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UA Dec 26. 2021

[수영장]

KUA Conte #21


 언제 어디서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총량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아마도 로스앤젤레스에 

와보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다. 


처음 이 곳에 도착한 날은 

이 축복 받은 도시에서 대부분의 날이 그렇듯, 

화창하고 따뜻하며 건조한 날이었다. 

공항에 내리자 눈이 부셔 

하늘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는 마치 선악과를 먹고 눈을 뜬 아담처럼, 

축축하고 허연 내 몸뚱아리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이름에 Angel 이 들어가는 도시라니! 

앤젤리노* 들에게서는 

뉴욕의 고단함도, 파리의 거만함도, 

런던의 절망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LA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이 천국같은 곳에는 

활기찬 사람들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나는 무엇보다 

런던과는 확연히 다른 

LA의 컬러에 매료되었다. 

태양의 위치가 달라지자, 

빛이 반사하는 색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시시각각 깨끗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하늘과 

믿을 수 없을만큼 낭만적인 석양은 

아무리 바라봐도 지겹지 않았다. 


특히, 같은 곳, 같은 시간이라도 

내가 서있는 장소와 기울기마다 

미묘하게 느낌이 달라져 

나는 한동안 LA의 풍광에 빠져있었다. 

LA는 나에게 마치 거대한 장난감과도 같았다. 


 그 때문인지 이 곳에서 나는 

불행한 인간의 숙명이라던가, 

우울함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대신 LA를 수놓는 각양각색의 장소들, 

끝없이 펼쳐진 도로라던지 

거대한 햄버거 가게의 간판, 

전 후방 1km 이내에는 

못 본 사람이 없도록 작정한 것 같이 

컬러풀한 광고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LA에 도착한 지 이틀만에 

대학시절 알고 지내던 찰리가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아는 사람도 얼마 없는 파티에

가는게 조심스러웠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알고 싶다는 

수줍은 욕심이 더 컸다. 



무엇을 입고 갈지, 한참을 고민한 후에 도착한 

찰리의 집(런던에서라면 저택이라고 부를만큼 큰 집이었다)에는 

적절히 그을린, 아름답고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무엇을 입고 갈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 상의를 벗거나 수영복을 입고 

태양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주를 받아들고 위층에 올라간 나는 

숨이 막히는 경치를 마주했다. 


LA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 

도시가 내려다 보이고, 

수영장의 반짝이는 빛이 안경에 반사되었다. 


런던에서도 몇 번 수영장에 가본 적은 있지만 

이 곳은 전혀 달랐다. 

일단 가장 구분되는 건 물의 색깔이었다. 

나는 물의 표면이 그렇게 다양한 빛과 색을 

품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직사각형의 선 안에 갇혀 있는 물은 넘실대며 

태양을 마주하고 아름다운 빛을 뿜어냈다.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웃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피부 위에 흐르는 물방울이 

시시각각 나에게 말을 거는 듯 했다. 


수영장을 바라보는게 너무 재밌어서 

나는 그날 파티에서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했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어색한 자세로 서있는 

영국인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곧바로 수영장이 있는 집을 구했다. 

런던과 달리 LA는 수영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집이 많았다. 

찰리는 내가 사기를 당하거나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같이 집을 보러 다니고 계약서를 꼼꼼히 봐주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나는 한 푼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나는 

LA의 햇살을 앞마당에 가둘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영장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요한 수영장 보다는 움직임이, 

정확히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파동이 있을 때 

그 곳은 더 흥미로워졌다. 

찰나에 부서져버리는 물의 표면이라던지, 

흰색 거품이 되었다 다시 물로 돌아가는 수영장 속 

물결의 변화는 순간순간 나에게 

조각상이 되기도, 

회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LA는 나에게 햇살 뿐 아니라 사랑도 선물했다. 

이 도시에서 만났지만 도시보다 더욱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피터는 누구보다 

나의 수영장을 좋아해 주었다. 


그는 집에 있는 수영장을 보자 

온몸이 퉁퉁 불어버릴 때까지 

물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체온증이 오지 않도록 

억지로 끌어내야 할 정도였다. 


나는 수영장 속의 물을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섬세한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우리집 수영장 물은 

코를 찌르는 염소 냄새를 내지 않고도 

기분 좋게 깨끗했다. 


피부에 물이 닿는 느낌은 늘 부드러웠다. 

 수영장에서 먹기 가장 좋은 건 샴페인이었다. 

우리는 샴페인을 얼음같이 차갑게 유지해 

더운 햇살 속에서 마시는 것을 즐겼다. 

피터는 햄버거도 먹고 싶어했지만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었던 나는 

‘수영장 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수영장 반경 1m 안에서는 

어떤 음식물의 섭취도 금지하는 룰이었다. 



 LA의 햇살이 피터의 몸을 

기분 좋게 태웠을 무렵

(나는 이상하게도 해를 만나면 온 몸이 

빨갛게 달아오를 뿐 결코 그을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초대받아 

수 많은 집을 구경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떠들썩한 파티장에서 피터와 나는 

둘만의 은밀한 게임을 만들어냈다. 

바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각자의 이름 낙서를 남기고 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니셜로 알아볼 수 없게 썼지만, 

우리는 점점 대담해져 

풀 네임을 남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 두 소년이었다. 

나는 서른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피터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왁자지껄한 파티도 좋았지만, 

우리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은 

둘만의 시간이었다. 


침대에 누워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내뱉으며 오전을 보낸 적도 있었고, 

충동적으로 드라이브를 떠나기도 하며, 

동물처럼 바닥에 엉겨붙어 있다가 

어느 순간 수영장에서 레이스를 벌이기도 했다

(슬프게도 한 번도 피터를 이기지는 못했다) 



 하루는 망신을 당한 날도 있었다. 

작은 다이너에서 늦은 시간, 

내 팔뚝보다도 크고 높은 선데를 

두 개나 시킨 우리는 

위에 올라간 휘핑크림을 

후후 불며 장난을 쳤다. 


사실 장난으로만 보기는 억울한 것이, 

나는 선데의 가볍고 달콤한 맛과, 

핑크색 테이블의 조화가 보고 싶었다. 

어쨌든 우리의 장난은 테이블을 더럽혔고, 

우리 외할머니만큼 덩치가 큰 흑인 

웨이트리스는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소리치며 우리를 쫓아냈다. 

우리는 킥킥대며(선데 값을 안냈어!) 

집을 향했다. 

린아이처럼 무책임하고 가벼운 날이었다.

 

 피터는 짖궂은 장난을 치다가도 

어느새 진지한 표정이 되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했다. 

(당신의 금발이 맘에 들어, 하지만 핑크색으로 

바뀐다면 훨씬 더 잘 어울릴 거야) 

그 덕에 나는 진지하게 

핑크 머리를 고민해야 했다. 


반면에 나는 그의 흑발을 

한 올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찰랑대는 무심한 흑발은 

그의 영혼이 드러나는 얼굴, 

특히 눈을 더 아름다워 보이게 했다. 


그는 마치 아주 신비한 조형물처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얼굴을 했다. 

아래에서 보면 고대 신화 속 

무시무시한 괴물 같기도, 

옆에서 보면 영화배우처럼 

핸섬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지루해질틈이 없는, 

볼 때마다 새로운 그는 나의 뮤즈가 되었다.



세심하게 각도와 푹신함을 조절한 

썬베드에 누워 

차양 그늘아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첨벙대는 피터를 바라보는 것은 

천국과도 같은 만족감을 주었다. 


서로의 형제이자 연인인 우리는 

비현실적인 LA의 풍광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 


때로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이 순간이 

사진처럼 그냥 멈춰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터를 누르기도 했다. 


피터는 가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나는 이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을 열심히 해요' 

나는 어렴풋이나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그와 나의 작은 왕국이었던 

LA에서의 생활은 영원할 수 없었다. 


피터는 나보다 한참 어린 19살이었고, 

안정적인 행복감 보다는 

고통과 성장에 매료될 나이었다. 


 어느 순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즐거움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우리의 영혼은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 

서로를 떠나갔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가장 좋은 친구로 남아 

삶의 모든 순간을 응원했지만, 

가장 빛나는 순간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피터가 떠나간 어느날, 

나는 그와 함께 한 집을 팔았다. 

시장가보다 낮게 내 놓은 집은 

빠르게 주인을 찾았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돌아와 

나는 우리가 즐기던 샴페인을 따 

예의 썬베드에 누웠다. 

오후 1시밖에 되지 않아 

태양은 더 없이 뜨거웠다. 


피터는 없고, 나는 쓸쓸했다. 

오직 수영장만이, 

넘실대는 물과 태양이 만들어내는 

빛의 곡선만이 여전했다. 





KUA Conte 는 쿠도스 아틀리에에서 발행하는 단편입니다

위 글은 데이빗 호크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And more..  


LA를 사랑한 화가, 데이빗 호크니는 영국 사람입니다

    그는 LA에 도착해 아름다운 날씨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당시 동성애가 금지였던 런던의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LA로 와 해방감을 느끼며,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합니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LA 곳곳이 등장합니다  

그는 특히, 많은 집에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을 좋아했습니다  

    수영장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소재였습니다. 그는 물이 튀기거나 움직이는 순간의 조형적인 요소를 포착해 찰나의 인상을 영원한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좋은 예로는 큰 첨벙<Bigger Splach>이 있습니다  

    사진가이기도 한 피터 슐레징거는 데이빗 호크니의 연인이자, 뮤즈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데이빗이 강의를 하던 UCLA에서 선생님과 제자로 만났습니다 

    그는 약 천억원에 팔린 데이빗 호크니의 대표작 ‘예술가의 초상'의 모델이기도 하며, 다양한 호크니의 작품에 등장합니다

실제로 피터 슐레징거는 데이빗 호크니의 도시, 런던으로 함께 떠나 런던의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둘은 19살, 30살이라는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 서로를 사랑하며 영감을 주고 받았습니다

데이빗 호크니는 두 사람의 사랑을 휘트먼의 시에서 모티브를 딴 <We two boys together clinging (우린 엉겨붙은 두 소년)> 이라는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피터와의 이별에 대해 묘사한 부분은 허구이며, 실제 두 사람이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나이가 들어서도 둘은 특별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Portrait of an Artist 예술가의 초상 (Pool with Two figures ) by David Hockney, 1972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by David Hockney, 1966





“Peter Schlesinger with Polaroid Camera” by David Hockney, 1977





“We Two Boys Together Clinging” (1961) Inspired by Walter Whitman’s Poem










A Bigger Splash 큰첨범, 1967





Beverly Hills Housewife, 1967
hancock street, 1989
데이빗 호크니와 피터 슐레징거





켄싱턴 파크에서 <예술가의 초상> 참고 사진을 찍고 있는 데이빗 호크니와 피터 슐레징거




WE two boys together clinging,

One the other never leaving, Up and down the roads going, 

North and South excursions making,


Power enjoying, elbows stretching, fingers clutching,

Arm'd and fearless, eating, drinking, sleeping, loving,


No law less than ourselves 

owning, sailing, soldiering, thieving, threatening,

Misers, menials, priests alarming, 

air breathing, water drinking, on

the turf or the sea-beach dancing,

Cities wrenching, ease scorning, s

tatutes mocking, 

feebleness chas-ing,


Fulfilling our foray.




- Poem by Walter Whitm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