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자본주의가 낳은 시대의 단면
우리나라는 유독 교육열이 높다.
사실 배움에 대한 열정보다는 성공에 대한 열망에 가깝다.
명문대에 진학해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을 성공이라 교육받고
그 성공에 대한 '싹'을 입시라는 관문에서 평가받는다.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보다는 획일화된 목표를,
다름이 아닌 옳고 그름에 관한 우열을 가리며 살았다.
공부를 잘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기업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학생을 선호하는 이유가
학벌을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라는 증거로 평가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기도 한다고.
공부라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보고로서 활용되기보다
사람을 물건처럼 등급을 구별하는 조건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공부를 잘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자.
대표적인 몇 가지 그룹. 정치인, 법조인, 기업인이다.
이들은 분명 가장 뛰어난 지성인이자 지식계층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평가는 어떠한가?
가장 성공한 그들임에도 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까.
국민의 안위 대신 무소불위의 권위로 만행을 저지르며
중범죄자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형량을 구형하고
회사 돈을 자신의 것인냥 횡령하는 '성공'한 그들의 모습.
이쯤되면 그동안 생각해왔던 성공의 정의도 흐릿해진다.
사회에서 비난 받아도 명예와 돈을 얻으면 성공한 삶일까?
공부만 잘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머리는 지식으로 가득하지만
가슴 속에 정의와 양심에 대한 고민은 텅 비어있는듯 하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왜 성공해야 하는가'라는 사명,
'어떤 모습으로 성공해야 하는가'의 진정성 있는 고민 없이
앞만 보고 오직 성공 하나만을 좇아 특권을 손에 쥐었을 때
성공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값어치란 오늘날의 그 것들이다.
나 혼자 잘 먹고 사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의 작은 성공이다.
조금 더 위대한 성공이 있어야만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위대한 성공이란 돈이나 명예 따위로 우열을 매기지 못하며
성공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 그리고 권한을 통해서
다른 무언가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타인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가치를 창조해서 공헌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가치를 공헌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버린 진정한 성공의 본질 아닐까?
아무리 큰 성공일지라도 나 혼자만의 외로운 성공보다는
아무도 모르는 작은 성공이라도 값진 성공을 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