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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팀장 Dec 24. 2019

배달의 민족에서 헤어진 여자 친구가 보인다

떠나는 뒷모습에 남겨진 고객들이 씁쓸한 이유

국내 배달 앱 시장점유율 1위 배달의 민족이 5조 원 인수합병이라는 역대급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더군다나 피인수 대상이 국내 배달 앱 시장에서 경쟁 중인 요기요, 배달통을 서비스하는 독일 기업 '딜리버리 히어로'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여러 의문과 함께 시장에서 큰 충격을 남겼습니다. 언론에서는 독과점 관련 논란부터 인수합병 이후의 전망까지 다양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소비자의 여론은 어떨까요? 언론 보도 댓글을 살펴보면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결국 생각해보니 중간에서 수수료만 올려놨다, 꼭 필요하지는 않았던 비즈니스라는 의견도 있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배달비 문화와 일부 배달기사의 행실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들이 많았으며 일부는 '게르만 민족'이라면서 유희적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M&A 소식에 왜 대중들은 응원이 아닌 분노와 배신감을 표하는 걸까? 떠나는 뒷모습을 씁쓸히 바라보는 고객의 관점에서 배달의 민족과 함께한 시간을 회고해봤습니다.



1.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배달의 민족과의 첫 만남이 생각납니다. 

영화 예고편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첫 광고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었고 류승룡 배우가 출연한 영상광고는 물론 버스, 지하철 광고까지 엄청난 존재감과 임팩트를 자랑했습니다. 그렇게 눈에 띄는 광고들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배민스러운 마케팅 활동은 재미와 웃음을 넘어 B급 광고, 감성 광고라는 장르를 개척해 나갑니다. 전국의 배달 전단지를 앱으로 넣는다는 기발한 발상과 전화를 하지 않아도 주문이 된다는 이점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어느 날 나에게 나타나 준 것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이었습니다.  고객들은 배달 주문의 익숙한 습관 대신 낯설고 서툴지만 새로운 만남에 조금씩 적응해 갔습니다.




2. 어려운 시간들을 함께했다

배달 앱 초기만 해도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배달 앱이라는 개념은 어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전화주문에 어려움이 있거나 판매자의 불친절, 배달 오류 등 불편에 시달리던 고객들은 반겼지만 생존의 위협을 느낀 기존의 전단지 매체들은 공격적 혜택을 제공해 입지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또한 판매자 진영에서는 착취가 아니냐는 여론도 상당했는데, 판매 당 과금 수수료는 물론이고 배민 앱 내에서 광고를 위한 비용까지도 배달 시장의 소비자 편의성만 반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서비스 도덕성 논란에도 불구, 고객들의 열렬한 사랑에 힘입어 배민은 성장을 지속합니다. 주변의 핍박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달 앱 서비스와 소비자는 쉽게 서로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되는 뜨거운 분위기에 저항의 흐름은 조금씩 잦아들고 시대는 둘의 관계를 인정하게 됩니다.



3. 서로가 서로에게 당연해졌다

배달 앱 주문규모가 전화주문을 뛰어넘을 즈음 교촌치킨은 '배달료'라는 공을 처음 쏘아 올립니다. 굽네치킨이 그 뒤를 이었고, 중소규모 프랜차이즈와 개인 사업장에도 배달료 문화가 확산됩니다. 판매자 사정을 들어보면 전화로 직접 주문했던 '그때'보다 배달 앱이라는 유통과정이 추가되면서 배달 앱 수수료를 지급하면 같은 수량을 판매해도 이윤이 더 낮아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직접 고용했던 배달기사들은 배달대행 전문 업체가 흡수하면서 또 다른 중간단계가 생겨났습니다. 이쯤 되니 처음에는 한없이 좋아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불만도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하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연을 끊자니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 것 아닌가 하는 갈등도 생깁니다. 그렇게 예전만큼 소중한 사이는 아니지만 익숙하고 당연한 관계로 남겨두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4.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배달 앱 시장과 새로운 배달문화가 익숙하게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경쟁 서비스들도 등장합니다. 요기요와 배달통은 물론, 최근에는 쿠팡이츠까지 참여해 고객을 사로잡으려는 여정에 동참합니다. 이들은 배달이라는 서비스 본질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어렵자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전면에 내세워 가격적 이점으로 환심을 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배민은 배달사업 외에도 치믈리에 선발, 배민 신춘문예 등 꾸준히 차별화된 마케팅 활동과 브랜딩으로 고객을 놓치지 않고자 애썼습니다. 그럼에도 고객들의 마음은 조금씩 떠나기 시작했는데 아껴주었던 만큼 돌려받은 것을 생각해보니 주문비용 부담 증가에 미미한 포인트 적립률, 연예인 전용 쿠폰 논란 등 서운함과 상처뿐이었죠. 어쩌면 이때부터 그동안 함께 나눈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5. 더 나은 미래를 찾아서 떠나다

이렇게 국내 배달 앱 시장은 도입기와 성장기를 빠르게 지나오면서 고객 피로도는 높아졌습니다. 반대로 배민 또한 경쟁이 심해지며 마케팅 비용은 더 많이 들지만 가입세는 둔화되었을 것입니다. 쿠팡이츠의 배달시장 진출과 향후 행보 또한 거대 자본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 요소로 작용했고 결국 수익성을 개선하고 시장 점유를 높이기 위해 역설적으로 배민은 배민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배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배민이면서, 동시에 배민이 아닌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죠. 결국 긴 시간 배달의 민족과 배달 앱 고객의 동행은 서로의 니즈를 맞춰가며 행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브랜드와 고객이 남았을 뿐, 브랜드와 팬의 관계는 사실상 일단락된 것으로도 보입니다.



배민은 지금 당장 아시아를 향해 떠나지만, 고객은 선택지가 없으니 일방적인 이별 통보일까요?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인연이란 것은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카카오 같은 대형 플랫폼 사업자가 '타다' 택시 논란 이후 '카카오택시'로 운송 사업에 진출했듯이 배달 앱 시장 또한 기존의 가격 할인 위주의 경쟁이 아닌 다른 차별성을 제공하는 신규 서비스나 수수료 이해관계가 없는 공공 서비스 차원의 배달 앱이 출시된다면 상황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비즈니스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성장하듯이, 고객 또한 더 좋은 서비스를 만날 권리가 있습니다. 배민이 없던 그 시절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고객의 마음은 언제나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또 모르죠. 공정위 심사 결과에 따라서 이별을 선언한 배민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김봉진 대표가 인수합병 건으로 임직원에게 보낸 출사표 메일의 수신자는 고객이 아닐지, 5조의 기업가치는 성공의 대가이자 고객에게 진 빚이 아닐까 하는, 디지털 시대의 시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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