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했습니다
09:00 느긋하게 기상. 요즘은 든든히 먹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 먹는 것도 적응됐고, 아몬드, 단백질 바, 곤약젤리, 냉동 볶음밥 등 부족함 없이 먹고 있다. 맛은 그저 그렇지만 풍족하다. 먹고 설거지하는 과정이 귀찮긴 하다
10:00 청년지원센터에 갔다. 스쿼트를 열심히 해서인지, 잠자리가 구려서인지 요즘 허리가 아프다. 일단 오전 운동은 쉬었다.
14:00 전자책을 뒤적거리고 노트북을 조금 했다. 이제야 적는 거지만 어제 면접을 괜찮게 본 거 같았고, 긴장이 조금 풀려선지 이 날은 설렁설렁 보냈다.
15:00 대학로에서 유튜브 영상 촬영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연하시는 분을 따라다니면서 촬영하는 아르바이트였다. 당근 마켓에는 없는 아르바이트가 없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라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커플들도 우리 덕분에 조금 더 행복해졌을 거다. 어차피 촬영자인 나는 안 보일 테니 나중에 편집본이 올라오면 링크도 걸겠다.
캠코더 잡는 법부터, 공연업계 이야기도 조금 들어서 신기했다. 이미 유튜브나 책 등 다른 세계를 접할 경로가 많지만, 조금 더 깊게 아는 방법은 관련 업계에 가거나, 모임 같은 곳에 가서 듣는 거 같다. 기록되지 않을 때 날것으로 나오는 사람의 솔직함이 있다.
17:30 합격 문자를 받았다. 다시 회사원 삶의 시작이다. 대신 새벽에 "오늘 ㄱ?" "내일 ㄱ?" 같은 일당 근로자의 삶이 끝난 건 다행이다.
18:00 아르바이트가 끝났다. 조금 더 친해졌으면 좋았을 텐데 돈을 받자마자 헤어졌다. 캠코더를 오래 들고 따라다니는 건 꽤 손목이 아팠다. 할 때는 마치 공연의 일부가 된 거 같아 신나서 몰랐었다.
19:00 저녁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브런치를 적었다. 지금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지옥이다. 고시원까지 20분이면 가지만 그 험난한 길을 헤쳐가도 딱히 할 게 없다. 그냥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서는 운동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딱이다.
22:00 버스를 타고 돌아가 운동을 했다. 사실 운동보다는 샤워를 하러 간 거에 더 가깝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워서 땀을 많이 흘렸다.
23:00 운동 후 단백질 바, 닭가슴살, 곤약젤리, 보충제 등을 먹어 배가 불러 늦게 잤다. 부족하게 먹는 게 나은데, 한 번 부족하게 하루 생활해보니 아찔해서 차라리 구비해두는 편을 선택했다.
다음 주부터 회사원의 삶이다. 당분간은 고시원에서 생존하겠지만, 2800원짜리 커피를 아껴먹으러 기프티콘을 사고, 점심 걱정을 하는 일은 없을 거 같다. 하루 루틴이 깨질까 전전긍긍하던 날도 없겠다.
가끔씩 1일차부터 다시 본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다. 하루하루의 감정이 이렇게나 자주 바뀌었나 싶다. 그 안 좋은 감정들이 이제 거의 사라졌다. 먹을 걱정하던 날들도 사라졌다. 시간을 저당 잡히는 일당 근로자의 삶도 일단 끝났다. 면접 일정을 잡아놓고 취소하는 준비생으로서의 삶도 일단 끝났다.
그렇지만 일하는 삶이 진짜 한 인간으로서의 시작이기에 무작정 기쁘지도 않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잘 안 맞는 곳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애인은 걱정과 비관이 많다고 하지만, 너무 기뻐하는 삶보다는 적당한 비관의 삶이 나은 거 같다. 아무튼.
다음 주부터는 다시 근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기에 이 시리즈는 조금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나도 근로자이자 일원이자 개인으로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글보다는 업무에 집중하는 삶을 선택하려고 한다. 글 주기가 줄어들어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