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수록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아름다운 성격을 소유한 노인이 될 것입니다

by spielraum

사서에 기록된 조선시대 국왕 27명의 사망 평균 연령은 46.1세입니다. 가장 오래 장수한 임금은 여러분도 예상했듯이 바로 ‘영조’입니다. 영조는 82세까지 살았습니다. 전체 왕 중에 만 60세를 넘긴 왕이 20%도 안 된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약 82.7세(2022년) 임을 감안할 때 영조의 장수비결은 무엇일까요?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기간 52년 동안 7,284회(연평균 140회) 진찰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영조는 5식 대신 3식, 오후에 먹는 ‘오식’과 밤에 먹는 ‘야식’을 먹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수라상에 올라오는 반찬은 12첩이 기본이었지만 6첩 이상 올리지 말게 했고, 백반을 멀리하고 잡곡밥을 선호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는 것이 영조의 장수비결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산다는 것이 마냥 좋을 순 없습니다. 우리나라 건강수명은 평균수명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수명을 파악하기 시작한 2012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0.8세, 건강수명은 65.7세였습니다. 그러나 2020년 평균수명은 83.5세, 건강수명은 66.3세입니다(KBS보도 2023.11). 평균수명이 약 3세 늘어나는 동안 건강수명은 0.6세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건강수명의 편차는 더 큽니다. 소득이 가장 높은 상위 20%의 경우 건강수명이 73.3세지만 소득이 낮은 하위 20%는 65.2세로 소득양극화가 ‘수명양극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2021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이 얘기는 기대수명까지 병치레하는 기간은 점점 늘어나고 삶의 질은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영화 <벤허>의 주인공 찰턴헤스턴, <형사 콜롬보> 피터 포크, <황야의 7인> 찰스브론슨, 미국 前 대통령 레이건, 철의 여인 영국 대처수상, 록펠러 가문의 안 주인이며 뉴욕미술관장이던 블란쳇 록펠러,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말년에 치매와 알츠하이머로 생을 마감했던 분들입니다. 특히 록펠러 여사는 비참한 인생으로 마지막을 보냈는데요. 그녀의 아들이자 미국 연방상원 의원이었던 제이 록펠러는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저를 때렸어요. 아니면 점심과 저녁에 식판과 잡히는 물건을 제게 던졌죠.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어요. 어린아이였던 저는요…”<제이 록펠러 인터뷰 中>


치매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12분마다 치매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현재 치매환자는 약 1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치매는 노년층만 아니라 청/장년층에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혹시 <기억>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 있나요? 잘 나가던 50대 로펌 변호사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남은 인생을 걸고 펼치는 마지막 자신의 변론 기이자, 기억을 잃어가면서 끝내 지키고 싶은 삶의 소중한 가치와 가족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주인공(50대)이 아내에게 지나온 삶을 고백하는 부분에서 무거운 감정이 밀물처럼 다가왔습니다.


“머리는 자꾸 기억을 지우는데 마음은 자꾸 기억을 떠 올려, 잊지 말아야 기억은 머리가 지우고, 죽도록 잊고 싶었던 것은 마음이 기억해, 다친 곳은 머리인데 아픈 것은 왜 마음일까?” <드라마 대사 中에서>


순간의 연속이라는 삶에서는 사라질수록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두울 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직장을 잃고 나면 밥벌이의 소중함을 알고, 건강을 잃고 나서 몸이 소중한 재산임을 깨달으며, 이별을 하고 나서야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생을 마칠 때까지 건강하면 좋겠지만 부득이 저에게 ‘치매’라는 질병이 소리 없이 다가온다면 이왕이면 ‘착한(예쁜) 치매’였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야 하니까요.


뇌는 인지를 담당하는 ‘전두엽’과 감정을 관리하는 ‘변연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변연계’는 평상시 ‘전두엽’의 통제를 받지만 치매로 인해 ‘전두엽’과 ‘변연계’의 연결회로가 깨지면 더 이상 ‘변연계’가 ‘전두엽’에 의해 통제되지 않습니다. 뇌의 ‘변연계’는 감정을 관리하는 부위로 치매 환자라도 감정적인 경험은 잘 기억합니다. 그래서 치매가 걸려도 ‘감정의 뇌’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치매환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면 ‘나쁜 치매’ 됩니다.


<국제 치매학회>에서 ‘40년 후 치매에 걸릴 확률 계산’하는 방법을 발표한 적 있습니다. 나이, 교육 수준, 성별, 총 콜레스테롤, 비만도, 수축기 혈압 6가지가 치매의 위험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위의 6가지 요인보다 치매발생에 영향을 주는 더 중요한 내용을 밝혀 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냉소적 성격’의 소유자는 치매에 걸릴 확률이 무려 3배가 높다고 하더군요.


저는 날마다 책을 읽고 뇌를 자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훗날 내가 읽었던 단어와 문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아 움직여 사라져 가는 기억들을 깨우고 감정의 세포들을 살려줄 것입니다. 지금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나에게 분명히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아름다운 성격을 소유한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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