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단발

by 구도

당연하게 여겨왔거나 계속 해왔으니 관성적으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지.

머리길이를 포함한 사소한 것부터 진짜 나를 위한 것인지 하나하나 되돌아본다.





항암제의 부작용인지

항암을 하면서 생긴 갑상선 항진증의 부작용인지 모르지만

최근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담당 주치의는 분명

나한테 쓰는 항암제는 탈모는 오지 않을 거라 했는데

사람마다 반응의 메커니즘의 다를 수 있어서인지

긴 머리가 실타래처럼 엉켜 방바닥을 뒹군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나 웨이브 머리를 했었는데,

투병 중인 요즘 긴 머리가 귀찮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국민연금에 방문해 항암치료를 받으면 신청할 수 있다는 장애연금을 신청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미용실에 들렀다.


"머리 커트하러 왔는데요."


원하는 기장을 묻는 직원에게 귀 바로 아래까지 잘라주세요라고 답했다.

"머리를 그렇게 많이 자르시게요? 아깝지 않으세요?"


재차 묻는 직원에게 괜찮다고 답한다.


말총처럼 길게 잘려 있는 머리를 보니 시원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항암을 시작한 지 4달이 되었는데,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이 긴 머리를 왜 여태 자르질 않았지.'

암 진단을 받고 나서는 누구에게든 잘 보이거나 예뻐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저 어떻게 하면 내 몸이 편할까,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질까 만을 오롯이 고민한 4개월이었다.


20년 가까이 고집하던 긴 머리가 잘려 나가고,

귀밑까지 댕강 잘린 단발머리를 거울로 들여다본다.

20년간 보지 못했던 나 같지 않은 얼굴이다.


당연하게 여겨왔거나 계속 해왔으니 관성적으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지.

머리길이를 포함한 사소한 것부터 진짜 나를 위한 것인지 하나하나 되돌아본다.


시원한 목덜미를 내놓고 미용실을 나왔다.

찬 바람이 목에 와닿는다.


분명 머리가 빠져서 꿀꿀한 마음으로 들어간 미용실이었는데,

나올 때는 기분이 좋다.


나는 암환자이고, 항암치료 중이지만

좀 더 편한 일상을 위해 스스로 내린 이 결정에 자꾸 웃음이 난다.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


[사진 출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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