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동무, 수리온!

- 수리온 사업단 창설 멤버 증언 ③

by 늘푸른 노병


30년의 낡은 군화를 벗고서.


2009년 2월, 나는 방위사업청에서

전역후 삼성테크윈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경력직 채용’은 흔한 길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공채로 입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내가 맡게 된 자리는 선배들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결코 가볍지 않은

자리였다. 항공기 엔진의 정비·납품·

운용 전반을 관리하며 군과 기업을

잇는 가교 역할.


내가 군에서 해왔던 모든 경험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수리온’


나는 더 이상 수리온 개발 현장에 직접

뛰어들 수 없는 전역한 민간인의 신분이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수리온은

단 한 번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


멀리서 지켜본 수리온은 여전히

한창 '체계통합'이라는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체계통합'은 개발 현장에서 가장 험한

산(山)이자, 드라마가 많은 구간이다.


오케스트라로 비유하자면 지휘자와

같다. 미세한 음 하나까지 짚어가며

전체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통합의 가장 큰 적은 고장이 아니라

‘타이밍과 인터페이스의 오해’,

즉 시스템 간의 미스매치로 더 어렵다.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 성능을 흔들어

놓곤 한다. 결국 통합의 본질은 ‘기술,

사람, 환경’을 한 몸처럼 맞추는 일이다.


나는 삼성테크윈 소속으로 한국항공

(KAI) 사업장을 수차례 오갔다.

엔진에서 에러가 발견되면 그 책임은

온전히 우리 몫이었기 때문이다.



옥동자가 태어나기까지의 긴 터널


국내 기술 개발은 ‘연구-개발-시험

-인증-양산-전력화’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양산 단계에서도 시제기 제작-비행

-피로-충돌 시험-지상 시험-군 운용

시험, 감항 인증 평가를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다.


이름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수정이

반복된다. 영하 40도의 혹한 시험을

위해 연구원들이 알래스카까지 날아가

시험을 마쳤다.


美) 알래스카 저온 시험을 위한 시제헬기 운송 장면


그만큼 헬기 한 대는 ‘날아서 태어나는

기계’가 아니라 ‘버텨내며 태어나는

생명’에 가깝다.


그 기간 동안 삼성에서 한화로 사명이

바뀌었고, 나 역시도 회사 유니폼을

다시 갈아입고서 수리온의 여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수리온’과의 기이한 인연’


이후 한화에서 정년을 맞이함과

동시에 여전히 수리온에 필요한

부품들을 글로벌 업체에서 소싱해

납품을 하는 무역회사에서


직함보다는 역할로 신입사원 같은

마음으로 일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는 수리온 국책개발 사업단의

창단 멤버였고, 이후에는 개발

현장에서 뛰었고 지금은 수리온의

안전비행을 위해 부품을 공급하는

사람으로 여기에 있다.


첫 부품 납품을 마치고

한국항공 격납고 앞에 섰을 때,

안에서 정비 중인 수리온 한 대가

보였다.


20년 전, 내가 처음 마주했던

그 시제기와 똑같은 자세로

늠름하게 서 있었다.


나는 늙었는데,

너는 여전히 청년이구나.

오히려 나보다 더 젊어 보였다.


그렇게 장구한 세월을 돌고 돌아,

나는 다시 수리온 곁에 서 있다.



국민 곁으로 날아간 헬기


이제 수리온은 군뿐 아니라 경찰,

해양경찰, 소방청, 산림청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안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전국을 누비고 있다.


수리온 헬기 파생형(관용 헬기로 운용)


최근에는 수출까지 성사되어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하늘의 자산’이 되어있고,


그리고 지금도 현장에서 반드시

교체되어야 할 수리 부속을 납품하며

수리온과 친구가 되어 있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수리온은 단순한 헬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의 산물이기 전에,

사람의 작품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단 하나의

문장을 남기고 싶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기술은 난관을 겪지만, 사람이 가진

헌신, 소통, 책임감이라는 비 기술적

가치가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비로소

기술을 완성시킨다는 의미다.


이 국책사업의 결과물은 오늘도

대한민국 곳곳의 하늘을 날며 국민의

안녕을 보살피고 있다.


수리온은 이제 용도도 다양하여,
가장 쓸모 있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머지않아 지구촌 곳곳의 하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날게 될

날도 기대해 본다.


조종사로, 개발자로, 그리고 이제는

수리 부속을 납품하는 사람으로. 나는

수리온과 함께 천천히 늙어가고 있다.


수리온과 나는,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다.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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