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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안 Oct 05. 2022

고시원에 가기 전 알면 좋았을 것들(22.10.07)

이주간 기록

지난 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고시원에 살고 있습니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치곤 괜찮은 곳이지만 원룸처럼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사실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살기 전, 살면서 떠올렸던 점들이 있으니 혹시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라면서 정리해봅니다.


1. 장점


왜 고시원을 선택하는지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일단 쌉니다. 보증금이 필요 없습니다. 물론 행복주택이나 전세대출처럼 조금 싸게 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당장 한 두 달 내로 살 곳을 정해야 한다고 하면, 원룸이나 고시원밖에 답이 없습니다.


빠릅니다. 위랑 비슷한데, 입금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


기간이 짧습니다. 부동산은 계약기간이 어느 정도 있지만, 고시원은 입금하고 짐만 옮기면 끝입니다. 그리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면 됩니다. 잦은 이동이나, 잠시 몸을 눕힐 곳이 필요한 분이라면 괜찮은 선택지일 수 있습니다.


위치입니다. 서울 도심에 자기의 주거지를 둘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 주거지는 아니지만요,

장점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화장실과 샤워실, 부엌 등을 관리해줍니다 가끔.


이것도 장점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적어도 모텔처럼 커플들의 신음소리를 들을 일은 없습니다. 출장으로 몇 번 모텔에서 묵을 때 커플들의 신음소리로 곤란한 적이 있었는데 고시원은 적어도 신음소리를 들을 일은 없습니다. 소음이 없는 건 아닙니다.


2. 단점


사실 가격 빼고 모든 게 다 단점입니다. 누구나 올 수 있다는 건 누가 오는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저번 글에서 인구 구성비를 적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인이 30%는 될까 싶습니다. 저는 인류애가 있지만, 문화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게 걱정이 안 되지는 않습니다.


짐을 많이 둘 수 없습니다. 창이 없을 수 있습니다. 화장실이 없을 수 있습니다. 샤워실이 없을 수 있습니다. 소음이 심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벌레가 많을 수 있습니다. 분실할 수 있습니다. 빨래를 누가 훔쳐갈 수 있습니다. 쓰레기가 가득 찬 주방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분들이라면 여자들의 생리대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건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일 뿐입니다. 모든 게 해당할 수도 있고요.

3. 둘러보기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 같습니다. 다음은 둘러보기 단계입니다.


일단 고시원 치면 네이버에서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혹은 네이버 지도로 지역 한정해서 보면 검색창에 뜨지 않는 곳도 볼 수 있습니다. 직접 가서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한 달 살지 일 년 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한 달이라고 해도 어떤 곳인지는 알아야겠죠. 날 잡고 하루면 대여섯 곳, 많으면 열댓 곳까지 볼 수 있을 겁니다. 가기 전에 전화해서 한 번 방 보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은 친절히 안내해줍니다.


체크해야 할 건 많습니다.


1. 방 사이즈

2. 방 침대

3. 방 책상, 의자 여부

4. 에어컨, 냉장고 여부

5. 주방 느낌

6. 벌레 여부

7. 빨래 방법

8. 조리 여부

9. 전체 디자인

10. 내창 외창

11. 화장실 샤워실 크기

12. 외부 소음

13. 내부 소음

14. 신발장 사이즈

...


요즘 고시원들 중 하루 숙박 2만 원 정도인 곳이 꽤 있어서, 시간이 있다면 하루 숙박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가끔 책상만 있고 의자는 없는 곳도 있습니다.


개인 냉장고는 호불호가 갈립니다. 저는 방에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다면, 냉장고 열과 소음 때문에 차라리 공용 냉장고를 쓰는 걸 선호합니다.

벌레는 고시원이 하루 종일 누군가 취사를 하고,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않는 곳이다 보니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또 주변에 음식점이나 분리수거함이 앞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디자인은 밝을수록 좋습니다. 신축이라고 해도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으니 신축이나 리모델링한 곳을 추천드립니다. 고시원에 살면 밝게 살기 어려운데, 방이라도 밝아야죠.


외창, 햇빛이 없다면 삶의 질이 확 떨어지는 걸 느끼실 수 있습니다. 한강뷰가 생각보다 안 좋다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고시원은 그냥 안 좋습니다. 작은 햇빛이 이렇게 감사하다는 걸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는 왜 몰랐을까요.


내창은 외창이 있다면 없어도 됩니다. 고시원 내부 소음도 상당합니다. 외창은 신선한 공기지만 내창은 신선한 공기도 아닙니다. 내창은 외창을 못 내는 고시원장이 허락해준 마지막 자비가 아닐까요.


화장실과 샤워실 천장에 머리가 닿습니다. 화장실이야 잠깐 숙이면 그만이지만, 샤워실은 10분 가까이 씻는데 늘 허리를 숙이고 씻어야 합니다. 또한 예전에 잠깐 있었을 때, 방 내부에 샤워실이 있으면 습기가 가득 차 잘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안에 샤워실 화장실 없는 방을 고르고 헬스장을 등록했습니다. 기본 25만 원인데, 외창 내창 화장실 샤워실이 다 붙어있는 경우 거의 50만 원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25만 원만큼 편리하냐. 하면 편리합니다. 그렇지만 월 3만 원 헬스장을 끊으면 하루에 두 번 세 번 씻고도 방에서는 덜 습하게 잘 수 있습니다.

큰 데도 있겠지만 신발장이 작습니다. 세로로 굉장히 좁아서 부츠나 에어맥스 같은 큰 신발은 들고 오지 못 합니다. 고시원장의 자비로 맨 밑 한 칸은 조금 큰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부츠 같은 건 어림없습니다.


4. 식사


고시원 중에는 라면이나, 간단한 반찬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초반에는 많이 헤매어서 라면도 먹고 서브웨이도 사 먹었지만 지금은 편의점 도시락을 주로 먹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고시원에서 가볍게 먹으면 공짜

영양 불균형, 방에서 먹으면 음식 냄새, 매일 비슷한 음식, 식사시간 주방 경쟁 등은 단점

물론 정말 아끼려고 이렇게 먹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인지라 편하고 다양하게 먹게 사 먹고 있습니다.


다양한 반찬. 쓰레기만 버리면 되는 빠른 뒤처리. 상에 앉아서 편안한 식사.

비용 지출


서울에 아직도 7,8000원에 식사할 곳은 많습니다. 직장 근처에 없어서 그렇죠. 정 안 되면 타사의 구내식당을 이용해도 됩니다. 저는 고시원으로 옮기기 전 근처 구내식당을 대여섯 곳은 조사하고 왔습니다. 이런 곳은 좋죠. 직장인 느낌도 낼 수 있고, 편의점 앞에서 담배 피우는 할아버지들의 훈연향 첨가를 받지 않을 수도 있죠.


한 번 먹어봤는데 5000원에 닭다리가 하나 들어간 닭곰탕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통 컴퓨터를 하다 보면 식사시간을 딱딱 맞추기 어려워 저는 사실 대부분의 식사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2,30분 걸어서 밥 먹으러 가는 것도 조금 시간이 아깝고요. 아무튼. 뭐든지 대기업이 하면 잘합니다.

그 외 추천으로는 기한 임박 식품, 마트 마감세일, 노브랜드 자체 제품 등입니다. 특히 식단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몬드나 닭가슴살 미리 쟁여두면 편합니다. 나트륨이나 지방, 탄수화물은 쉽게 섭취하지만 건강한 지방이나 단백질은 섭취하기 어려우니까요. 포만감도 주는 음식입니다. 밤에 몇 개 주워 먹어도 칼로리가 높지 않습니다. 디저트까지 먹고 싶으시면 시리얼 큰 거 하나 사서 배고플 때마다 몇 조각씩 드세요. 몇 조각씩만 먹으면 단맛과 바삭바삭함의 조화로 꽤 포만감을 줍니다.


5. 의류


입고 빨기 편한 것. 그리고 단정한 느낌을 주는 것 위주로 챙깁니다. 편한 옷은 잘 안 입어 버릴법한 옷을 챙깁니다. 고시원에 오래 살지 않는다면 짐을 늘릴 필요는 없으니 쉽게 버릴 수 있는 옷들로 챙깁니다. 요즘은 이지케어셔츠, 이지케어 슬랙스, 이지케어 트렌치코트등 잘 나옵니다. 단정한 옷은 언제나 입을 수 있지만, 편한 옷은 편할 때만 입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 남자들이 비슷한 옷만 입는 것도 같습니다.


또 느긋하게 빨래 돌리고 너는 경우보다는 건조기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6. 이동


서울은 다 비슷하게 괜찮지만, 아닌 지역이라면 버스나 지하철로 주로 이동하는 곳까지의 방법과 시간을 계산합니다.


따릉이는 30일 2시간권이 베스트입니다. 7천원입니다. 하루에 길어봐야 10분 타는데, 7일권 안에는 타기 힘들고, 30일권이면 간당간당하게 소진할 수 있습니다. 1년권은 너무 길어서 패스입니다. 너무 비싸기도 합니다.

7.취미


고시원에서의 삶을 살게 됐다면, 안에서 할 수 있는 취미라고는 유튜브보기 밖에 없습니다. 그 환기 안 되는 공간과 소음 속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컴퓨터가 유일합니다. 홈트도, 요리도, 악기도 다 불가능합니다.


이왕 그렇게 된 거 독서와 글쓰기라는 취미를 들이는 건 어떨까합니다. 도서관은 어느 동네나 한 두개는 있고, 정 안 되면 '리디북스'나 '밀리의 서재'도 있습니다. 이 글을 볼 정도의 핸드폰이 있다면 유튜브에 도전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서울에는 무료 전시도 많습니다. 주말랭이나, 헤이팝레터 등 구경거리를 소개해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니면 산책도 좋습니다. 저는 밤에 산책하면서 가끔 보이는 서울의 예쁜 가게나 재미있는 간판들을 찍는 걸 좋아합니다.

8. 루틴


혼자 있는, 좁은 공간은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일어나자마자 방을 나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저는 일어나자마자 아몬드와 비타민을 먹고는 바로 카페나 운동하러 갑니다. 텁텁한 방에 있어봤자 좋은 에너지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 이후에는 일상 루틴과 똑같습니다. 머리 많이 쓰는 일을 전반부에, 머리 적게쓰는 일을 후반부에, 운동을 마지막에 둡니다. 운동을 가볍게, 처음에 두는 분도 있습니다.


생계도 적을까 하다가, 나도 내 생계를 해결 못하는데 민망해서 지웠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요즘 당근마켓이 아르바이트를 많이 밀어줘서 괜찮습니다. 대학생, 졸업생이고 시간이 있다면 '자란다'나 '째깍악어'같은 아이돌봄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경험이 되고 나중에 아이를 돌볼 걸 미리 경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조금 능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공모전 같은 걸 준비해도 괜찮습니다. 괜찮은 대외활동하면 월 20씩은 받고, 공모전 짬짬이 생각해낸 걸 몇 개씩 넣으면 몇십만 원짜리 우수상을 수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상입니다.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꽤 많은 분들이 고시원에 살았었다고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고시원에 살았었다고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편안한 시간은 아니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거 같습니다.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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