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여겨왔거나 계속 해왔으니 관성적으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지.
머리길이를 포함한 사소한 것부터 진짜 나를 위한 것인지 하나하나 되돌아본다.
항암제의 부작용인지
항암을 하면서 생긴 갑상선 항진증의 부작용인지 모르지만
최근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담당 주치의는 분명
나한테 쓰는 항암제는 탈모는 오지 않을 거라 했는데
사람마다 반응의 메커니즘의 다를 수 있어서인지
긴 머리가 실타래처럼 엉켜 방바닥을 뒹군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나 웨이브 머리를 했었는데,
투병 중인 요즘 긴 머리가 귀찮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국민연금에 방문해 항암치료를 받으면 신청할 수 있다는 장애연금을 신청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미용실에 들렀다.
"머리 커트하러 왔는데요."
원하는 기장을 묻는 직원에게 귀 바로 아래까지 잘라주세요라고 답했다.
"머리를 그렇게 많이 자르시게요? 아깝지 않으세요?"
재차 묻는 직원에게 괜찮다고 답한다.
말총처럼 길게 잘려 있는 머리를 보니 시원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항암을 시작한 지 4달이 되었는데,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이 긴 머리를 왜 여태 자르질 않았지.'
암 진단을 받고 나서는 누구에게든 잘 보이거나 예뻐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저 어떻게 하면 내 몸이 편할까,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질까 만을 오롯이 고민한 4개월이었다.
20년 가까이 고집하던 긴 머리가 잘려 나가고,
귀밑까지 댕강 잘린 단발머리를 거울로 들여다본다.
20년간 보지 못했던 나 같지 않은 얼굴이다.
당연하게 여겨왔거나 계속 해왔으니 관성적으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지.
머리길이를 포함한 사소한 것부터 진짜 나를 위한 것인지 하나하나 되돌아본다.
시원한 목덜미를 내놓고 미용실을 나왔다.
찬 바람이 목에 와닿는다.
분명 머리가 빠져서 꿀꿀한 마음으로 들어간 미용실이었는데,
나올 때는 기분이 좋다.
나는 암환자이고, 항암치료 중이지만
좀 더 편한 일상을 위해 스스로 내린 이 결정에 자꾸 웃음이 난다.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
[사진 출처]
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