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자아’를 위해 ‘말’은 줄이고, 부지런히 ‘책’ 읽고
누군가 그러더군요. 저는 ‘말(言)’ 하지 않으면 온전한 ‘서울사람’ 같은데, 말 하는 순간 바닷가 내음이 거칠게 풍기는 ‘경상도사람’ 같다고. 그렇습니다. 저는 거친 바닷가에서 자란 ‘부산사내’입니다. 평소에는 표준말 하지만(물론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고향 친구를 만나거나, 당황하면 감추어진 억양 때문에 ‘말’이 투박하게 나옵니다. 그런 경우 꼭 저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고개를 내밀며 슬그머니 저 인양 행동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부부싸움을 합니다. 영락없이 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 안에 있던 또 다른 ‘나’를 통해 전달되고 쏟아 냅니다. ‘말’로 인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솔직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 ‘나’는 진짜 ‘나’ 였을까요? ‘나’ 라는 ‘자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바뀌어 가는데 진짜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여전히 동일한 ‘나’지만 ‘말’이라는 언어적 도구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냅니다.
국어사전에서 ‘자아(自我)’라는 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어느 과학자는 “자아는 어쩌면 환상이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자아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런 자극들을 묶어주는 체계일 뿐이다” 라고 했는데 솔직히 저는 그런 과학적분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을 실제라고 믿는 착각이라고 해야 할까요?
유시민작가는 ‘문과남자의 과학공부’ 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뇌에 있는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쉼 없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비틀거린다” 라고 말입니다. 뇌 속에 ‘자아’가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런 자아는 너무도 유약해서 흔들리고 비틀거린다고 합니다. ‘문과남자’로서 저는 이런 문장이 더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말이죠. “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 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패턴에 영향을 준다” 고도 하더군요. 어느 과학자가 말한 것처럼 환상에 불과했던 ‘자아’가 오히려 우리의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잖아요. 이 또한 놀라운 일입니다.
한 때 거친 억양과 사투리 때문에 ‘보이스 컨설팅’을 받아볼까? 생각한 적 있었습니다. 후천적 노력으로 어느 정도 목소리와 음색을 바꿀 수 있다고 하더군요. 뭐 그리 사투리에 신경을 쓰느냐고 생각할 줄 모르지만,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 직업을 가진 저에게는 ‘말’과 ‘목소리’는 중요한 언어적 비즈니스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목소리가 내 안에 있는 진짜 ‘자아’를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목소리가 변한다고 하지요? 호르몬의 변화와 성대주변 근육조직이 수축, 성장하면서 남성은 10대후반, 여성은 50대중반 완경(完經)과 함께 목소리가 저음으로 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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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위적으로 천상의 목소리를 내는 ‘카스트라토’ 도 있고 우리가 잘 아는 비틀즈의 ‘존레논’, ‘폴매카티니’, 이태리 세계적인 테너가수 ‘파파로티’처럼 목소리가 여전히 변함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성대(聲帶)는 신체의 다른 부위에 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관인데, 노화속도는 오히려 더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삶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는 방증(傍證)이지 않을까요?
영화배우 한석규의 ‘말’에 대한 인터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는 평소에 말을 굉장히 아끼는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유는 과거에 무심코 했던 ‘말’ 들을 생각해보니 ‘참 덧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미사여구(美辭麗句)’ 로 잘난 척하지 않았는지? 세월이 지나보니 그런 반성이 들었다고 합니다. ‘말’은 뱉고 나면 주워담을 수 없고, ‘말’이 많아질 수록 실천하지 못했던 허울뿐인 ‘말’이 잡초처럼 무성해서 많이 부끄러웠다는데, ‘말’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가진 참 멋진 배우입니다.
‘말’은 실수를 동반합니다. 상사(직원)는 직원(상사)에게, 남성(여성)은 여성(남성), 남편(아내)은 아내(남편)에게 말입니다. ‘말실수’는 생각해보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말실수’는 실수가 아닌 것이지요.
‘말실수’는 상대의 무의식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말’이 그 사람의 의식이 잠시 한눈 팔고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흘려주는 진짜 생각입니다. 무의식은 매우 정직해서 가식이나 위선이 없습니다. 프로이트는 ‘말실수’에 대해서 ‘내면에 숨겨진 욕구’ 라고도 했습니다. ‘말실수’로 상대방이 나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 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말실수’는 실수처럼 하는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전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지 못합니다. 앞으로 더 기억력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유시민작가 말에 의하면 뇌는 매순간 퇴화하고 있고, 뇌 속에 있는 ‘자아’도 퇴화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덜 어리석어 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통해 내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 온전한 ‘자아’가 될 수 있도록 ‘말’은 줄이고, 부지런히 ‘책’읽고, 졸눌(拙訥)한 ‘글’이라도 계속 써 보기로 말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