이름 없는 포구(浦口)에는 도시의 소란과 아귀다툼이 태고부터 없었던 것처럼 고요함이 공간을 삼켜버렸습니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삶이 고단하고 핍진한 사람에게 아름다운 달빛을 내려 주고, 그 달빛 아래에는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고귀한 낙원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포구는 어린 새끼에게 생명줄을 내어주는 엄마의 둥근 젖가슴처럼 한없이 관대합니다. 지나가는 외지인에게 던지는 늙은 어부의 말은 생명을 낚는 말이 되고 먼바다에서 파도소리를 담아 웅웅 거리는 바람은 지난했던 삶을 도닥여 줍니다.


그, 포구에서 엄마의 ‘산수연(傘壽宴)’을 가족과 함께 열었습니다. ‘산수(傘壽)라는 한자에서 ‘산(傘)’은 글자의 모양이 ‘8’처럼 생겼고 거기에 ‘十(십)’을 합치면 ‘80’이 된다는 의미로, 산수연은 80세를 맞이한 부모님을 위한 잔치를 말합니다. 잔치라고 해봐야 엄마를 위한 잔치상과 음식을 나누는 것이 전부지만 이런 잔치도 엄마는 익숙하지 않은지 많이 어색하고 놀라는 표정입니다. 오늘 팔순 잔치가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으니까요. 큰 홀을 빌려서 동네 이웃, 엄마랑 말동무하고 같이 마실 다니는 친구 분들을 초대하고 해야 하는데 형제들과 의논 끝에 작은 포구마을에서 자식, 며느리, 손주와 함께 조촐한 가족연으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예쁜 한복을 갈아입으시니 수줍은 새색시처럼 부끄러워하십니다.


자식과 손주들의 감사 손 편지를 읽어 내려갈 때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엄마, 뭐가 그리 미안할 것일까요? 엄마는 내어주고 또 내어줘도 자식에게 늘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런 엄마는 고개 숙인 다 큰 자식들의 머리만 유심히 바라봅니다.


어느새 세월은 자식들 머리 위에 흰 둥지를 틀었는데 엄마는 그 흰 둥지를 보며 시간의 야속함을 못내 아쉬워합니다. 저도 그때 엄마의 푹 파이고 구불구불한 눈가를 보았습니다. 그곳은 마치 메마르고 갈라진 겨울 땅 같았는데 순식간에 마른 고랑에 봄기운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mother'라고 하지요. 엄마 란 어떤 존재일까? 한번 정도 생각해 본 적 있지 않으세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째다"로 시작하는 신경숙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불현듯 생각납니다. 엄마는 새끼들에게는 생명 같은 존재지요. 새끼가 먹을 것이 없으면 제 살을 내어주는 것이 어미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삶을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엄마입니다. 분명히 존재는 하는데 '없는 사람'이 그게 엄마이지 않았을까요?


소설 속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이 쌀독이 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쌀독이 채워지는 날에 엄마는 언제나 자신의 어딘가를 비웠다고 하더군요. 가족이 채워지면 엄마는 늘 비워지는 삶이었던 것이지요. 비워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그게 또 엄마인 모양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조선소에서 용접을 하시다 크게 눈을 다쳐서 일 년 동안 일을 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매일매일 하루를 벌어야 가족이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는데 일 년 동안 일을 하지 못했으니 엄마는 난감하셨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엄마는 돈이 되는 일은 다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공사판 모래 나르기, 식당 허드레 일, 바닷가 쥐포공장에서 생선 가죽 벗기는 일까지 새끼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엄마는 그렇게 자신을 비워 나갔습니다. 새벽 바다 바람맞으며 마른 빵으로 끼니를 때우던 엄마, 그때 저는 그런 엄마에게 왜 그리 화와 분을 많이 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회사 앞,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칼국수 집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부모'라는 시가 걸려 있더군요. 주인분에게 직접 지은 시야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유심히 시를 읽었습니다.


"애완동물 병이 나면 가축병원 달려가도, 늙은 부모 병이 나면 그러려니 태연하고, 열 자식을 키운 부모 하나같이 키워건만, 열 자식은 한부모를 귀찮스레 여겨지네.... 제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 싫은 표정이네… 제자식의 오줌똥은 맨손으로 주무르니 부모님의 기침 가래 불결하여 밥 못 먹네…”


부모는 내 머리 위를 받치고 있는 커다란 우산과 같습니다. 그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질 때 우리는 부모를 잃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고아가 되는 것이지요.


엄마와 동생들과 음식을 나누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엄마의 메말랐던 눈 고랑이 금세 펴졌습니다.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아버지와 함께한 사진입니다. 엄마도 아버지가 꽤 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다 아는 얘기,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반복해도 그 옛날 가족 이야기는 지겹지 않습니다.


이름 모를 포구에 캄캄한 밤이 점점 깊어 갑니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이제 달빛을 밀어내고 포구의 아침을 열어 줍니다. 썰물에 내려갔던 어선은 밀물에 제 주인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수천 년 전 이곳에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면서 생명을 내어준 것처럼 인간의 ‘희로애락’ 도 슬픔의 쓸 물이 있으면 기쁨의 밀물이 곧 온다는 자연의 섭리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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