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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May 27. 2024

장모님의 사모곡

왜소하지만, 강직하시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따뜻한 성품을 소유하신 저의 장모님(76)은 제가 밥벌이 생활하는 동안 적잖은 용기를 주신 인생의 멘토 같은 분입니다.

오래전 얘기입니다만, 장모님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장모님 어머님은 두 분이셨습니다. ‘낳아 주신 어머니’와 ‘길러 주신 어머니’, 장모님이 열 살 남짓 되었을 때 낳아 주신 어머니는 오랜 지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얼마 후 새어머니가 오셨는데 어린 장모님과 불과 나이차가 열 살 밖에 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평소 라디오를 즐겨 듣던 장모님은 방송에서 ‘어머니’라는 사연을 신청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응모했는데, 덜컥 방송에 소개되었다고 하셨어요. 어머니의 편지내용을 듣고 허락을 얻어 사연을 소개합니다.


“‘어머니 저 예요’, 지금도 친정 집 마당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부엌문을 열고 나오시면서, “너 오냐, 오느라고 고생혔다” 하시면서 저를 반겨 주실 것만 같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처음 뵌 건 열한 살 때였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스물한 살이셨죠. 저 하고 어머니는 불과 열 살 차이 밖에 안나는 ‘모녀지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족두리를 한 모습으로 가마를 타고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제 친어머니께서 4남매를 두고 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께서 재혼하신 분이 바로 어머니였죠. 아버지께서 재혼하시던 날, 마을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저기 각시가 온다” 마을 사람들이 손짓하는 곳으로 가보니, 원삼 족두리를 쓰고 한복을 곱게 입은 각시가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어찌나 예쁘던지요. 열한 살이던 저는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퍼뜩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렇게 예쁜 각시 한데 어떻게 엄마라고 부르지?’


그때 제가 열한 살, 밑으로 동생이 9살, 4살, 2살이었습니다. 동생들은 너무 어려서 새엄마가 온다는 게 뭔지도 몰랐는데, 그때 저는 알 듯 모를 듯하고 새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한데, 어머니는 오신 첫날부터 제 불안함을 걷어가 버리셨습니다. 시집온 날 각시밥상이라는 ‘점심상’을 받으셨을 때, 어머니는 두 리번 두 리번 주위를 살피시더니 저에게 동생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죠.


제가 동생들을 데리고 안방에 들어가니 어머니께서 양 옆에 우리들을 앉히시고 어머니 앞으로 차려진 밥상에 음식들을 골고루 먹여 주셨죠. “어서 먹어라. 많이 먹어라”, 하시면서 시집온 첫날부터 우리 4남매를 챙기시던 그 모습.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지금 이렇게 예순을 넘긴 이 나이가 되어서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가마 타고 우리 집에 오신 어머니는 50여 년 동안 생모 잃고 불안했던 저희 4남매를 큰 사랑으로 키워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3남매를 낳으셨지만 절대 저희 4남매를 박대하지 않으셨지요.


밤이면 저와 동생을 양 옆에 눕게 하고 잠이 들 때까지 장화홍련과 콩쥐팥쥐 이야기를 매일 밤 들려주시던 어머니, 낮에 일이 좀 한가할 때는 우리들 머리에서 이를 잡아 주셨고 명절이 되면 꼭 좋은 옷을 입히셨죠.


그뿐 인가요? 어머니는 봄이 되면 닭을 키워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께 몸보신을 위해 삶아드렸는데 몸이 유난히 약했던 저에게도 닭을 삶아 주셨죠. 어른들이 다 드실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저는 어느새 깜빡깜빡 졸고 있었고, 그런 저를 깨워서 마늘 넣고 대추 넣어서 푹 고은 닭을 먹여 주셨습니다.


어머니, 이제 환갑을 넘겼고 자식들은 모두 장성했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나’ 라면 새엄마로 들어가 어머니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아마 그렇게 잘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머니는 저희 4남매를 위해서 하늘에서 보내주신 분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어머니께 해드린 게 너무 없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14년이나 연세가 많다 보니, 아버지 먼저 돌아가실 것 같아서 저희들은 아버지한테만 관심을 갖고 어머니한테는 늘 나중에 해야지 했는데, 하늘나라 가는 길은 순서가 없는 모양입니다.


어머니께서 일흔 하나의 연세로 갑자기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어머니는 마치 50여 년 동안 우리 4남매 잘 키워 주시려고 내려온 천사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가식이 없고 위선이 없을 수 있는지, 저는 정말 어머니 인생을 존경합니다. 하늘이 저에게 생모를 잃은 대신 새어머니 복을 주셨나 봐요. 어머니 감사드려요. 하늘에서 제 마음 받아주세요. 정말 감사했다고, 잊지 못할 거라고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내 머리 위를 받치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 거두어질 때 고아가 됩니다. 장모님은 열 살 남짓 어린 나이에 낳아 주신 어머니 병시중 홀로 감당하시고, 남겨진 동생들 챙기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시지 못했지만, ‘햄릿’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셨지요.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 병시중까지 녹록지 않은 인생이었건만 온유한 마음으로 삶을 이겨내고 살아 내신 장모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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