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스로마 신화 세 인물로 살펴본 삶의 지혜

역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신화는 인간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

by spielraum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과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신들의 놀라운 능력과 기상천외한 활약들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 수많은 갈등과 현상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신화는 전해졌습니다. 역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신화는 인간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하나,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져라.


‘야누스’라는 이름 들어 보셨죠? 여러분들은 ‘야누스’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겁니다. ‘야누스’는 정면과 뒤통수에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두 얼굴을 가졌어”라고 할 때 좋은 의미는 아니죠.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속과 겉이 다른 인물을 얘기할 때도 ‘야누스’를 언급합니다.


‘야누스’는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야누스’는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나왔는데 이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여느 달’이라는 뜻입니다. 1월을 제뉴어리(January)라 하는 것처럼 로마에서는 모든 시작을 의미하는 ‘문의 신’이기도 합니다.


‘야누스’의 아내는 ‘카르나’라는 뉨페(신화 속 하급 요정 또는 젊은 여성)였는데, 그 여신은 구혼자들이 오면 승낙하는 척하면서 몰래 달아나 구혼자들을 늘 허탕 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야누스’는 정면과 뒤통수에 얼굴이 있으니 ‘카르나’가 달아날 때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겠지요.


‘야누스’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뒤통수는 과거를 정면의 얼굴은 미래를 바라보니, 앞으로 나아가되 뒤를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일도 실패하지 않겠지요. ‘야누스’는 결국 ‘카르나’를 아내로 맞이했고 그녀를 ‘경첩의 신’이 되게 했습니다. ‘문의 신’과 ‘경첩의 신’ 정말 찰떡궁합입니다.


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지 말라.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름이 어렵지요? 이 사람은 자신의 집에 철로 만든 침대가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하죠?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라는 의미는 융통성 없이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고 재단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행위를 말합니다.


신화에는 자신의 틀에 가두어 세대 간 갈등을 일으킨 사건들이 많습니다. 태초, 하늘의 신이었던 ‘우라노스’는 대지의 신 ‘가이아’를 누르고 세상의 꼭대기를 차지했습니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이 태어나는 것을 싫어했는데, 자식들이 자신을 밀어내고 권력을 빼앗을까 두려워 자식들을 아내의 자궁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우라노스’의 마지막 자식이었던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독재적 행동에 저항해 결국 아버지를 거세하고 죽이죠. 하지만 자신도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권력을 빼앗길 것을 염려해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집어삼키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무섭죠? 이런 신화가 혹시 황당무계한 사건으로 보이나요? 이런 신화 속 이야기는 자신만의 기준과 고정관념이라는 틀에 새로운 세대를 가두려는 기존 세대의 특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저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거울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만든 침대의 틀에 맞춰 자식과 동료, 후배들을 늘이거나 자르는 무서운 행동은 한 적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 침대의 틀을 깨고 괴물을 물리쳐야 합니다.


셋, ‘이카로스’의 추락하는 날개를 기억하라.


신화에는 ‘이카로스’라는 청년이 나옵니다. ‘이카로스’는 ‘다이달로스’라는 인물의 아들이죠. ‘다이달로스’는 천재 건축가였고 크레타 섬의 궁정 목수였습니다. 크레타 섬에는 몸은 인간이지만 머리는 황소인 괴물이 살았는데, 이 섬의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괴물을 가둘 감옥을 만들라고 하지요. 그것이 바로 ‘미궁’입니다.


하지만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는 오히려 ‘미궁’에 갇히게 되는데 그곳에서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을 만들고 날갯죽지에 붙여 ‘미궁’의 높은 벽 위로 탈출해 날아갑니다. 이때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공중을 날아갈 때 중간을 잘 유지해서 날아야 한다.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물을 먹어서 무거워지고,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을 받아 불에 타버린다 이걸 꼭 명심해라”


하지만 ‘이카로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것에 익숙해졌고 사람들이 새처럼 날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감탄하자 아버지의 말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더 높이 날다가 태양에 가까워지자 뜨거운 태양열에 그의 날개가 녹아 바다로 빠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예와 지위, 돈과 권력은 ‘이카로스’의 날개와 같습니다. 이 모든 것에 익숙해져 취해 있다면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녹아 추락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신화에 또 등장합니다.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이 태양의 마차를 타다가 추락하는 얘기인데요.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능력에 어울리지 않는 욕망은 치명적인 실수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