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궁, 하나의 시간

-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9)

by 늘푸른 노병


어제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을 걸었다. 비가 온다기에 우산, 비옷, 장화까지...
단단히 준비했는데,
기상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날씨는 뜻밖에도 최고의 봄 날씨였다.

인생도 가끔 그렇다.
준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유년(幼年)의 경복궁 안에는 국립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궁궐 한복판에 서 있던 현대식 회색 건물은 그때의 나에게 아무 의문도 주지 않았다.


문민정부 시절,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거대한 포클레인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밀어 넘어뜨리던 장면을 보았다.


높이 솟은 중앙 탑이 쇠톱에 잘려 내려오는 모습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내 마음에도 한 시대가 접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창경궁에는 동물원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들르던 풍경은 오래도록 궁궐의 기억과 겹쳐 있다.


그러나 동물원은 이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갔고, 궁은 다시 궁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궁(宮)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한 세대의 시간 속에서 지켜본 셈이다.


젊은 날의 나에게 세 궁은 그저 스쳐 지나간 공간이었다. 시간을 보내던 장소에 불과했다. 오늘은 그 자리에, 다른 내가 서 있다.


하루에 세 궁을 돌아보기로 하고 경복궁으로 들어섰다.
경복궁 - 경회루


조선 왕조의 법궁은 경복궁이었고, 권력이 가장 높이 머물던 곳. 그러나 균형을 잃는 순간, 궁궐도 함께 흔들렸다.


광화문을 지나 넓은 마당에 서자. 발걸음이 절로 느려졌다. 궁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중심을 잃지 말라고 조용히 서 있는 것 같았다.


젊은 날의 나는 늘 곧게 서 있으려 애썼다. 조직 안에서, 현장에서, 누군가의 판단이 되어야 했던 시간들. 흔들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버텼다.


복궁의 직선은 그 시절의 나를 닮아 있었다. 넓고 단단하지만 어딘가 긴장으로 팽팽한 모습.


근정전 앞에 서니 묘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지키려 했던 걸까. 원칙이었을까, 체면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이었을까.


궁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그 사이에서 여러 번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어쩌면 중심이란 한 번 세워 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력에서나 보던 경회루의 봄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K-문화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조금은 낯설고, 그래서 더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걸음을 옮겨 창덕궁으로 향했다.


창덕궁 - 낙선재


창덕궁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궁궐이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어진 궁궐. 시간이 오래 머문 정원이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길은 곧지 않았다. 돌계단은 조금씩 기울어 있고, 나무들은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인생도 굽이쳐 왔다는 사실을 이곳은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 후원(後園)으로 들어서자 숨이 길어졌다.


성과보다 관계가 더 어려웠던 시간, 세대가 달라 서로의 언어가 엇갈리던 순간들. 나는 자주 설명하려 했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말없이 서로의 그늘을 내어주고 있었다. 곧지 않아도 함께 설 수 있다는 것을, 이 궁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했다.


조화는 힘을 빼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굽은 길은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한 길이라는 것을.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무렵, 나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 - 석조전 & 준명당


궁궐의 마지막 시간은 덕수궁에 머물렀다.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고종의 시대. 전통 궁궐 건물과 서양식 건물이 함께 서 있는 공간.


낮은 궁궐 지붕 옆에 서양식 건물이 나란히 서 있었다. 전통과 근대가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나 역시 그렇게 두 시대를 건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는 늘 갑작스러웠다. 기술은 빨라졌고, 세상은 가벼워졌으며,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따라잡으려 애쓰다 스스로가 구식이 된 듯 느낀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 궁은 말없이 서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어색한 조화를 이루며 끝까지 자리를 지켜냈다.


나는 그 풍경 앞에서 비로소 마음이 조금 놓였다.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다만 사라지지 않으면 된다고.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방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의 궁은 나에게 기준을 물었고, 오후의 궁은 나를 낮추었으며, 저녁에 찾은 궁은 끝까지 남을 것을 묻게 했다.


궁은 세 개였지만, 결국 걷고 있었던 것은 나의 시간이었다.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지고, 곧게 서려다 조금은 굽어지고, 낯선 시대와 나란히 서 보려 애쓰며 여기까지 왔다.


더 늙기 전에 다시 걷고 싶다는 말은, 궁을 향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다짐이었다.


아직 다시 걸을 힘이 남아 있다. 그 사실이면 충분하다.


브런치를 통해 ‘더 늙기 전에 다시 걷고 싶은 우리 땅’ 연재를 시작한 것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씩 다녀본 곳인데도 다시 보니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새롭게 보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다음 연재 안내]

- 사람이 머물던 자리(성균관 · 조계사 · 명동성당 · 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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