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있게 마지막 정리. 깔끔한 마무리
아침에 우연히 한 기사를 읽었다. 연예인 신애라 씨 아버지, 신영교 씨 이야기였다.
89세. 아직 건강하신데 생전에 장례식을 미리 치렀다는 기사였다.
처음엔 충격적이었으나, 조금 신선했다.
나는 평소 신애라 씨를 참 훌륭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려운 아이들을 입양해 친자처럼 돌보는 모습.
그래서 더 눈길이 갔다.
우리는 장례를 죽은 뒤의 슬픔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달랐다.
신영교 씨가 말한 장례는 죽음을 준비하는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사랑과 감사를 먼저 전하는 자리였다.
죽음을 두려움의 끝이 아니라, 삶을 더 깊게 만드는 계기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내가 읽은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죽음은 피해야 할 일이 아니라 준비할 수 있는 삶의 일부다.
둘째,
장례의 본질은 형식이나 비용이 아니라 감사의 표현이다.
셋째,
생전 장례를 치른 뒤 삶을 더 사랑하고 감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죽음을 말하지만 사실은 삶을 더 진하게 말하고 있다.
특히 마음에 남은 대목이 있다.
아내를 기리는 마음, 어머니의 화장을 미리 선택했던 경험,
그리고 과시적인 장례 대신 그 비용을 이웃에게 돌리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말.
이것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우리 장례문화에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떠난 사람을 위해 장례를 치르는가. 아니면 남은 사람들의 체면을 위해 장례를 치르는가.
그가 생전 장례식에서 남긴 말이 오래 남는다.
“이제는 병이 오더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 “잠든 듯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사람을 더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겠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죽음을 준비한 사람이 결국 삶을 더 깊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마지막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그 마지막을 먼저 마주했고, 그래서 오늘을 더 또렷하게 살고 있었다.
장례를 미리 치른 사람이 아니라, 삶을 미리 정리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더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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