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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Jan 31. 2022

[색종이]

KUA Conte #22 Henri Matisse


생명을 가진 모두에게 노화는 반드시 찾아온다. 물론 해삼처럼 나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생물도 존재 하지만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노화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노화가 가진 무시무시한 힘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길거리 노파의 걸음걸이에서, 노인이 오래 산 집의 냄새에서, 어느날 삐져나온 흰머리카락에서 노화는 그 발톱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고난은, 이 노화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 사고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성장이 끝나는 시점에서부터 한 순간도 빠짐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는 예고된 내리막길을 걸어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전까지는 자신이 쇠락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

 그 일은 아주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아니, 어쩌면 ‘일어났다'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암덩어리는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M의 몸에 자리 잡았을 테니 어떤 전조 증상이나 예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까지는 누구도 그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 소식을 마주해야 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아니 살아있는 역사로 알려진 천재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특권이기에, 나는 그의 일화를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 나의 일기를 펼쳐보면 마치 M의 다큐멘터리같다. 하긴 그가 워낙 정력적으로 일해대는 탓에 그의 어시스트가 된 이후 나에겐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기도 했다. 


-

 암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M의 몸은 많이 노쇠해있었다. 일흔의 나이를 지나가고 있는 노화가는 붓을 쥐고 있는 것이 힘에 부쳐 손가락에 붓을 묶어서 작업하고는 했다. 관절염은 화가에게 올 수 있는 최악의 병 중 하나였다. 손가락에 힘이 달려 물건을 떨어뜨리기 일쑤였기에 M선생의 근처에 뜨거운 커피를 갖다놓는다거나 하는 것은 이 작업실에서는 암묵적으로 금지되었다. 

 나의 아침 일과는 선생이 최대한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화실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내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창문의 먼지였다. 창문의 먼지가 한겹 쌓이면 화실의 빛도 그만큼 약해졌다. 나는 미묘한 빛의 변화가 선생의 작업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창문을 청소할 때에는  짧지만 경건한 나만의 순서가 있었다. 먼저 바싹 마른 걸레로 창문을 닦고, 물기가 있는 밀대로 창문과 높이 있는 창문 틀까지 꼼꼼히 청소한 후 마지막으로 내가 아끼는 부드러운 천으로 물자욱을 마저 지워냈다. 지루하지만 이 작업을 끝낸 후 화실에 비치는 투명한 빛이 좋아서 나는 한 주에도 두 세번씩 이 과정을 거치고는 했다. 


 바닥과 가구,  창문 순서로 청소를 마치고 나면 M의 화구를 정리했다. 나는 어시스턴트로 들어와 1년이 지난 후에야 화구 정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선생은 어제 작업하던 모습 그대로 화구가 유지되는 것을 좋아했다. ‘작품의 연속성'을 위해 그렇다.’ 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그의 화구와 의자, 캔버스가 어제와 같은 자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도록 했다. 물감통을 정돈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날 쓴 컬러를 그대로 빼어 팔레트 옆에 두었다. 여기저기 묻은 얼룩은 기름을 써서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냈다. 붓은 어제의 상태를 유지하되 너무 많이 써서 브러쉬가 뭉쳤을 때는 기름을 몇방울 떨어뜨려 부드럽게 만들고, 같은 크기의 새 브러쉬를 바로 쓸 수 있도록 숨을 죽여 옆에 놓아두었다. 밤 늦게까지 작업할 때 두르는 담요는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두개를 번갈아 가며 세탁해 먼지를 털어 잘 개켜 두었다. 

 조수들은 보통 새벽부터 일어나 이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가 화실에 나올 때는 대부분의 공간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아침의 루틴을 단순한 청소나 잡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아침 일과는 노쇠한 몸으로 계속해서 창작의 의지를 이어가는 대가의 예술에 한 점을 보태는 일이었다. 추운 아침 찬물에 걸레를 빨 때도 나는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그 일을 대했다. 

 그의 조수가 되는 것은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하루에 적어도 12시간에서 14시간정도 쉼없이 일했고, 이는 몇몇 젊은 화가 지망생들이 이 화실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늘 긍정적이고, 환희에 가득찬 듯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지만 그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은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일례로, 사람 얼굴 드로잉이 그러했다. M의 얼굴 드로잉은 너무나 간결해서 보는 사람은 단번에 ‘저 정도 그림은 나도 그리겠는 걸?’ 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그에게 ‘천재'라는 호칭을 너무 간단히 붙이데서 불만과 비슷한 감정마저 느꼈다. ‘천재'라는 단어에는 번뜩이는 영감으로 쉽게 작업하는 듯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옆에서 지켜본 바 그의 작업은 고통스러운 반복과 연습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얼굴 드로잉도 수천장을 다시 그리며 간결한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그는 이 드로잉이 ‘쉽게 그린 것 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하루의 작업을 끝내고 저녁이 되면 그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는 작품에 영혼과 체력을 모두 불어넣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그에게 암 선고가 찾아왔다. 다행히 수술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안 그래도 힘든 그의 작품 활동이 머지 않아 끝을 맺는 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그의 육체가 다른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건하게 지켜오던 그의 예술이, 여전히 불타오르는 한 영혼의 창작이 육체의 노쇠함을 이기지 못해 마무리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M이 수술에 들어가는 날이 다가왔다. M은 발병 사실을 알고도 작업을 계속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나는 이전과는 달리 허둥대며 그의 작업에 방해가 되기 일쑤였다. 그가 수술에 들어가자 나는 텅 빈 작업실처럼 그대로 끝을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M은 수술을 하러 떠나며 작업실의 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문을 남겼지만 조수 중 그 누구도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 결국 생의 끝에는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사실, 시간이 인간에게 남기는 한계가 아직 젊은 우리를 경악에 빠뜨렸다.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죽기 직전에야 빵을 한 조각 집어 우물댔고, 물을 삼키며 연명하듯 하루하루를 보냈다. 작업실 청소는 물론이고 열심히 하던 습작에서도 손을 놓았다. 무엇을 하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소멸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흐름을 알 수 없는 덩어리같은 시간이 지나자 M은 수술을 끝내고 회복에 들어갔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맞이한 수술은 그의 몸을 더 쇠약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문제가 없었던 그의 두 다리마저 그를 배신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여전했다. 처음에는 도움 없이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점점 두 팔에 힘을 더해 혼자 움직이는 시간이 늘어났다. 종종 인사를 하러 갈 때마다, 나는 선생이 마치 그림작업을 할 때처럼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의사가 시킨 운동을 천천히 성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지만 아직 운명이 그의 목숨까지 앗아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중간 중간 우리 조수들의 작업에 대해 묻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아 우리는 억지로 다시 습작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 떨림은 점점 심해져, 그가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요원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M이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진행 중이던 작업들을 잘 말려 종이에 싸서 보관해두었다. 먼지가 쌓여가던 캔버스와 화구도 정리해 한 켠에 세워두었다. 선생이 없이  조용하게 붓질과 스케치 소리만 들리는 작업실은 마치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사형수같았다. 

 하지만 M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오래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우리는 먼지가 쌓인 창문이, 지저분한 바닥 얼룩이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작업실이 전처럼 완벽하게 유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차렸겠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일 아침까지 휠체어 높이에 맞게 캔버스 다리를 조절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작업실 곳곳을 살피고 돌아갔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은 쉴새없이 떨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우리는 전날 M이 돌아간 후로 모든 작업을 멈추고 작업실을 원상복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선생의 상태로 봤을 때 더 이상의 유의미한 작업은 힘들겠지만 노 화가의 마지막 의지를 꺾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그 동안 쌓여있던 곳곳의 먼지와 쓰레기를 버리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오밤중이 되어서야 청소는 끝났고, 모두는 녹초가 된 채 잠을 자고 씻지도 못한 얼굴로 작업실에 나왔다. 

 아침 9시가 되자, 선생은 믿을 수 없을만큼 전과 똑같은 표정과 기색으로 작업실에 등장해 전 날 우리가 높이를 조절해둔 캔버스 앞으로 갔다. 붓을 손에 묶고, 엉망으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몇 초나 흘렀을까, 우리는 떨리는 손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긴장감 어린 시선을 거두어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이 쥔 붓의 물감은 여기저기로 튀었지만 그는 여기에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듯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오후, M은 우리를 모두 불러모았다. 

“여러가지로 신세를 져서 미안하네만, 하나 더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네. 아무래도 침대를 작업실에 두어야겠어. 집에 가서 침대에서 식사를 하거나 할 때는 손이 훨씬 덜 떨리거든, 아무래도 침대에 반쯤 누운 자세가 더 안정적이라서 그런 것 같아. 누워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고, 작업실 용 침대를 하나 만들어야겠네"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침대 작업이라니! 이미 휠체어를 타고 이리저리 물감을 흘리는 모습이 충분히 볼썽사납지 않은가! M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였고, 노년에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으로 본인의 명성에 흠집을 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확고한 그의 결정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침대 작업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받은 우리는 너무 크지 않은 나무 침대를 사서 바닥에 고정 바퀴를 달았고, 탄탄한 등받이와 함께 그가 작업할 수 있는 침대용 책상을 만들었다. 구석에 쌓인 그림이 아니었다면 이 곳은 화실이 아닌 목공소처럼 보였을 것이다. 모두 땀을 흘려가며 애쓴 덕분에 그는 침대에 누워 조금씩 다시 드로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관절염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혀, 예전과 같은 수준의 작품이 나오지는 못했다. 

 그가 작업실에 돌아온 지 세 달 쯤 되었을 때, 그는 이상한 주문을 했다. M은 돌아온 이후 단 한장의 그림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표면이 거친 종이를 몇개 가져와보게. 그리고 내가 골라주는 종이를 직사각형으로 잘라 고아슈 물감을 칠해 말려줘, 색을 섞지는 말고, 몇가지 채도가 높은 컬러를 골라놨네"

 드디어 선생은 계속되는 실패에 지쳐 노망이 난 것일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가 골라준 종이에 색을 칠했다. 선생을 우리가 칠하는 것을 보며 몇가지 색은 덧칠해서 색을 더 뚜렷하게 하기를 주문했다. 고아슈 물감은 빠르게 마르고 물에 섞어 채색하면 되기 때문에 고르게 색칠하는 작업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색색의 종이를 빨래 처럼 줄을 달아 건조했다. 첫번 째 작업한 종이가 거의 다 말라가던 금요일, 선생은 첫 번째 조수인 H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를 집에 보냈다. 주말에는 푹 쉬고, 월요일에 보자는 말과 함께. 넋이 나간 것처럼 종이에 색칠을 반복하던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집에 왔다. 이제 다른 스승을 알아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화가라는 직업이 의미가 있을 것일까? 마음이 답답해졌다. 한 때 나는 선생의 그림의 큰 감동을 받았다. 강렬한 색깔과 널뛰는 생동감은 생의 의미를 다시 찾아주는 느낌이었고, 그렇게 나는 그의 화실에서 일하는 행운까지 얻게 되었다. 매일의 고된 작업도 그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는 감동으로 모두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흐릿한 안개에 싸인 것만 같았다. 위대한 화가인 M도 시간의 저주는 피하지 못했고, 이제 괴상한 색칠 놀이에 빠진 노인네가 되어버렸다. 나는 노화와 함께 한 순간에 사라질 의미 없는 경력을 쌓는데 젊음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동네 싸구려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한 층 깊이 절망에 빠졌다. 

어김없이 월요일이 찾아왔다. 나는 주말동안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이 곳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그 동안 배운 것이 있으니 시골학교의 미술 선생님 자리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소보다는 좀 더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아침 일찍 작업실을 찾았다. 아무도 없을 때 구석 구석 손길이 닿은 익숙한 곳들에 인사를 하고 싶었다.

 텅 빈 작업실에 도착해, 습관처럼 환기를 하기 위해 안쪽 작업방에 들어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흰 벽에는 아름다운 모습의 정원과도 같은 그림이 걸려있었다. 좀 더 가까이 간 나는 그것이 그림이 아니라 우리가 색칠한 종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종이들이 여러 모양으로 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잘린 조각들이 수북했다. 색종이들은 어느 회화보다 생동감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색을 빛내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봤을 때는 알 수 없던 충만함과 행복이 작품 전체에서  느껴졌다. 더이상 붓을 잡기 어려웠던 선생은 가위를 작업도구로 택한 것이다. 단순하지만 선명한 조각들이 낱장의 종이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처럼 다가와 아침 햇살과 함께 따뜻하게 나를 위로했다.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작품을 바라보던 나는 다른 이들이 올 시간이 되자 여느때와 같이 환기를 시키고, 공들여 창문을 닦고, 청소를 끝낸 후에 작업실에 앉았다. 금요일에 던지듯 놓고 간 붓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다시 붓을 깨끗하게 닦아 색칠을 시작했다.

생명을 가진 모두에게 노화는 반드시 찾아온다. 물론 해삼처럼 나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생물도 존재 하지만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노화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노화가 가진 무시무시한 힘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길거리 노파의 걸음걸이에서, 노인이 오래 산 집의 냄새에서, 어느날 삐져나온 흰머리카락에서 노화는 그 발톱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고난은, 이 노화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 사고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성장이 끝나는 시점에서부터 한 순간도 빠짐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는 예고된 내리막길을 걸어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전까지는 자신이 쇠락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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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은 아주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아니, 어쩌면 ‘일어났다'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암덩어리는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M의 몸에 자리 잡았을 테니 어떤 전조 증상이나 예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까지는 누구도 그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 소식을 마주해야 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아니 살아있는 역사로 알려진 천재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특권이기에, 나는 그의 일화를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 나의 일기를 펼쳐보면 마치 M의 다큐멘터리같다. 하긴 그가 워낙 정력적으로 일해대는 탓에 그의 어시스트가 된 이후 나에겐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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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M의 몸은 많이 노쇠해있었다. 일흔의 나이를 지나가고 있는 노화가는 붓을 쥐고 있는 것이 힘에 부쳐 손가락에 붓을 묶어서 작업하고는 했다. 관절염은 화가에게 올 수 있는 최악의 병 중 하나였다. 손가락에 힘이 달려 물건을 떨어뜨리기 일쑤였기에 M선생의 근처에 뜨거운 커피를 갖다놓는다거나 하는 것은 이 작업실에서는 암묵적으로 금지되었다. 

 나의 아침 일과는 선생이 최대한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화실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내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창문의 먼지였다. 창문의 먼지가 한겹 쌓이면 화실의 빛도 그만큼 약해졌다. 나는 미묘한 빛의 변화가 선생의 작업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창문을 청소할 때에는  짧지만 경건한 나만의 순서가 있었다. 먼저 바싹 마른 걸레로 창문을 닦고, 물기가 있는 밀대로 창문과 높이 있는 창문 틀까지 꼼꼼히 청소한 후 마지막으로 내가 아끼는 부드러운 천으로 물자욱을 마저 지워냈다. 지루하지만 이 작업을 끝낸 후 화실에 비치는 투명한 빛이 좋아서 나는 한 주에도 두 세번씩 이 과정을 거치고는 했다. 


 바닥과 가구,  창문 순서로 청소를 마치고 나면 M의 화구를 정리했다. 나는 어시스턴트로 들어와 1년이 지난 후에야 화구 정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선생은 어제 작업하던 모습 그대로 화구가 유지되는 것을 좋아했다. ‘작품의 연속성'을 위해 그렇다.’ 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그의 화구와 의자, 캔버스가 어제와 같은 자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도록 했다. 물감통을 정돈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날 쓴 컬러를 그대로 빼어 팔레트 옆에 두었다. 여기저기 묻은 얼룩은 기름을 써서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냈다. 붓은 어제의 상태를 유지하되 너무 많이 써서 브러쉬가 뭉쳤을 때는 기름을 몇방울 떨어뜨려 부드럽게 만들고, 같은 크기의 새 브러쉬를 바로 쓸 수 있도록 숨을 죽여 옆에 놓아두었다. 밤 늦게까지 작업할 때 두르는 담요는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두개를 번갈아 가며 세탁해 먼지를 털어 잘 개켜 두었다. 

 조수들은 보통 새벽부터 일어나 이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가 화실에 나올 때는 대부분의 공간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아침의 루틴을 단순한 청소나 잡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아침 일과는 노쇠한 몸으로 계속해서 창작의 의지를 이어가는 대가의 예술에 한 점을 보태는 일이었다. 추운 아침 찬물에 걸레를 빨 때도 나는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그 일을 대했다. 

 그의 조수가 되는 것은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하루에 적어도 12시간에서 14시간정도 쉼없이 일했고, 이는 몇몇 젊은 화가 지망생들이 이 화실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늘 긍정적이고, 환희에 가득찬 듯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지만 그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은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일례로, 사람 얼굴 드로잉이 그러했다. M의 얼굴 드로잉은 너무나 간결해서 보는 사람은 단번에 ‘저 정도 그림은 나도 그리겠는 걸?’ 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그에게 ‘천재'라는 호칭을 너무 간단히 붙이데서 불만과 비슷한 감정마저 느꼈다. ‘천재'라는 단어에는 번뜩이는 영감으로 쉽게 작업하는 듯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옆에서 지켜본 바 그의 작업은 고통스러운 반복과 연습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얼굴 드로잉도 수천장을 다시 그리며 간결한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그는 이 드로잉이 ‘쉽게 그린 것 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하루의 작업을 끝내고 저녁이 되면 그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는 작품에 영혼과 체력을 모두 불어넣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그에게 암 선고가 찾아왔다. 다행히 수술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안 그래도 힘든 그의 작품 활동이 머지 않아 끝을 맺는 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그의 육체가 다른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건하게 지켜오던 그의 예술이, 여전히 불타오르는 한 영혼의 창작이 육체의 노쇠함을 이기지 못해 마무리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M이 수술에 들어가는 날이 다가왔다. M은 발병 사실을 알고도 작업을 계속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나는 이전과는 달리 허둥대며 그의 작업에 방해가 되기 일쑤였다. 그가 수술에 들어가자 나는 텅 빈 작업실처럼 그대로 끝을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M은 수술을 하러 떠나며 작업실의 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문을 남겼지만 조수 중 그 누구도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 결국 생의 끝에는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사실, 시간이 인간에게 남기는 한계가 아직 젊은 우리를 경악에 빠뜨렸다.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죽기 직전에야 빵을 한 조각 집어 우물댔고, 물을 삼키며 연명하듯 하루하루를 보냈다. 작업실 청소는 물론이고 열심히 하던 습작에서도 손을 놓았다. 무엇을 하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소멸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흐름을 알 수 없는 덩어리같은 시간이 지나자 M은 수술을 끝내고 회복에 들어갔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맞이한 수술은 그의 몸을 더 쇠약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문제가 없었던 그의 두 다리마저 그를 배신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여전했다. 처음에는 도움 없이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점점 두 팔에 힘을 더해 혼자 움직이는 시간이 늘어났다. 종종 인사를 하러 갈 때마다, 나는 선생이 마치 그림작업을 할 때처럼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의사가 시킨 운동을 천천히 성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지만 아직 운명이 그의 목숨까지 앗아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중간 중간 우리 조수들의 작업에 대해 묻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아 우리는 억지로 다시 습작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 떨림은 점점 심해져, 그가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요원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M이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진행 중이던 작업들을 잘 말려 종이에 싸서 보관해두었다. 먼지가 쌓여가던 캔버스와 화구도 정리해 한 켠에 세워두었다. 선생이 없이  조용하게 붓질과 스케치 소리만 들리는 작업실은 마치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사형수같았다. 

 하지만 M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오래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우리는 먼지가 쌓인 창문이, 지저분한 바닥 얼룩이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작업실이 전처럼 완벽하게 유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차렸겠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일 아침까지 휠체어 높이에 맞게 캔버스 다리를 조절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작업실 곳곳을 살피고 돌아갔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은 쉴새없이 떨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우리는 전날 M이 돌아간 후로 모든 작업을 멈추고 작업실을 원상복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선생의 상태로 봤을 때 더 이상의 유의미한 작업은 힘들겠지만 노 화가의 마지막 의지를 꺾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그 동안 쌓여있던 곳곳의 먼지와 쓰레기를 버리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오밤중이 되어서야 청소는 끝났고, 모두는 녹초가 된 채 잠을 자고 씻지도 못한 얼굴로 작업실에 나왔다. 

 아침 9시가 되자, 선생은 믿을 수 없을만큼 전과 똑같은 표정과 기색으로 작업실에 등장해 전 날 우리가 높이를 조절해둔 캔버스 앞으로 갔다. 붓을 손에 묶고, 엉망으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몇 초나 흘렀을까, 우리는 떨리는 손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긴장감 어린 시선을 거두어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이 쥔 붓의 물감은 여기저기로 튀었지만 그는 여기에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듯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오후, M은 우리를 모두 불러모았다. 

“여러가지로 신세를 져서 미안하네만, 하나 더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네. 아무래도 침대를 작업실에 두어야겠어. 집에 가서 침대에서 식사를 하거나 할 때는 손이 훨씬 덜 떨리거든, 아무래도 침대에 반쯤 누운 자세가 더 안정적이라서 그런 것 같아. 누워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고, 작업실 용 침대를 하나 만들어야겠네"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침대 작업이라니! 이미 휠체어를 타고 이리저리 물감을 흘리는 모습이 충분히 볼썽사납지 않은가! M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였고, 노년에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으로 본인의 명성에 흠집을 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확고한 그의 결정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침대 작업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받은 우리는 너무 크지 않은 나무 침대를 사서 바닥에 고정 바퀴를 달았고, 탄탄한 등받이와 함께 그가 작업할 수 있는 침대용 책상을 만들었다. 구석에 쌓인 그림이 아니었다면 이 곳은 화실이 아닌 목공소처럼 보였을 것이다. 모두 땀을 흘려가며 애쓴 덕분에 그는 침대에 누워 조금씩 다시 드로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관절염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혀, 예전과 같은 수준의 작품이 나오지는 못했다. 

 그가 작업실에 돌아온 지 세 달 쯤 되었을 때, 그는 이상한 주문을 했다. M은 돌아온 이후 단 한장의 그림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표면이 거친 종이를 몇개 가져와보게. 그리고 내가 골라주는 종이를 직사각형으로 잘라 고아슈 물감을 칠해 말려줘, 색을 섞지는 말고, 몇가지 채도가 높은 컬러를 골라놨네"

 드디어 선생은 계속되는 실패에 지쳐 노망이 난 것일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가 골라준 종이에 색을 칠했다. 선생을 우리가 칠하는 것을 보며 몇가지 색은 덧칠해서 색을 더 뚜렷하게 하기를 주문했다. 고아슈 물감은 빠르게 마르고 물에 섞어 채색하면 되기 때문에 고르게 색칠하는 작업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색색의 종이를 빨래 처럼 줄을 달아 건조했다. 첫번 째 작업한 종이가 거의 다 말라가던 금요일, 선생은 첫 번째 조수인 H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를 집에 보냈다. 주말에는 푹 쉬고, 월요일에 보자는 말과 함께. 넋이 나간 것처럼 종이에 색칠을 반복하던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집에 왔다. 이제 다른 스승을 알아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화가라는 직업이 의미가 있을 것일까? 마음이 답답해졌다. 한 때 나는 선생의 그림의 큰 감동을 받았다. 강렬한 색깔과 널뛰는 생동감은 생의 의미를 다시 찾아주는 느낌이었고, 그렇게 나는 그의 화실에서 일하는 행운까지 얻게 되었다. 매일의 고된 작업도 그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는 감동으로 모두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흐릿한 안개에 싸인 것만 같았다. 위대한 화가인 M도 시간의 저주는 피하지 못했고, 이제 괴상한 색칠 놀이에 빠진 노인네가 되어버렸다. 나는 노화와 함께 한 순간에 사라질 의미 없는 경력을 쌓는데 젊음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동네 싸구려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한 층 깊이 절망에 빠졌다. 

어김없이 월요일이 찾아왔다. 나는 주말동안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이 곳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그 동안 배운 것이 있으니 시골학교의 미술 선생님 자리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소보다는 좀 더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아침 일찍 작업실을 찾았다. 아무도 없을 때 구석 구석 손길이 닿은 익숙한 곳들에 인사를 하고 싶었다.

 텅 빈 작업실에 도착해, 습관처럼 환기를 하기 위해 안쪽 작업방에 들어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흰 벽에는 아름다운 모습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생명이 넘치는 그림이 걸려있었다. 좀 더 가까이 간 나는 그것이 그림이 아니라 우리가 색칠한 종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종이들이 여러 모양으로 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잘린 조각들이 수북했다. 색종이들은 어느 회화보다 생동감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색을 빛내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봤을 때는 알 수 없던 충만함과 행복이 작품 전체에서  느껴졌다. 더이상 붓을 잡기 어려웠던 선생은 가위를 작업도구로 택한 것이다. 단순하지만 선명한 조각들이 낱장의 종이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처럼 다가와 아침 햇살과 함께 따뜻하게 나를 위로했다.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작품을 바라보던 나는 다른 이들이 올 시간이 되자 여느때와 같이 환기를 시키고, 공들여 창문을 닦고, 청소를 끝낸 후에 작업실에 앉았다. 금요일에 던지듯 놓고 간 붓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다시 붓을 깨끗하게 닦아 색칠을 시작했다.








⋇ KUA Conte 는 쿠도스 아틀리에에서 발행하는 단편입니다

⋇ 위 글은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And more..  

    단편 <색종이>의 M선생은 야수파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입니다  

    1869년생인 마티스는 그가 일흔 두살이 되던 해 암을 선고 받습니다  

    암선고를 받기 전에도 그는 이미 오래된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을 잘 움직이지 못해 붓을 손에 묶어 작업하고는 했습니다  

    암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그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작업을 계속합니다  

    관절염이 심해져 더이상 붓을 잡을 수 없을 때, 그는 고아슈 물감을 칠한 종이를 잘라 데코파쥬, 혹은 콜라쥬 작업을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새로운 그의 작업 방식에 놀랐지만, 그는 이후로도 몇십년간 , <이카루스>, <왕의 슬픔>과 같이 위대한 작업들을 해냅니다  

    이러한 색종이(CUT OUT)작품은 초반에는 작은 크기였지만, 나중에는 벽화의 크기로 커집니다  

    그는 암 수술을 받고 난 마지막 14년을 “두번째 삶”이라고 종종 불렀고, 이 시기에 그의 활동성은 크게 제한되었지만 그는 예술 작업의 형태로 정원을 거닐 수 있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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