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리온 사업단 창설 멤버 증언 ②
2년 만의 재합류
두 해가 지나 다시 수리온 헬기
개발사업단으로 발령을 받았다.
1편에서 언급했듯이, 조종·정비·
보급·획득 업무를 두루 경험한
군인의 이력은 흔치 않았다.
그 경험들이 나를 다시 이 자리로
불러온 셈이었다.
다시 찾은 사업단은 낯선 얼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기틀을 닦고
떠났던 자리에, 새로운 인재들이
들어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사람은 모두 바뀌고, 책상 위에는
개발 서류만 산처럼 쌓여 있구나.’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중압감이 확 다가오는
느낌과 동시에 이제 다시 하나씩
추슬러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눌렀다.
개발 용어와의 씨름, 그리고 밤늦은 공부
내가 맡은 역할은 수리온의 핵심인
엔진의 개발·운용 안정성 확보, 정비·
보급 체계 구축, 그리고 종합군수지원
(ILS)를 총괄하는 업무였다.
개발 과정에서 생산되는 모든 기술
산출물을 검토하고 관리하는 일.
비행체 개발에서 이 작업은 작은
오차 하나가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인으로서 처음 접하는
개발 용어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SRR, SDR, PDR, CDR,….
그리고 각 개발 단계마다 생산되는
산출물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날로 이어졌다.
국방과학연구소 소속 동료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해 한 달 가까이
밤 10시가 넘도록 개인 강의를
들었다.
지금 60대 중반이 되어 다시
배우며 일하는 모습처럼, 돌이켜
보면 그때도 ‘배우는 사람’이라는
본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 앞에 서는 일의 무게
개발 단계마다 실제로 헬기를
운용할 현역 조종사와 정비사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주기적으로 개최했다.
설계와 평가를 둘러싸고 현장의 불만이
쏟아지던 어느 날. 팀 총괄 장교로서
회의를 진행하던 내게, 당시 팀장이
갑자기 고함을 치며 나를 질책했다.
회의실에 있던 50여 명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같은 조직원이라면, 회의가 끝난 뒤
따로 말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날의 면박은 지금도 또렷하다.
국책사업은 기술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 다시 배웠다.
‘수리온’이라는 이름, 두 개의 엔진
국산 헬기 ‘수리온’이라는 이름은
대국민 공모를 통해 지어졌다.
‘수리’는 하늘의 제왕 독수리의
기동성과 용맹을, ‘온(ON)’은 100%
국산화, 그리고 항상 켜진 상태의
안전을 지킨다는 의미다.
과거 UH-1H, 500MD 헬기들은 단발
엔진이다. 엔진 하나가 멈추면 그대로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조종사의
부담도 컸다.
하지만 수리온은 700마력급 첨단 엔진
두 대를 장착했다. 한 엔진이 멈춰도
비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이중 안전
구조를 확보했다.
각종 계기는 디지털화되었고,
임무 장비도 첨단화되었다.
수리온은 세계에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진짜 ‘최첨단' 헬기의
얼굴을 갖춰 가고 있었다.
공항까지 쫓아온 보안요원
개발 전 과정을 모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동료 연구원들의
경험은 이 사업이 얼마나 험난
했는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로터 블레이드(날개) 기술 협력을
위해 프랑스 유로콥터(현, 에어버스
헬리콥터)를 방문했을 때,
기술 협의 끝에 간신히 설계 기술
관련 CD 한 장을 건네받았지만,
귀국길 공항 보안요원들이 끝내
회수해 갔다.
블레이드 제작의 핵심 기술,
말하자면 ‘붕어빵 틀’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국내 중소기업을 찾아 1년 만에 그 기술을 국산화해 냈다.
프랑스 기술자들조차 놀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1편의 ‘화장실까지 따라온 스토킹’은
우연이 아니었다. 기술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늘 의심의 대상이자
감시의 대상이었다.
73개월, 그리고 세계 11번째
세계적인 항공사들도 헬기 하나를
설계부터 생산하기까지 보통 10년이
걸린다.
하지만 우리는 73개월, 불과 6년
남짓한 시간 안에 헬기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냈다.
8,700kg의 거대한 기체를 하늘에
띄우는 기술을 대한민국이 마침내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 11번째
헬기 자체 개발국이 되었다.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나는 개발의 전 과정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그 승부의 길에 나의 땀과
열정이 함께 했음을 지금도 자랑
스럽게 여긴다.
방위사업청, 산업부, 국방과학연구소
(ADD), 항공우주연구원(KARI),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연구원들….
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우주항공
기술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날을 사무실을 침대 삼아
헌신했던 그들의 건승을, 조용히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한다.
(수리온 사업단 창설 멤버의 증언 ③은 12월 15일(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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