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떠나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by 구도

남은 여행 또한 언제든 힘들고 지칠 수 있을 테지만, 그 여정이 어떠하든 무엇이 대수랴.

나에게는 어떤 새로운 경험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있음을 확인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뜰 무렵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코 끝과 티셔츠의 짧은 소매 바깥으로 내놓은 피부에 찬 기운이 와닿았다.


프라하는 서울보다 위도가 높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0월의 밤은 서울보다 길고 쌀쌀했다.


새로로 기다란 창의 커튼을 통과해 들어오는 새벽 가로등 빛으로 아이들과 남편은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이들이 발 밑으로 차 놓은 이불을 가슴께까지 올려주고,

어젯밤에 미처 다 돌아보지 못한 아파트 안을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발소리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녀본다.




침대 옆, 거실 소파 뒤, 욕실로 가는 복도에 있는 라디에이터의 온도 조절 다이얼을 Max로 돌리고 거실 소파에 잠시 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후 내뱉고 어깨의 힘을 빼 편안하게 앉은 상태에서

집에서 멀리 떠나 올 때면 언제나 느끼는 생경한 기분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새로운 새벽녘의 빛깔, 새로운 공간, 새로운 냄새를 눈과 코에 담았다.


그제야 한국이 아닌, 서울이 아닌, 지구별의 낯선 곳에 있음이 실감 났다.

이 낯선 곳에서 어떤 낯선 경험들로 나의 시간을 채워볼까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항암치료를 받는 내가 멀리 떠날 수 있을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을까 하고 막연하게 걱정하던 것도 막상 해보니 어떻게든 되는 거였어.'


마냥 편안하고 유쾌하진 않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곳에 도착했다.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에 떠나지 조차 않았다면 도착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용기를 냈고, 모험을 함으로써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하루가 지금 내 앞에서 시작되려고 한다.


남은 여행 또한 언제든 힘들고 지칠 수 있을 테지만, 그 여정이 어떠하든 무엇이 대수랴.

나에게는 어떤 새로운 경험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있음을 확인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공복에 먹어야 하는 갑상선 저하증 약을 먹고,

식재료만으로 한가득 채운 캐리어를 열어 마른미역과 국간장, 동결건조한 마늘, 일회용 참기름 한 봉지를 꺼냈다.


미역을 불리고 참기름에 불린 미역을 달달 볶다가 물과 마늘을 넣고 한소끔 끓인 후 국간장으로 간을 했다.


해가 뜰 무렵 아이들과 남편도 일어났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따뜻한 요리를 나누어 먹었다.


매끼 식후에 먹어야 하는 간수치 조절 약 3 봉지와 항암제를 가방에 넣고, 외투에 머플러까지 단단히 챙겨 입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는 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 중간의 프라하 1 지구에 위치한 아파트여서, 트램으로 몇 정거장만 가면 프라하 성에 갈 수 있었다.


빨간색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으로 이동하는 동안 창 문 밖으로 아름다운 프라하의 건물들이 스쳐 지나갔다.



프라하 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성 중 하나로 프라하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프라하 성에는 성 비투스 대성당과, 구왕궁, 황금소로 등의 여러 가지 관광지가 함께 있어서 여유롭게 돌아본다면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하루 정도가 걸리는 코스다.


프라하 성에 도착해 가장 높은 건물인 성 비투스 성당으로 향했다. 성 비투스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멀리서 보았을 땐 여러 개의 높은 첨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성당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시야가 좁아지고 입구 주변의 여러 조각들도 눈에 들어왔다. 세밀하게 깎인 사람 형태의 조각상들과 꽃무늬, 덩굴 무늬의 조각들이 입구 파사드(*) 한 면에 가득했다.

(*) 건물의 정면이 있는 외벽


멀리서 보았을 땐 그 크기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는 첨탑의 웅장함에 압도되었다면,

가까이서 보니 섬세하고 고풍스럽게 장식된 조각 하나하나에 감탄했다.



우리는 유럽의 오래된 대성당이 주는 감동에 매료된 상태로 성당 안으로 입장했다.


그런데 성당 안에는 더한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


[사진 출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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