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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May 26. 2024

가난하고 즐겁게 살겠습니다

흘러간 물을 통해 우리는 흘러갈 물을 다시 만질 수 있습니다.

덜컹덜컹 기관차처럼 달려온 선배의 한 시절이 끝나고 있습니다. 다른 때보다 조금은 무겁지만 외롭지 않은 저녁자리에서 “이제는 어떻게 지내실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이었지만 미안함이 묻은 질문에 선배는 따뜻한 눈빛으로 대답했습니다.

“가난하고, 즐겁게 살겠네” 예상밖의 대답은 어색한 공기를 데우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하나인데, 이 말씀은 겸손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배가 얘기한 가난의 의미는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기대와 겸허함이라는 것을 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좋은 시절 다 갔다며 구불구불하고 지난했던 시간을 아쉬워하지만, 누구나 한 시절의 끝에 이르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삶이 물 흐르듯 또 펼쳐질 것이고, 좋은 시절이 가면 더 아름다운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 계절의 모습만으로 나무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잎을 떨군 나무가 실패한 것이 아닌 것처럼, 꽃이 지면 잎의 시절이 오는 것처럼, 흘러간 물을 통해 우리는 흘러갈 물을 다시 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회사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과 지위가 나의 ‘고유명사’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경우 심중 팔구 한 시절의 끝에 이르면 공허와 허무함이 밀려오고, 도적처럼 찾아온 시간의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인해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화려함 뒤의 빈 공간을 채우려 또 다른 특별한 명사로 자신을 치장하기도 하지요. 그때 우리의 모습은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임금피크제를 앞두고 팽팽하게 회사와 긴장관계에 있는 동료와 선배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이는 당장이라도 그만둘 것처럼 얘기하고, 누구는 여전히 신중한 모습을 보입니다. 시쳇말로 “회사가 지옥이면 밖은 전쟁터다”라는 자조 섞인 얘기로 말입니다.


그만둘까? 남을까? 솔직히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그동안 내 삶의 궤적이 직장에서 부여한 지위와 역할이 나의 ‘고유명사’였다면 조금은 말리고 싶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역동적이고 순간순간 변화하는 ‘동사’ 같은 인생이었다면 용기와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동사’ 같은 삶이란 겸허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삶에 대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기대하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가난하고 즐겁게 살겠네”라는 선배의 얘기처럼 말입니다.  


나무에는 ‘해거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순간, 그러니까 나무가 열매 맺기를 거부하는 것인데요. 어떤 나무가 ‘해거리’ 한다고 하는 것은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나무가 열매를 맺건 말건 상관없이, 쉴 때는 나무는 확실하게 쉬기만 합니다. 그리고 1년간의 긴 휴식이 끝난, 다음 해에 나무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실한 열매를 맺는 것이죠.


열매를 잘 맺기 위해서는 잘 떨어져야 합니다. 유도에는 낙법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갑자기 넘어지는 경우에 부상 없이 자기의 몸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기술입니다. 낙법은 잘 떨어지는 기술입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면 부상을 당합니다. 잘 떨어져야 아프지 않습니다.


내 삶에서 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씨앗이 좋은 땅에 잘 떨어져야 합니다. 누구는 강퍅한 ‘돌밭’에 떨어집니다. 흙이 얕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씨는 싹은 틔우지만 곧 햇빛에 말라 버립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가’에 떨어진 씨도 있습니다. 이 씨는 호시탐탐 기다린 새들이 먹어버립니다. 떨어지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다 겨우 ‘가시나무’에 떨어진 씨는 자라긴 하지만 주변나무 기운에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좋은 땅은 ‘해거리’입니다. 누구나 한 시절의 끝에 이른다는 것은 ‘해거리’와 같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지요. 그 휴식이 지나면 어느 시절보다 더 풍성한 다디단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쓰는 작가입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든버그’는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라고 하더군요. 폭우가 쏟아지면 작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빗속으로 들어가 빗물과 가장자리에 튕기는 물방울을 응시하고 그 모습을 면밀히 음미하면서 스스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붙잡는 것이라고 말이죠.


 “지금의 순간을 현재의 눈으로 보지 말고, 먼 영원의 눈으로 바라보라” 스피노자의 말입니다.


‘지금’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현재는 곧 미래와 만날 겁니다. 미래의 눈으로 순간을 음미하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순간은 새로운 출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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