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pielraum
May 23. 2024
나는 마음을 파는 장사꾼입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오롯이 나를 결정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가 저를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고객에게 최적의 재무컨설팅을 제공해야 하는 ‘금융어드바이저’인 그는 고객에게 돈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파는 장사꾼이다”
고마운 표현입니다. (故) 이어령 교수께서 인터뷰에서 “물질이 자본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공감이 가장 큰 자본이지요. BTS를 보러 왜 서양인들이 텐트 치고 노숙을 하겠어요? 아름다운 소리를 좇아온 거죠. 그게 물건 장사한 건가? 마음 장사한 거예요”라고 했는데요.
저는 ‘마음장사’라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마음을 판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마음장사’는 상대방을 바라보고, 집중하는 것이며 귀 담아 듣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집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때 자신이 소중하며 중요한 존재임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엄마가 아이의 눈을 마주 봅니다. 아이에게 집중을 하죠. 이것은 엄마가 아이에게 ‘마음장사’ 하고 있는 겁니다. 아이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엄마의 시선에 아이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엄마의 눈 마주침을 통해 처음으로 소통을 시작하는 겁니다. ‘마음장사’는 눈을 마주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요즈음 눈을 마주치는 일이 드물지요. 회사에서는 비대면 소통이 보편화되었고 결재, 회의, 업무소통도 채팅이나 SNS로 전달하게 됩니다. 효율적이지만 마음은 나눌 수 없습니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사회는 외롭습니다. 물론 직장과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존중의 결여’입니다. 상대방을 오롯이 바라보는 집중의 산물은 존중입니다. 존중이란 당신이 나보다 우선적 존재이고 나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상호 간의 따뜻한 눈빛입니다. ‘나는 당신이 먼저 경험한 사실과 세상을 당신만큼 알지 못하지만 당신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세상을 알아가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시선입니다.
부부간에도 ‘마음장사’가 필요하죠. 평생을 붙어있지만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부가 많습니다. 상대방을 보고 있지만 실제는 보지 않는 ‘친밀한 적대자’라고 해야 할까요? 부부가 ‘마음장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존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연애시절 나보다 우선이었던 배우자가 이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상대방에게 집중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 않아 헤어지는 부부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권태기라고 부릅니다.
회사와 직원사이에도 권태기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관심과 집중이 사라지는 순간 존중은 사라집니다. 직원은 회사, 회사는 직원에게 ‘집중’하면서 귀 담아 듣고 눈을 마주칠 때 따뜻한 존중의 눈빛이 상호 간 발산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전히 ‘마음장사’는 필요한 겁니다.
장례업을 운영하는 60대 후반의 고객을 만났습니다. 오래 前 선친께서 하시던 가업(家業)을 이어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들어서야 장례 지도사라는 직업이 생겼지만 오랜 전에는 불결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지”라고 하시더군요. 그런 가업을 당신이 오롯이 이어받았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바라봐 주지 않았던 시간, 그 시간은 외로움의 시간이었으며 망자만이 친구였으며 부모였고 가족이었습니다.
<굿 바이>라는 일본 영화가 문득 떠올라 대화를 한참 이어갔습니다. 영화에는 시신만 전문으로 수습하는 ‘납관사’라는 직업이 등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장례지도사가 직접 이 일을 하지만 일본은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화려한 첼리스트에서 납관 도우미가 된 주인공은 모든 것이 낯설고 거북하지만 베테랑 ‘납관사’가 정성스럽게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여 이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스토리였습니다.
“미래의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진짜 내 꿈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진짜 꿈은 선생님처럼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잘 배웅하는 일이지 않을까요”라는 말에 고마움을 표현하셨습니다. ‘마음장사’는 귀 담아 듣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집중하고 마음을 나누면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마음 장사’는 여러분의 삶을 결정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들으면 당신은 존중받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따뜻한 기운을 주는 사람은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아름답고 뜨거운 기운을 이끌어 내지만, 격식만 차리는 사람은 같은 사람을 만나도 냉담하고 딱딱한 측면밖에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오롯이 나를 결정합니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저의 메모장에 톨스토이의 글이 적혀 있군요. “사람은 강과 같다. 모든 강은 어떤 데서는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다. 또 어떤 데서는 폭이 넓고 수면이 잔잔하다. 맑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 진흙탕이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똑같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