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무엇을 하고 싶어? 배우고 싶은 것은 없어? 어떻게 살고 싶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어슴푸레한 확신이 조금씩 자라났다.
‘쾅, 쨍그랑 쨍그랑.’ 이 소리를 들으면 내 머리카락은 곤두서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엄마는 기분이 언짢을 때면 방문을 세게 닫거나 큰 소리를 내며 설거지를 했다. 말로는 도무지 설명하지 않는 엄마의 기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어릴 적 나는 엄마가 내는 소리에 항상 귀 기울여야 했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일단 엄마 기분이 나쁘면 나는 눈치를 살폈다. 내 기분까지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말을 섞지 않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만 했다. 그 시절 내 신경은 온통 외부로 향해 있었고, 그렇게 나는 내 감정보다는 주변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며 자랐다.
그렇게 너무 오랜 시간 지내서였는지,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내 감정의 주도권을 흔히 다른 이에게 주었다. 항상 타인의 표정과 말투를 살폈고 조금이라도 표정이 어두우면 ‘내가 뭐 잘못했나.’ 곱씹느라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살피고 독립적으로 사는 법을 몰랐던 나는 감정이 소모될 걸 알면서도 곁에 있을 누군가를 항상 찾았다. 내 인생 전반을 지배하는 감정이 바로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대학교를 1, 2년 다닌 후였다. 그때부터 연애를 쉬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의 좀 더 신중하게 지켜보고 결정해도 되지 않겠냐는 말에도, 연애 공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어지간하면 사귀고 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외로웠다. 옆에 누군가를 두면서도 온통 신경이 그 사람에게만 가 있으니 아무리 연애를 해도 내 안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또한 내가 나의 마음을 잘 모르니 나도 알지 못하는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고 혼자 마음을 접는 식이었다. 그렇게 관계를 정리하면 나의 공허함을 채워줄 새로운 사람을 다시 찾아 나섰다. 여러 사람과 교제를 하는 과정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보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연애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나는 회사에서 공시를 담당했었는데, 내 실수로 정정공시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였다. 팀원들은 풀에 죽어 있는 나를 격려했다. “금방 고쳐서 다시 올렸으니 괜찮아. 맛있는 것 먹고 다 잊어버려.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나는 답했다. “제가 뭐 밥 먹을 자격이라도 있나요, 저는 그냥 굶을게요. 밥 안 넘어갈 것 같아요.” 다른 이가 내밀어준 손을 잡지 않고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함부로 대한 건 언제나 그랬듯 바로 나였다.
어릴 때부터 앓던 지병으로 매년 대학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몇 달 전 암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에 대한 안내를 받을 때 병원 영양사는 식단이 중요하니 매 끼니 단백질을 챙겨 먹어야 하고 하루 최소 1리터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요리 블로그를 할 만큼 요리를 좋아했지만, 혼자 있을 땐 끼니를 거르거나 때우기 일쑤였다. 나 하나 먹자고 수고로움을 감수할 만큼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 진단 후로는 매 끼니 신경 써서 식사를 챙겨야 했다. 더더군다나 아침과 점심 식사는 가족들이 모두 학교와 회사에 가고 난 뒤 혼자 먹는 식사였다. 암 진단을 받은 사실 자체도 서러운데, 내가 직접 내 식사까지 챙겨야 하니 서러웠다. ‘나도 챙김을 받고 싶다. 누가 나 좀 보살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대충 지낼 수는 없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나만을 위해 장을 보고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민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루하루 내 마음과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니 오히려 서럽고 외로운 느낌이 차츰 희미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무엇을 하고 싶어? 배우고 싶은 것은 없어? 어떻게 살고 싶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어슴푸레한 확신이 조금씩 자라났다. 이 확신은 내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 원동력이 되었다.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고 글쓰기 강좌에 등록했다.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일이 아닌, 처음으로 단지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하는 일이다.
나만을 위한 것들로 채우는 요즘 내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다. 다른 이가 아닌 내가 나를 보살필 수 있다는 걸 아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그렇게 오랜 시간 찾아 헤맸는데, 바로 내가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아프지 않고 계속 건강했더라면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나만을 위한 식사를 스스로 준비하고 내가 배우고 싶은걸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지금 이 시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인생은 늘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답을 알려준다. 이번에 알게 된 답은 내가 참으로 오랫동안 찾았던 바로 그 답이다.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