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품격

- 나이가 아니라. 태도가 만든다 -

by 늘푸른 노병



나는 베이비부머다.




도시락과 책을 보자기에 싸서

학교에 다니던 시절,


빡빡 깎은 머리에 검정 고무신이

교복이었던 때를 기억한다.

호롱불이 사라진 자리에

전기가 들어오고,


마을에 단, 한 대뿐인 텔레비전 앞에

온 동네 사람이 모여들던

'그 시대'의 목격자다.


소풍날에나 겨우 맛볼 수 있었던

김밥은 우리 세대의 향수이자

결핍이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낸 세대다.


압축성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앞만 보고 달렸고,


이제는 잠시 멈춰 서게 된

인생들.,.


그 고생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우리 모두는 같은 시대를 건너온

동지同志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년배들에게 꼭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고생을 많이 했다는 사실이

현재의 무례함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품격을 유지하는 문제는 과거의

보상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어느 날 마주한 부끄러운 거울


지난주였다.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음료를 받다

직원의 실수로 커피를 조금 쏟았다.


셔츠 소매와 바짓가랑이가 얼룩지는

일이 발생했다.


순간 내 입에

"아이고, 대체 뭐 하는 거야!"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다 멈췄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직원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머릿속이 찡~하며 울렸다.


'아,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구나.


타인의 이야기로만 치부했던

꼰대의 모습이 내 안에서도 불쑥

고개를 들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는 앞만 보고

달리는 법만 배웠지,


멈춰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자신을

돌보는 법은 배울 겨를이 없었다.


'나'보다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개성을 지우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결핍이 타인에 대한 함부로

해도 된다는 권리가 될 수는 없다.


그날 이후,

외면하고 싶었던 우리 세대의 그늘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종업원을 하대하는 목소리,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공간을

침범하는 무신경함,

술기운을 빌려 주변은 아랑곳 않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들.


어쩌면 그것은 평생을 치열하게

경쟁하며 '내 자리'를 지켜내야 했던

이들의 거친 생존 본능이 잘못

발현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습이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지금이 진짜 '꽃을 피울 나이'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쉬어야 할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풍부한 경험이 쌓였고,

세상의 이치를 깊게 이해하는

시기다.


우리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이 시대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자부심을 가진 세대다.


이제 그 자부심을 '품격'으로

증명해야 할 때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품격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큰소리를 내지 않고도 뜻을

전하는 여유.

잘못했을 때 먼저 사과할 줄

아는 용기.


약자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

후배에게 조언 대신 질문을

건네는 경청의 자세.


이런 덕목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과거의 보상심리를 내려놓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가꿔야만

얻을 수 있는 결실이다.


존경보다 '불편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는 이제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보다,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은 어른'으로

남고 싶다.


어른의 품격은 나이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태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정한 권위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절제에서 나온다.


나이를 먹는 건 자동이지만,

어른이 되는 건 선택이다.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우리가

이제는 이 땅을 품격 있는 나라로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진짜 어른'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인생 2막에서

우리가 이뤄내야 할 가장 찬란한

성장이자,


우리가 후배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일 것 같다.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다정하게 늙어가는 것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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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와 삶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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