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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구봉선
May 02. 2024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
4년 전에 94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적에 누구도 '더 사셨으면..' 했던 사람은 없었다.
9남매의 큰딸로 동생들을 낳으면 할머니와 같이 그 동생들을 업고 어르고 그렇게 키우셨다 했다. 막내 이모가 오빠와 나이 차이가 3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것도 할머니는 그 시대 어르신들처럼 생기면 아이를 낳으셨다.
엄마는 우리를 3남매.
오빠, 언니 그리고 나를 낳아 가족을 이루셨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엄마는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에 한 번 찾아뵙다 이제 그 자식들이 다 가족을 이루니 그제야 1년에 2~3번 정도 찾아뵈었다.
어느 날 엄마랑 거실에 앉아 tv를 보다 엄마의 혼잣말이 낯설었던 적이 있었다.
"니 할머니 보고 싶다."
그건 나에게 한말일까? 엄마 자신에게 한 말일까?
80이 넘으신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보고 싶어 했다.
예전엔 60을 못 채우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 환갑잔치를 했다고 한다.
지금의 현대에서는 100세 시대를 외치는 세대이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90을 채우시고 돌아가셨으면...'
'외할머니처럼 90을 넘기셨으면...'
이런 기원을 하기도 한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엄마의 시간이 하루하루 아까워진다.
그러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도 외할머니가 없는 세상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 텐데,
보고 싶어도, 말을 해보고 싶어도, 안아보고 싶어도 못하는 세상을 맞이하신 것이다.
생각은 할머니의 부재를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그 부재를 느끼는 엄마는 가끔 할머니 생각을 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좀 더 살았으면...'
할머니가 병원에 계실 적에 엄마는
'이러다 자식들이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며 누워계시는 할머니걱정도 있었지만, 돌아가면서 간병을 하는 동생들을 걱정하셨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많이 슬퍼하셨다.
티 내지 않으셨지만, 할머니를 선산으로 모시고 갈 때 엄마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장녀로 태어나 할머니와 함께 이것저것을 함께 이루며 동생들을 봐온 엄마에게 할머니는 부모이자 동지였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에 한 번씩 뵈온 할머니의 주름을 속상해하셨고,
만들어간 반찬이 맛있다며 많이 만들어 놓고 가라고 하시는 할머니를 놓고 돌아오는 길이 무거웠을 것이다.
할머니 옆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고마우면서 미안한 맘이 들어 슬며시 선물을 준비해 갈 때도 다름 아닌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뇌물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고향을 내려가지 않으셨다.
'가서 뭐 하니.'
그 말씀은 가도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 하는 건 그곳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엄마'
내가 엄마가 오래 우리 곁에 살기를 원하는 것처럼, 엄마도 외할머니가 오래 건강하게 곁에 오래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엄마는 내 고향이고, 내 품이며, 보고 싶은 얼굴이다.
사람은 무슨 일이 닥치며 으레
"엄마야~"를 외친다.
왜일까?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의 젖을 먹고, 엄마의 품에서 자라며,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에
세상에서 나를 제일 많이 걱정하고, 나를 위해 헌신해 줄 사람은 엄마란 걸 알기에 그렇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
엄마도 아기였던 적이 있고, 엄마의 품에 뛰어들어 어리광을 부리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10살이던 50이던, 80이 되었건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고, 주름진 손을 잡고 싶을 것이다.
왜 몰랐을까...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있고,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을 것을...
얼마후면 할머니의 제삿날이 다가옵니다.
"엄마 할머니 제삿날에 시골에 다녀올까?"
"가면 뭐 하니."
가도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걸,
항상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자리에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엄마는 할머니를 묻고 집으로 오던 날 알았던 거 같습니다.
외할머니가 있어야 그곳에 가고 싶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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